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 도시를 둘러싼 ‘불길한 징조’가 있었다. 그럼에도 민간인을 향한 폭격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비극의 그림자는 더욱 짙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을 침략했다. 우크라이나군은 2개월 넘게 방어했지만 마리우폴은 같은 해 5월 러시아군에 함락됐다.
다음 달 6일 개봉하는 전쟁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AP 통신 취재팀이 전투가 시작된 당일부터 러시아의 봉쇄와 폭격 등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파괴된 마리우폴에 남은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고 긴박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올해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33개의 상을 휩쓸었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연출, 각본, 촬영, 내레이션까지 담당한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은 우크라이나의 도시 하르키우 출신으로 고국의 참상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전쟁은 AP 통신 취재팀이 머문 단 20일 만에 마리우폴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도시로 변모시켰다. 건물에서는 시종일관 연기가 피어올랐고, 집과 차는 불타버렸다. 고립된 도시의 한편에서는 도둑질이 벌어졌다. 공습으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학살당하면서 삶의 터전에는 ‘집단 무덤’이 만들어졌다.
● 이들은 왜 집요하게 기록했나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비인간적인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집요하면서도 대담하게 뒤쫓는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영문도 모른 채 공격을 당한 마리우폴 주민들의 절망, 당혹, 울부짖는 목소리를 통해 마치 그 현장에 놓인 듯 등골이 서늘해지는 현장감을 선사한다.
AP 취재팀은 러시아의 주요 타깃이 된 마리우폴로 향한다. “전쟁은 폭발적인 굉음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된다”는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의 내레이션처럼 첫날은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머무는 동네에 떨어진 폭탄으로 인해 상황은 순식간에 변했다.
“전 재산을 버렸다”던 한 주민은 카메라를 든 취재진을 향해 “기레기”라고 분노한다. 긴급한 현장에서 군인들 또한 “찍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취재팀은 “우리가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기의 침공을 카메라에 담아내려는 참된 저널리즘의 역할이 엿보인다.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은 이 작품에서 특별히 세 명의 이름과 나이를 언급한다. 바로 공습으로 인해 사망한 아이들이다. 위급한 상태로 실려온 4살 에반겔리나가 죽자, 의사는 카메라를 향해 “계속 찍어라” “푸틴에게 이 아이의 눈과 우는 의사들을 보여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취재팀은 “잔인한 장면이 많아 보기 고통스럽지만 꼭 봐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현장에서 찍은 영상과 사진을 편집팀에게 보냈다. 인터넷과 전기가 끊긴 이후에는 위성전화기로, 현지 경찰의 도움으로 이들이 찍은 장면과 인터뷰는 전 세계에 뉴스로 송출됐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현장과 뉴스 장면을 교차하며 이들의 절박한 기록물이 어떻게 뉴스로 보도됐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러시아의 ‘가짜 뉴스’는 명백한 기록의 힘으로 신빙성을 잃는다. 산부인과 병동을 파괴하며 전쟁범죄를 저질렀지만 러시아 측에서는 피해자들이 고용된 배우이고 영상과 사진이 조작됐다고 반박했지만, 그들의 거짓말은 분노를 일으킬 뿐이었다.
이 작품은 아이를 잃고 절규하는 부모의 얼굴을, 피범벅이 된 채 멍하게 서 있는 얼굴을, 폭발의 굉음으로 놀란 얼굴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고립된 상황에서 패닉 상태에 빠져 죄책감 없이 도둑질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취재팀은 끈질긴 기록으로 모든 걸 파괴하고, 결국 인간성마저 끌어내리는 전쟁의 참혹하고 끔찍한 속성을 파고든다.
● 우리가 이 작품을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담은 ‘마리우폴 포위전’은 2년 전 종결됐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보낸 정황이 확인되면서 정치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나라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이 이 작품을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극 말미 신원을 알 수 없어 숫자가 적힌 팻말이 꽂힌 수많은 집단 무덤을 비춘다. ‘전쟁의 결말은 결국 비극’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크다.
감독 :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 제작 : 프론트라인 PBS·AP(Associated Press) / 장르 : 전쟁, 다큐멘터 / 개봉 : 11월6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94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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