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불안한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 앞에서 딸 장하빈(채원빈)은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할머니를 부르거나 학교 친구들과 있을 때는 웃어 보이다가도 금세 서늘한 얼굴로 돌아온다.
지난 15일 종영한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MBC)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장하빈을 보며 시청자들은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혹은 감정 표현에 서툰 18살 고등학생일 뿐인지 추측하느라 바빴다. 동시에 이 인물을 때로는 섬뜩하게, 때로는 안쓰럽게 그려낸 신인 배우 채원빈에 대한 관심도 쏟아졌다.
채원빈에게도 이 드라마는 ‘인생 작품’으로 남았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채원빈은 “(장하빈은) 저한테 너무나 많은 성장통을 준 인물이기 때문에 작품 또한 제 인생에서 크게 자리 잡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감독님께 (사이코패스인지 소시오패스인지) 하나를 정해달라고 했는데, 감독님이 ‘거기에 너무 집중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왜 그랬는지 연기를 할수록 알 것 같았어요. 초반에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고생을 많이 했는데, 중반부터는 이 인물이랑 동화되기 시작했어요. 하빈이는 그냥 남다른 친구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채원빈은 실제로는 부모님에게 힘든 일을 잘 털어놓고 장난기도 많은 딸이라고 한다. 그런 자신과 정반대인 장하빈을 연기하느라 감정을 절제해야 했다. “저는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사람인데, (이 작품에서는) 감정을 가져가되 억누르는 게 있어야 했어요. 가끔은 억누르는 게 잘 안 돼서 울다 와서 찍은 적도 많았죠.” 그는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해소되지 않은 감정 때문에 괴로운 적도 많았다”며 “아빠(장태수)한테 ‘내 말 좀 믿어주면 안 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할 때는 우느라 말이 안 나왔다”고 떠올렸다.
그런 그에게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한석규는 든든한 존재였다. 데뷔 5년차 신인인 그에게 34년차 대선배 한석규는 부담스러운 연기 상대일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잘 이끌어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같이 잘 챙겨주시는 분이에요. 극중에서는 평범한 부녀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 외 시간들은 정말 평범하고 따뜻하게 챙겨주셨어요.” 그는 “장면 자체도 무겁고 어두운 공간에서 찍다 보니까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지치는 게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한석규 선배님이) 한번씩 농담으로 ‘전기를 너무 아껴서 상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송연화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한석규가 대상을, 채원빈이 신인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채원빈에게 연말 시상식에서 받고 싶은 상이 있냐고 묻자 “한석규 선배님과 베스트 커플상을 받고 싶다”며 “가장 탐나는 상”이라고 말했다.
채원빈은 2019년 단편영화 ‘매니지’로 데뷔해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순정복서’ ‘스위트홈 2·3’, 영화 ‘마녀 2’ 등에 출연했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는데, 이번 작품에선 특히 무거운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차기작으로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청춘물을 긴 호흡으로 연기해보고 싶어요.”
한겨레 김민제 기자 /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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