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로 대세 반열에 오른 배우 정성일이 넷플릭스 영화 ‘전,란’(감독 김상만)으로 돌아왔다. 일본군의 선봉장 겐신으로 분해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인 그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정성일이 출연한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선조(차승원 분)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돼 호평을 얻은 데 이어, 지난달 11일 넷플릭스를 통해 정식 공개 후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극 중 정성일은 조선 땅을 침략한 일본군의 선봉장 겐신을 연기했다. 겐신은 사무라이 갑주를 입고 도깨비 탈을 쓴 채 사냥터를 누비듯 전쟁터를 누비는 인물이다. 정성일은 몰입도를 높이는 능숙한 일본어 대사는 물론, 디테일이 살아있는 일본 전통 검술 동작까지 완벽 소화해 호평을 얻고 있다. 깊이 있는 눈빛과 중저음의 목소리로 전형적이지 않은, 자신만의 색다른 캐릭터를 빚어냈다는 평이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정성일은 ‘더 글로리’ 이후 차기작으로 ‘전,란’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일본어 연기와 검술 액션 준비 과정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의 마음가짐, 배우로서의 고민 등 솔직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더 글로리’ 이후 택한 작품이었다. 고민이 많았다고.
“‘더 글로리’라는 작품이 너무 화제가 되고 하도영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이슈가 되다 보니 그런 류의 비슷한, 재벌이나 슈트를 입고 각 잡힌 느낌의 캐릭터와 작품 제안이 많이 왔다. 선택을 하려면 그냥 거기에 맞게 갔을 수도 있는데 비슷한 캐릭터에서 하도영을 넘어설 수 있는 인물을 내가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비슷한 류를 택하면 너무 국한될 것도 같아서 고사한 작품들이 있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잘 가고 싶은 마음으로 감사하게 기다렸다. 그러던 와중에 ‘전,란’ 제안을 받게 됐고 안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의도한 대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일본어 연기에 대한 호평도 많은데.
“사실 나도 내가 등장하는데 못알아보겠더라. 얼굴이 안 보이니까.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고 못 알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도영이었어? 정성일이었어? 하니까 내가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뤘구나, 기분이 좋았다. 뿌듯하다. 일본인 친구도 있고 일본어를 잘하는 지인도 있는데 제일 먼저 일본어 연기 어땠냐고 물어봤더니 처음에는 더빙한 줄 알았다고 하더라. 다행히 어색한 점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서 긴 시간 노력한 게 드러났구나 뿌듯함을 느꼈다.”
-스스로 만족도도 궁금하다. 하도영(‘더 글로리)에게 얼마나 벗어났다고 생각하나.
“몰라봤다는 반응을 보니 내가 작품을 선택하고 준비한 것에 대한 보상은 받지 않았나 싶다. 아니, 그 이상으로 보상받은 기분이다. 캐스팅된 배우들을 보고 내가 여기 껴도 되나 싶었다. 어벤져스 사이 서민 한 명이 껴있는 느낌이었는데 이왕 들어갈 거면 피해는 주지 말자는 마음이 컸다. 기다린 보람이 있는 작품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부산영화제에 처음 갔는데 개막작으로도 선정되고 여러 좋은 경험을 하게 돼서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고마운 마음이다. 하도영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저 이런 모습도 있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정도인 것 같다.”
-일본어 준비 과정은.
“그게 이 작품을 택하는 데 가장 큰 메리트였다. 다른 나라 언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전에 했던 것에서 가장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국적 자체가 달라지는 거니까. 제작사에서 ‘아가씨’ 일어 고문을 해준 교수님을 소개해 줘서 히라가나부터 배웠다. 대사만 외워서 하면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이 기회에 일본어도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6개월 정도 공부했다. 대본을 보면서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현장에서도 일본어를 하는 배우가 있어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억양이나 톤 같은 것들에 대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대말이 아니고 고어다 보니 거기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다. 결국 실생활에서는 써먹지 못하고 있다.(웃음)”
-검술 액션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준비했나.
