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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넨 섬에서 마주한 칼 한센 앤 선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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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한센 앤 선의 ‘더 랩’이 복원하고 제작한 카레 클린트 디자인의 ‘스페리컬 베드’와 ‘잉글리시 체어’.

칼 한센 앤 선의 ‘더 랩’이 복원하고 제작한 카레 클린트 디자인의 ‘스페리컬 베드’와 ‘잉글리시 체어’.

코펜하겐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달려 ‘그레이트 벨트’ 해협을 건너면 푸넨(Funen) 섬에 도착한다. 한 세기 넘게 덴마크 디자인의 정수를 증명해 온 칼 한센 앤 선의 공장과 현재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창업주 가족의 3세대, 크누드 에리크 한센(Knud Erik Hansen)의 저택이 있는 곳이다. 칼 한센 앤 선은 1908년 이곳에서 캐비닛 장인이 운영하던 작은 공방으로 시작했다. 한스 J. 베그너의 ‘위시본 체어(Wishbone Chair)’로 불리는 ‘CH24’처럼 오랫동안 ‘클래식’이 돼온 칼 한센 앤 선의 가구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푸넨 섬에 도착한 오후, 티타임이 시작됐다. 2002년부터 칼 한센 앤 선을 이끌고 있는 크누드 에리크 한센은 자신의 저택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크누드는 17세기에 지어진 이 저택에서 아내 그리고 독일 출생의 셰퍼드 반려견 폴리와 산다. 한센 부부는 약 20년 전 42개의 방이 있는 저택과 3만m2에 달하는 부지를 매입한 후 수년에 걸쳐 손봤다.

 코펜하겐에서 열린 2024 ‘3Daysofdesign’에 전시한 체어 ‘CH36’의 뒷모습.

코펜하겐에서 열린 2024 ‘3Daysofdesign’에 전시한 체어 ‘CH36’의 뒷모습.

 공장에서 정교하게 제작되고 있는 위시본 체어.

공장에서 정교하게 제작되고 있는 위시본 체어.

‘쨍’한 햇살 속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일쑤인 날씨 탓에 아웃도어 컬렉션을 경험하기 위해 야외 테라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계획이 변경됐다. 한센 부부는 저택 꼭대기 층 라운지로 모두를 불러 모았다. 덕분에 42개의 방과 복도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방마다 칼 한센 앤 선의 빈티지 피스부터 북유럽 디자이너 가구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칼 한센 앤 선의 CEO인 크누드 에리크 한센은 가구 제작뿐 아니라 가구에 담긴 역사와 스토리에도 많은 열정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가구를 기획하다가 자체 아카이브에 원본이 없으면 직접 경매에 나서 해당 빈티지 가구의 원본을 구입할 정도다. 5년간 도쿄와 코펜하겐을 오가며 완성한 안도 다다오의 ‘드림 체어(TA001P)’에는 금속 프레임 없이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재단된 밴딩 우드를 사용했다. 가구 디자인과 제작에 있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크누드 에리크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칼 한센 앤 선은 아카이브 속의 클래식 디자인뿐 아니라 꾸준히 새로운 디자이너들과도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크누드 에리크 한센은 이날 ‘사이드웨이스(Sideways)’ 컬렉션을 디자인한 리케 프로스트(Rikke Frost)를 초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더했다. 사이드웨이스 컬렉션은 모바일 사용은 줄이고 더욱 친밀한 관계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디자인됐다.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안락함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음날, 첫 일정은 푸넨 섬에 있는 6만㎡에 달하는 칼 한센 앤 선 공장 투어로 시작했다. 공장을 이루는 건물 중 1개 동이 아예 이들의 아니코닉한 의자 CH24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로 개조돼 있었다. 매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CH24는 10만 피스. 이는 위시본 체어의 전 세계적인 명성과 수요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특히 중국에서 이 제품을 카피하는 공장이 여러 군데 있지만 ‘메이드 인 덴마크’ 오리지널 의자의 퀄리티를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칼 한센 앤 선의 역사가 시작된 푸넨 섬에 현 CEO인 크누드 에릭 한센의 저택이 있다.

칼 한센 앤 선의 역사가 시작된 푸넨 섬에 현 CEO인 크누드 에릭 한센의 저택이 있다.

1908년 캐비닛 제작자 칼 한센이 푸넨 섬에 세운 작은 가구 공방, 1949년부터 덴마크 디자이너 한스 J. 베그너와 협업을 시작한 브랜드의 성공은 완벽한 퀄리티와 멋진 디자인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두 개의 기축점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이는 ‘더 랩(The Lab)’이라는 칼 한센 앤 선의 교육 워크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많은 덴마크 가구 브랜드가 오래전부터 생산을 아시아로 아웃소싱한 데 비해 칼 한센 앤 선은 전문 인력 부족에 대응해 공장 내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해 25명의 미래 캐비닛 제작자들이 숙련된 장인들에게 3년에서 3년 반 정도 가구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익힌다. 더 랩에서는 교육 외에도 칼 한센 앤 선의 빈티지 모델 복원 작업을 도맡고 있다. 코펜하겐의 디자인 위크인 ‘3데이즈오브디자인(3daysofdesign)’ 기간 동안 선보인, 카레 클린트의 ‘스페리컬 베드(Spherical Bed)’와 ‘잉글리시 체어(English Chair)’ 역시 더 랩에서 복원·제작됐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제품에 대한 수리 및 복원 서비스, 목재의 저장, 제조, 마지막 품질 관리까지 다양한 단계의 생산공정이 모두 이 공장에서 이뤄진다. 가구에 사용되는 목재로 참나무, 너트, 물푸레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한 저장소에 보관돼 있는데 모두 칼 한센 앤 선과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숲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된 목재다. 칼 한센 앤 선의 가구들은 나무 기둥에서 가장 좋은 부분만 엄선해서 만들어진다.

브랜드의 베스트셀러인 CH24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브랜드의 견고한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의자의 곡선 다리를 매끄럽게 샌딩하고 분리된 조각을 붙이고, 자외선을 이용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글루 스폿’까지 잡아낸다. 완벽한 품질을 위해 세심하고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직원 한 명이 하루에 17~30개의 CH24를 만들며, 한 개의 의자를 제작하는 일은 한 명의 직원이 온전히 담당하고, 각 의자에는 제작자의 마크가 각인된다. 정성과 노력, 자부심으로 완성된 의자의 프레임은 정교하게 짜인 좌석 부분이 생산되는 다음 위빙 과정으로 옮겨진다. 150m의 페이퍼 로프는 장인의 손으로 44번 감아 프레임에 고정시킨다. 이토록 섬세한 과정은 덴마크 디자인이 가진 명성을 대변한다. 올해 칼 한센 앤 선이 ‘3데이즈오브디자인’에서 다시금 선보인 ‘잉글리시 체어’는 위빙에만 총 75일이 걸린다. 여전히 복잡한 과정과 노력, 긴 시간을 할애하는 방식을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방식에 대해 크누드 에리크 한센은 이렇게 말했다. “대를 이어 사용될 의자를 생산하기 위해 브랜드가 마땅히 치러야 할 의무죠.” 고즈넉한 푸넨 섬 한가운데에는 겸손한 장인들이 산다. 오래된 아름다움을 지금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사명감과 의무를 가진 이들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곳.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성장해 온 브랜드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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