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라면 소녀’
그녀가 밝히지 않았던 놀라운 비밀
1986년, 한 깡마른 소녀가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트랙을 달렸다. 창백한 얼굴에 삐쩍 마른 체격, ‘라면만 먹고 훈련했다’는 소문까지 더해지며 ‘라면 소녀’라 불리던 임춘애였다.
그때의 그녀는 비인기 종목 육상에서 무려 세 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국민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찬란한 순간 뒤에는 상상도 못 할 오해와 소문이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
“여자 맞아?” 당시 임춘애를 향한 시선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의심으로 번졌다. 워낙 깡마른 체격에 생리조차 없었던 그녀는 육상 경기 내내 성별 검사를 무려 세 번이나 받아야 했다.
임춘애는 “한 동료가 나에게 ‘반은 여자, 반은 남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해 줬다. 그 얘길 듣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라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그렇게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모든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결국 검사 결과는 ‘여성’으로 판명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모멸감은 오랜 시간 그녀를 괴롭혔다.
임춘애가 중성적인 외모로 인해 오해를 산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목욕탕에 갈 때마다 “남탕으로 가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질책을 들어야 했고, 이미 성별 인정을 받은 후에도 체육과학연구원에 다시 찾아가 성별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머리도 짧고, 걷는 것도 구부정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해할 만도 했다”라며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
‘라면 소녀’의 진실
‘라면 소녀’라는 별명도 사실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부 간식을 라면으로 때우던 경험이 와전되며 언론에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후 “사실 라면은 간식이었고, 체력 보충을 위해 삼계탕을 더 많이 먹었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별명은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고, 사춘기 소녀였던 임춘애는 이 별명 때문에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자기를 오해할까 걱정이 많았다.
임춘애는 국민적 기대와 압박 속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예선 탈락 후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라면 먹던 애가 배가 불렀구나” 같은 비아냥은 물론, 심지어 개그 프로그램에서까지 그녀를 희화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심적으로 큰 상처였지만, 그녀는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훈련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뒤에서 쫓아오며 속도를 강제하는 코치, 제한 시간을 넘기면 무한 반복되는 트랙 주행, 그리고 기대에 못 미치면 이어지는 체벌.
임춘애는 귀를 맞아 고막이 터진 적도 있었다. 결국 이런 극한의 훈련은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졌고, 그녀의 골반은 온전히 자라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1990년, 그녀는 육상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라면 소녀’는 지금…
은퇴 후 임춘애는 평범한 삶을 꿈꾸며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생계는 녹록지 않았다. 자동차 딜러부터 요식업까지 다양한 일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다른 건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며 웃었다. 그렇게 시행착오 끝에 그녀는 현재 경기도청 직장운동경기부 지원협력관으로 활동 중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받은 상처와 배움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훈련과 구타 대신, 제대로 된 훈련법을 전수하고 싶다는 그녀는 “폼이 생명이다. 올바른 자세로 달려야 부상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라면 소녀’ 임춘애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더는 오해나 억측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은 후배들을 자랑스럽게 응원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달리는 또 다른 트랙 위에서 묵묵히 걸음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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