“사실 언어에 비하면 액션은 그렇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진 않았다. 평소 몸 쓰는 걸 좋아한다. 운동을 너무 좋아하고 오래 전이긴 하지만 ‘쌍화점’ 때 거의 1년 동안 검을 갖고 지내서 그때 경험이 몸에 잘 익어있던 것 같다. 그래서 액션 스쿨에 가서 다시 기초부터 하더라도 조금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양손으로 칼을 쓰는 건 처음이라 그것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다. 끊어지지 않게 연결돼야 하니까. 또 일본 검술이다 보니 사무라이 특유의 폼이나 걸음걸이 같은 것을 많이 보고 연구했다.”
-겐신의 액션 키워드는 무엇이었나. 중점을 둔 부분은.
“7년 전후로 나눈다고 한다면 천영과 처음 싸울 때는 사무라이 같은 느낌으로 보폭이나 자세를 신경 썼다. 7년 후에는 너무 쉽게 사람을 죽여온 사람으로 기본에서 벗어난? 죽이기 위한 액션을 하는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선에 있으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의 코를 베었다면 그만큼 많은 살인을 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생명에 대해 무감각해지지 않았을까,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무리 무(武)를 중요시하던 사람도 전쟁이라는 상황 안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 살육에 아무렇지 않아져 버리지 않았을까. 그런 인물이 천영을 다시 만나 웃게 되거든. 정말 딱 한 명뿐인 호적을 만났을 때의 호기심, 그 순간만큼은 무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검술 액션 상대가 강동원이었다. 어땠나.
“(강동원이) 워낙 잘하니까 부담이 없었다. 그가 리드하면 나는 잘 따라가면 되니까. 부족한 사람끼리 하면 다칠 수 있는 게 액션이다. 둘이 합을 맞추고 연습을 해도 현장에서 많이 바뀐다.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은데 그때그때 달라진 것에 대해 강동원이 금방 해냈고 나는 거기에 맞춰 잘 따라갔다. 합을 맞추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천영과 종려, 겐신의 안갯속 액션 신도 인상적이었다. 촬영은 어땠나.
“그 장면이 어떻게 구현될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궁금하고 기대가 됐다. 그 장면을 일주일 정도 촬영했다. 실제 세트 안에 스모그를 꽉 채워서 촬영했다. 체감상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안 보였던 것 같다. 소리만 들리지 어딘지 안보이고 방향성을 잃고 그랬다. 정말 그렇게 해버리니까 모니터도 못찾고 나가는 문도 못찾고 그랬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 시퀀스의 관계도가 너무 명확해서 나도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강동원, 박정민과 첫 만남이었는데.
“강동원을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이 있었다. 나와 다른 세계 사람 같고 ‘와, 연예인이다’ 이런 느낌. 그런데 생각보다 금방 친해졌다. 지방 다니면서 골프도 같이 치고 사적으로 친해지면서 연기 이야기, 작품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외형적인 걸 떠나서도 그렇다. 천천히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힘이 있는 배우였고 덕분에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생긴 건 불편한데.(웃음) 박정민도 촬영 중후반에 만났는데 연예인 보듯 좋아하는 배우들을 볼 수 있고 그 사람들과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신났다. 또 너무 잘하잖나. 박정민은 정말 뜨겁다. 현장에서 몰입과 에너지가 상당하다. 이래서 박정민이 할 수 있는게 많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지만 배울 게 정말 많았다.”
-김상만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연기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늘 말해줬다. 감독님도 일본어를 하다 보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단어 같은 것도 현장에서 늘 조율하고 감독님이 원하는 뉘앙스로 일본어 선생님과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그때 수위를 맞춰갔다. (김상만 감독이) 엄청 디테일하다. 허허 웃으시는데 할 말 다 하고 ‘허허 힘들지’ 하다가도 ‘그래도 안 죽어~’ 한다.(웃음) 너무 귀엽고 좋았다.”
-‘더 글로리’로 큰 관심을 받고 ‘달라질 건 없다, 기회가 더 많이 올 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쌓아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기를 어떻게 하지, 늘 그 고민이 젤 크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온 게 ‘전,란’인데, 그사이 촬영을 한 것들도 있고 감사하게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작품이고 캐릭터를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날 선택해 준 사람들을 위해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나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불확실한 생활 속에서 배우 일을 하다 보니 불안함도 있다. ‘더 글로리’가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려고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 불안함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불안함을 이기는 건 열심히 잘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이기도 하고 그렇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작품, 연기를 하고 싶다. 명확하진 않지만 내가 하는 연기가 보는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마음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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