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홍경이 영화 ‘청설’(감독 조선호)로 관객 앞에 섰다. 사랑 앞에서 멈출 줄 모르는 순수하고 싱그러운 청춘의 얼굴을 그려낸 그는 “유독 각별한 작품”이라며 20대 끝자락에서 만난 ‘청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홍경이 주연을 맡은 ‘청설’은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용준(홍경 분)과 진심을 알아가는 여름(노윤서 분), 두 사람을 응원하는 동생 가을(김민주 분)의 청량하고 설레는 순간들을 담은 작품으로, 지난 6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극 중 홍경은 사랑 앞에서는 직진뿐인 용준을 연기했다. 용준은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모른 채 고민을 안고 살아가다 여름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삶에 동력이 생기는 인물이다.
홍경은 특유의 섬세한 감정 열연으로 처음 누군가를 사랑하고 스며드는 과정을 온전히 표현해 호평을 얻고 있다. 청춘의 서투르지만 순수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얼굴을 진심을 다해 담아내며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또 한 번 증명했다.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수어 연기와 노윤서와의 설레는 로맨스 호흡도 흠잡을 데 없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홍경은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며 ‘청설’과 함께한 순간을 돌아봤다. 20대 배우들이 온전히 이끌어간 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작품이 지닌 의미를 짚기도 했다.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어떤 점에 끌렸나.
“개인적으로 원작이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것에 크게 긍정적이진 않다. 한 번 만들어진 이야기를 다시 한다는 게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호기심이 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순수함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만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순간, ‘처음’이라는 걸 마주했을 때 오는 순수함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느꼈고 그 순수함이 지금 이 시기에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세상이 빨라지고 금방 휘발돼 버리는 시기잖나.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거든.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것,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 마음을 전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마음을 다해야만 하고 시간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원작에서도 보였고 감독님이 준 시나리오에도 보였다. 그리고 이 글이 더 좋았던 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20대의 삶이 은연중에 다 묻어있다고 생각했다. 용준은 그 시기를 지나면서 하는 고민이 있고 여름도 응축돼 있다. 그런 것들에 서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거다. 이런 지점들이 리메이크작임에도 선택하게 했고 재밌었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나도 그렇고 뭔가 마음속에는 있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용준도 그런 시기를 지나면서 답답함이 있었을 거다. 그렇다고 이 친구가 마냥 놀고만 있는 친구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러던 친구가 처음 사랑에 빠지면서 몰랐던 세계로 들어가잖나. 나 혼자라면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여름을 사랑하게 알게 되고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온전히 다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런 지점에 있어서 어떤 상태, 어떤 마음이길래 이런 것들을 표현해 나갈까 더 세심하게 잡아나가야 했고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을 이미지로도 보여줘야 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진짜 명확했다. 빈틈없이 잘생기고 예쁘지 않았으면 했다. 모든 인물들이 빈틈이 마구 있었으면 좋겠고 수수했으면 좋겠고 세팅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바람 불면 머리도 날리고 화장기도 없었으면 해서 헤어, 메이크업, 의상팀, 그리고 감독님에게 제안을 여러 차례 했다. 본연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자연스러움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 분명히 거기서 오는 느낌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수수함을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 나갔다.”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적으로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
“단순했다. 온 마음을 다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 순간 느끼는 것에 솔직하게, 가까이 다가가서 하는 것.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표현할까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 순간을 느끼고 집중했다. 시나리오를 다 읽어서 이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머리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몸이 이끄는 대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이 순간 뭘 느끼고 반응할 것인지에만 집중했다. 이 작업이 소중하고 각별하고 어려웠던 게 더 솔직해야 한다는 거였다. 시종일관 용준과 여름, 가을을 비추기 때문에 얼굴에 거짓말이 있으면 안 됐다. 특히 극장에서는 거짓말하면 관객이 다 안다. 솔직하게 내비쳐야 하는 것이고 결국 그 솔직함이 가슴을 관통해서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솔직함 그것에만 집중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두 청춘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대해 깨닫거나 알게 된 게 있다면.
“이 작품을 하면서 부끄러웠던 순간, 배운 게 있다. 용준은 용감하게 마주하잖나. 내 마음에 대해서 솔직하게 마주하고 그걸 상대에게 고백하고 다가가려고 한다. 나는 그러지 못한 순간이 부끄럽게도 많다. 내 마음이 이런데 상대는 나와 같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마음이 너무 커도 한 발짝 다가섰는데 상대가 주춤하면 세 발짝 물러서고 작아지고 움츠러들고 그런다. 온전히 내 마음을 다하는 것, 솔직하게 마주하는 게 사랑이 아닐까. 그런 것에 영향을 받고 배웠다. 용준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마주하는구나, 요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렇게 솔직한 용준을 표현하기 위해 의견을 더한 지점도 있나.
