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뭘까. KBS 2TV 주말 연속극 ‘첫사랑’이다. ‘첫사랑’은 1996년 9월 7일부터 1997년 4월 20일까지 방영된 드라마다. 역대 최고 시청률인 65.8%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방송 역사에 ‘전설’로 기록된 드라마다. 시청률 공식 집계 이후 모든 프로그램을 통틀어 최고의 기록이다. 이후에도 이 시청률을 뛰어넘은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첫사랑’은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삼았지만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와 슬픈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막장 드라마’에 속하는 극적인 요소들이 가득했지만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선 감성적인 드라마로 평가받았다.
65.8%라는 시청률은 단순히 수치로만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방영 당시 ‘첫사랑’은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 시간에는 거리의 사람들이 사라져 “귀신도 ‘첫사랑’ 보는 시간에는 사람을 잡지 않는다”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결혼식 일정까지 조정하는 일이 빈번했고, 드라마 종영 후에는 ‘첫사랑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첫사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순수하고 애틋한 첫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신분 차이와 가족 간 갈등,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냈다.
드라마는 1975년 강원 춘천시에서 시작해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시간대를 넘나든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 성찬혁(배용준 분)과 부유한 집안의 딸 이효경(최지우 분)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랑을 키워가지만, 가난과 부의 차이는 끝내 그들의 사랑에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가족 구성원들의 희생과 갈등이 더해지며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고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1975년 춘천시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효경은 전학 온 찬우를 통해 그의 형 찬혁을 만나게 된다. 찬혁의 그림 실력에 매료된 효경은 그림을 핑계 삼아 그와 가까워지며 애틋한 첫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며 두 사람의 사랑은 점차 난관에 부딪힌다. 효경의 아버지 이재하는 신분 차이를 이유로 두 사람의 관계를 강하게 반대하며 찬혁의 가족에게 여러 차례 시련을 준다.
1983년 효경과 찬혁의 관계는 결국 발각되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찬혁은 효경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군입대를 자원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효경의 외삼촌 송왕기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악행은 그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결국 찬혁은 불구의 몸이 되고 만다.
그 후에도 효경과 찬혁은 여러 차례 재회와 이별을 반복한다. 효경은 파리로 떠나 석진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하지만, 찬혁의 존재를 완전히 잊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하지만, 이미 상처로 얼룩진 그들의 사랑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65.8%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은 단순히 기록에 머물지 않았다. 드라마 방영 당시 주말 저녁에는 길거리가 한산해졌고, 주요 상점들은 ‘첫사랑’ 방송 시간에 맞춰 운영 시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또한 결혼식이나 가족 모임 같은 중요한 일정이 드라마 방영 시간대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는 일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OST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스트라토바리우스의 ‘포에버(Forever)’는 드라마의 감성을 완벽히 담아내며 화제를 모았다. 이 곡은 드라마 중반 효경이 찬혁과의 관계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당시 무명가수였던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가 삽입돼 큰 인기를 끌었다. 연출진이 우연히 길거리에서 들은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는데,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 덕분에 김종환은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지였던 춘천시는 ‘첫사랑’ 열풍을 계기로 관광지로 주목받았다. 드라마의 촬영지였던 두물머리와 관련된 여행 상품이 개발됐으며, 많은 연인이 이곳을 찾아 로맨스를 즐기곤 했다.
조소혜 작가가 집필한 ‘첫사랑’은 동화 ‘플랜더스의 개’와 유사한 점이 많아 비교되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 성찬혁의 삶은 동화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를 연상케 한다. 찬혁은 가난한 환경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품고 살아가는 한편 부유한 집안 출신의 여주인공 이효경과의 사랑으로 인해 고난에 휘말린다. 가난하지만 선량한 남자 주인공, 부유한 여주인공,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방해하는 여주인공의 아버지 등 기본적인 서사 구조가 ‘플랜더스의 개’와 닮았다.
다만 ‘첫사랑’은 이를 한국적 정서와 사회 문제를 반영해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여주인공 이효경의 어머니와 외삼촌 송왕기의 악역 역할은 ‘플랜더스의 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추가적인 갈등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갈등 구조는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첫사랑’은 당시로서는 신인이었던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지만, 이 작품 이후 다수의 배우가 톱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주연을 맡은 배용준과 최지우는 이 작품을 통해 명실상부한 스타로 자리 잡았다. 조연 배우들 역시 개성 있는 연기로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다.
배용준과 최지우는 2002년 KBS 2TV ‘겨울연가’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며 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겨울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배용준은 ‘욘사마’, 최지우는 ‘지우 히메’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첫사랑’은 단순히 감성적인 멜로드라마로 머물지 않았다. 신분 차이, 가족의 희생, 사랑의 본질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이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은 당신이겠죠”라는 내레이션은 드라마의 철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결말에서 찬혁과 효경은 결국 재회하지 못하지만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이러한 결말은 사랑이 단순히 결실로만 평가되지 않으며 과정 자체가 의미 있음을 시사한다.
‘첫사랑’은 방영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드라마의 전설로 남아 있다. 이는 단순히 높은 시청률 때문이 아니라,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 이야기,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그리고 이를 완성한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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