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2022년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속 들끓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던 소녀 김혜윤의 얼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박이웅 감독의 첫 장편이었던 영화는 제목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두 번째 장편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으로 돌아온 박이웅 감독은 그 에너지를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특히 이미 사그라진 마음에 잔잔한 불꽃이 피어난 노인의 얼굴에 주목한다.
영화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살아가는 나이 든 선장 영국(윤주상)이 함께 일하는 젊은 선원 용수(박종환)의 ‘위험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빠져나가 고령화한 마을에서 용수 역시 하루라도 빨리 마을을 떠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사고로 죽었다고 위장해 노모 판례(양희경)와 베트남에서 온 아내 영란(카작)에게 보험금을 받게 하고는 다른 공간에서 살아갈 속셈이다. 어째서인지 영국은 용수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들어주고야 만다. 용수는 마을을 빠져나가고 영국은 파출소로 달려가 그가 바다에 빠졌다고 거짓말을 한다.
영화는 용수의 ‘실종’이 일종의 연쇄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 집중한다.
잔잔했던 어촌마을은 사건 이후 마치 한순간에 거센 풍랑을 만난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인식하지 못했던 마을 전체의 문제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내어보인다.
용수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어머니 판례로 인해 사건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용수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 작업에 동참했던 어민들은 생선 도매상들과 마찰을 빚는다. 그 사이에서 이들이 얽히고설킨 어촌마을 속 먹이사슬의 실체도 옷을 벗는다.
용수의 아내로 베트남 출신인 영란이 끝내 영주권을 얻지 못한 채 떠나가야 할 위기에 처하면서 젊은 사람들의 빈 자리를 동남아 사람들로 채우려던 마을과 사람들은 편견과 혐오의 날카로운 시선까지 드러낸다.
기어이 마을과 사람들은 폐쇄적 고립을 자처한다.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영국의 물음에 한때 마을을 떠나 서울에 갔다 되돌아온 선원은 “제 정신이면 떠나야죠.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묻는다. 용수가 내민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 영국은 선원의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아침이 밝아오기 직전의 푸르른 새벽, 하늘을 이리저리 맴도는 갈매기 한 마리를 먼 거리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갈매기는 자유로워 보이기도, 혹은 그 공간에 익숙해져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어촌마을을 ‘갈매기’의 이미지에 빗대어 묘사한다. 잔잔해 보이던 바다가 순식간에 얼굴을 바꿔 위험한 공간으로 변하듯, 어쩌면 젊은 선원 용수도 마을의 분위기가 결국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라 여겼는지 모른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영국의 시선처럼 “어떻게 해도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는 없고, 뭔가 하려 했다면 진작에 했어야 했을 사람의 후회”(박이웅 감독)가 바로 거기에 녹아들었다.
배우 윤주상은 나이 든 선장 영국 역을 맡아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중심점이 되어주며 관록을 드러낸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며 언뜻언뜻 스치는 표정과 용수의 계획에 협조하며 생긴 연쇄적인 일들로 인해 느낄 수밖에 없는 이중적 감정들이 묻어나는 얼굴은 이야기의 무게를 균형감 있게 잡아준다.
또 한 명의 베테랑 배우인 양희경은 용수의 어머니 판례 역으로 자식을 잃고 무너져내린 부모의 마음을 밀도 높게 표현한다. 언젠가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실체 없는 믿음과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망울을 물기로 적신다.
박이웅 감독은 첫 장편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이전에, 산발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지만 바로 제작하지 못했다. ‘불도저에 탄 소녀’ 안병래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다시 영화 속 공간인 동해안 마을을 찾은 감독은 새롭게 시나리오를 구축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 : 박이웅 / 출연: 윤주상, 양희경 / 제작 : 고집스튜디오 / 장르 : 드라마 / 개봉 : 11월27일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13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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