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살아 있는데
호적이 말소됐던 그녀의 사연
“호적에서 파버린다!” 수많은 자녀가 부모님에게 들어온 이 말을, 배우 김금순은 실제로 겪었다. 연기 경력 30년에 달하는 그녀의 인생 여정에는 가족의 반대, 공백기, 그리고 재기의 역사가 담겨 있다.
최근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과 tvN의 인기작 ‘엄마친구아들’에 출연하며 주목받은 그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김금순은 중학교 시절 연기 수업을 계기로 연기에 눈을 떴지만, 오랫동안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연기를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로 강하게 반대했다.
그 말이 그저 협박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훗날, 그녀가 등본을 떼러 갔을 때였다. 실제로 자신의 기록이 말소된 것을 확인한 순간, 김금순은 “연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10년 만의 복귀
하지만 이후 김금순은 결혼과 육아를 위해 연기를 잠시 포기해야 했다.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2011년,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 한 지인의 권유로 프로필을 온라인에 올렸고, 우연히 단편 영화 출연 제안을 받으며 복귀의 첫발을 뗐다. 영화의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었다”며 그때 느낀 설렘을 회상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흐른 2024년 10월 3일, 김금순은 마침내 부산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 영화 ‘정순’에서 중년 여성의 고통과 회복을 그려낸 그녀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상식 무대에서 김금순은 “몸과 마음이 시렸던 그날들을 함께 견뎌준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며 뜨거운 감사를 전했다.
이날 그녀는 패션 회사에 다니는 큰아들이 준비해준 정장을 입고, 고등학생 둘째 아들이 선물한 보디로션을 바르고 무대에 올랐다. 자식들의 응원이 담긴 그 순간은 김금순에게 “가문의 영광”이었다.
경쟁자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리볼버’의 전도연, ‘시민 덕희’의 라미란, ‘잠’의 정유미, ‘파묘’의 김고은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받은 이 상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또한 김서형, 송중기 등 다른 배우들의 축하를 받으며 김금순은 감격의 순간을 한층 실감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 ‘정순’은 디지털 성폭력과 그로 인한 개인의 상처를 다루며 관객과 공감을 나눴다. 김금순은 이 작품에 대해 “마치 몸에 사포를 문지르는 듯한 아픔을 표현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연기는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50대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는 관객의 평을 받기도 했다.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긴 공백기와 도전의 연속이 있었기에, 그녀는 더 단단한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김금순은 이제 더 다양한 역할을 꿈꾼다. 액션 연기부터 SF 장르까지 도전해 보고 싶다는 그녀는 “아직 보여줄 게 많다. 소처럼 일하며 새로운 연기 세계를 열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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