“하고 싶은 걸 못찾은 것뿐이지 자기 주관이나 마음에 굉장히 솔직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용준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 있어 확 조명되는 게 아니라 은연중에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용준의 방에서도 그런 지점들이 드러나길 바랐다. 철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책들도 자기 세계가 분명하게 담겨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감독님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직접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다양하게 의견을 냈다. 그리고 하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다. 결국 엄마, 아빠와 있을 때 용준의 모습에서 보이고 용준이 있는 공간에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같이 만들어 나갔다.”
-조선호 감독이 실제 배우의 모습을 캐릭터에 녹이길 주문했다고 들었다. 스스로에게서 어떤 면을 꺼내고자 했나.
“감독님이 내게 어떤 모습을 봤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그걸 내가 알고 있으면 더 위험할 것 같다. 내가 그걸 의도적으로 사용해 버리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되묻지도 않았고 왜 나를 선택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노력한 점은 그냥 계속 용준의 마음을 알아나가는 거였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부분들을 계속 찾아나갔던 것 같다.”
-연락이 되지 않던 여름을 다시 마주했을 때 화보다는 안도하고 걱정하는 용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배우의 해석이었나.
“나도 그 장면을 좋아하는데 감독님이 여지를 많이 열어줬다. 시나리오에 어떻게 표현될지 구체적으로 적혀있진 않았다. 그런 시나리오가 좋다고 생각한다.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면 가능성이 닫힌다고 느껴서 간결한 글을 통해 상상할 범위를 넓혀주는 게 좋다. 그 장면에서 용준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용준이가 먼저 한 선택은 웃어 보인다. 미소를 한 번 띄운다. 걱정을 먼저 한다. 자신의 마음을 눌러 담고 상대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피어나는 다른 반응들이 있다. 짧은 신 안에서 바뀌어간다. 답답하다가 속이 상해서, 마음이 주저앉아버려서 눈물이 나오게 되고. 무책임한 말인데 나도 그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노)윤서와 주고받은 에너지인 것 같다.”
-노윤서, 김민주와의 호흡은 어땠나.
“노윤서는 ‘슈퍼 커리어’를 쌓고 있잖나. 시작부터 출중하게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고 훌륭한 선배들과 작업했다. 작품도 다 봤다. 수어 수업하면서, 촬영하면서 느낀 건 총명하고 영민하고 똑똑하다는 거다. 본인이 어떤 신에서 해야 할 것들을 명확히 알고 있다. 명확한 부분에 있어 많이 배웠다. 연기적인 것 외에는 리더십이 되게 좋다. 현장에서 호흡이나 동력을 더 불어 넣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윤서가 그런 것들을 다 잘 챙겼다. 자극을 받았고 많이 배웠다.
김민주는 진짜 깊다. 영화의 굴곡은 결국 민주가 다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큰 갈등이 있고 작위적인 것들은 영화를 볼 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뒤통수를 살살 긁으면서 불편하게 만드는 게 진정한 갈등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영화에서도 언니와 동생의 갈등이 너무 분명했다. 자꾸 후벼파는 지점이 있었는데 그런 신들에서 민주가 보여준 연기적 깊이에 놀랐다. 수영장 레인 중간에 멈춰서 모자를 벗고 답답해하는 얼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내겐 되게 시네마틱하다. 그런 한 몽타주 장면에서도 이 배우는 레이어를 보여주는구나 싶어서 되게 감탄했다.”
-수어 연기를 통해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소통한 과정이 연기 자체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어떤가.
“맞다.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언제나 연기가 탁구처럼 핑퐁인 거 같거든. 주고받는 것. 이 작품을 하면서 여실히 느낀 것은 온전히 나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 아무 계획도 하지 않았고 온전히 얻어맞을 생각으로 했고 상대가 뭘 던지는지 어떤 마음을 느끼는지 절대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마음이 여기까지면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집중하는 법을 훨씬 더 많이 배웠다.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을 나도 마주했다. 영화는 내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마음과 진심, 상대에 대한 집중, 이런 것들을 정말 크게 배웠다.”
-유독 이 작품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진짜 각별하다 이 작품은. 개인적일 수 있으나 나는 영화를 너무 사랑한다. 마냥 판타지적이고 장르적인 로맨스가 많은 시기에 그런 것도 은연중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삶이 잘 녹아져 있는 작품에서 20대 배우들이 춤춘다, 그리고 그 작품이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것, 어렵다고 하는 이 시기에 이 작품을 내보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건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런 영화들이 조금은 꽃피워줘야 다음 20대들에게도 기회가 생기고 20대 배우들도 충분히 끌어 나가면서 20대만이 할 수 있는 영화를 내보일 수 있다. 꼭 경험치와 어떤 능력이 있어야만 끌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런 가능성이 이 작품으로 드러났으면 좋겠다. 투자한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얼마나 어려운 선택이었겠나. 정말 너무 안다. 그래서 각별하다. 정말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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