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심은경은 10세에 연기를 시작한 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연기 내공을 쌓았고 주연으로 활약한 영화 ‘써니’(2011)와 영화 ‘수상한 그녀’(2014)를 흥행시키며 충무로 대세 배우로 성장했다.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심은경은 한국은 물론, 일본 무대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영화 ‘신문기자’(2019)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은 데 이어, ‘블루 아워’(2020)로 제34회 다카사키 영화제에서 일본배우 카호와 함께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미 국내에서는 확실히 입지를 다진 심은경은 이름값에 기대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택하며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그리고 6년 만의 국내 영화 복귀작인 ‘더 킬러스’(감독 김종관‧노덕‧장항준‧이명세)를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더 킬러스’는 헤밍웨이 단편소설 ‘더 킬러스’를 모티프로 김종관‧노덕‧장항준‧이명세 등 감독 4인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고 탄생시킨 4편의 살인극을 담은 ‘시네마 앤솔로지’다. 부산국제영화제‧뉴욕아시아영화제‧판타지아영화제‧시체스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돼 주목받았고 지난 23일 정식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김종관 감독의 ‘변신’, 노덕 감독의 ‘업자들’, 장항준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이명세 감독의 ‘무성영화’ 등 네 편의 단편영화로 이뤄진 영화에서 심은경은 모든 이야기에 등장해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인다. 미스터리한 바텐더부터 의문의 피해자, 타블로이드 잡지 모델, 괴짜 웨이트리스까지 개성 강한 캐릭터로 변신해 다채로운 얼굴을 꺼내 보인다.
심은경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궁합’(2018) 이후 6년 만에 국내 관객 앞에 서는 소감부터 ‘더 킬러스’를 택한 이유, 네 명 감독과의 촬영 비하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실험적이고 신선한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서 또 하나의 도전을 마친 그는 ‘더 킬러스’를 두고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랜만에 국내 관객과 만나는 소감은.
“하루하루 설레고 있다. 그만큼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로서 언젠가는 해보고자 했던 작품을 예상보다 빠르게 선보이게 된 자리가 돼서 무엇보다 기쁘다. 다양한 방식, 다양한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도 필모그래피에 처음 있는 거라서 좋았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이명세 감독님의 ‘무성영화’ 제안을 먼저 받았고 그 기획에 대해서만 알았다. 워낙 존경하는 감독님이니까 무조건 하겠다고 참여했는데 그 이후에 한두 분씩 대본을 줘서 어쩌다 보니 다 나오게 된 거다. 모티프가 된 원작이 있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유기적인 흐름으로 중심축을 잡아주는 게 있으면 좋겠고 그게 배우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성립돼서 너무 감사한 기회를 얻게 됐다.”
-대중적이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나는 이 작품도 대중성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게 관객이 보라고 만든 것이지 방식이나 공식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나. ‘대중에게서 멀어질 거야’라는 선언은 아니고 앞으로 더 다양하게 바라보고 연기하고 싶다. 더 확장하고 넓혀가고 싶다는 의미다. 그동안 계속 국내 작품을 촬영하긴 했다. 예전부터 실험적인 도전이나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의미 있는 것은 내가 30대가 됐을 때 이 작품이 찾아왔다는 것이고 내게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배우로서 어떻게 길을 가고자 하는 나침반이 돼줬다고 할까.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나침반이라는 표현은 이 작품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이 세워졌다는 의미일까.
“완벽하게 이 방향이다, 내비게이션 같은 의미는 아니고 이제 내 중심을 조금 더 잡았다는 표현이 될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장르의 영화들에 도전하면서 다양한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나도 영화의 팬으로서 그런 영화를 응원하고 싶고 그런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외연 확장에 대한 욕심은 해외 활동을 하면서 더 느낀 부분인가.
“해외 진출을 해서 그런 마음이 생겼다기보다 항상 내 안에 있었던 갈망이다. 내가 뭔가를 개척한다거나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배들이 갈고 닦은 길이 있었고 그걸 보면서 영향을 받으며 커왔고 나도 그렇게 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가고 있는 중인 거다.”
-가장 실험적인 도전은 이명세 감독의 ‘무성영화’였다. 시나리오 받고 어땠나. 연기하면서도 새로웠을 것 같다.
“전적으로 감독님을 믿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는 내가 영화로 진짜 예술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실 콘티도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 나도 내러티브로 자꾸 이해하려고 했던 거다. 도저히 이해가 안돼서 감독님한테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영화고 어떤 캐릭터며 어떻게 구현이 되냐고 물어봤는데 본질적으로 영화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되돌아보고 질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뭔가를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냥 느끼면 된다고 했다. 감독님에게 ‘나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거리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 간극을 어떻게 하면 좁히고 해소할 수 있을까’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뭘 다 이해하려고 해, 이해할 필요 없어, 나는 영화를 볼 때 이미지만 봐, 대사가 기억 안 나는 경우도 있어,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언젠가는 갑자기 확 다가와서 이해가 되는 순간이 있어’라는 말을 해줬다. 그 말이 위안과 힌트가 됐다. 하나의 열쇠가 돼줬다. 머릿속을 아예 비우고 백지상태로 가서 감독님이 이야기하는 걸 다 적고 대본 연습도 하고 리허설도 하면서 그렇게 했다.”
-네 명의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종관 감독님은 내가 뱀파이어 역할에 열의가 많아서 아이디어도 던지고 나름대로 의견도 많이 냈다. 음악도 하나 보내드린 적이 있는데 실제 영화에서도 흘러나온다. 내가 역할 연구를 위해 감독님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보낸 것 중 하나였는데 실제로 가편집 때 그 음악을 쓰다가 너무 좋아서 쓰게 됐다고 해서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노덕 감독님의 대본을 봤을 때 소민 역을 너무 하고 싶었다. 30~40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 내게도 도전이 될 수 있겠다 했다. 그런데 촬영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역할일 수 있겠다는 압박감과 크랭크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감이 있었다. 첫 촬영인데 많은 것을 다 소화해야 한다는 게 내게도 감독님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러 제약에도 내가 역할을 잃지 않고 연기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감독님이 많이 도와줬고 의지가 됐다. 끈질기게 감독님을 붙잡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그 역할에 애정이 많았다.
(잡지 표지만 등장하는) 장항준 감독님과의 작업이 제일 편했고 가장 쾌적하게 촬영했다. 감독님도 그걸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더라.(웃음) 공개되지 않은 2편이 있는데 그중 한 편을 같은 기간에 촬영했다. 그래서 아쉽게도 촬영장에는 가지 못했다. 가장 편하게 촬영했다. 하하.
이명세 감독님은 모니터에 없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제일 바쁘다. 누구보다 열정이 있었다. 그런 감독님의 힘 때문에 배우들도 힘을 받아서 연기할 수 있던 현장이었다. 내 팔을 직접 잡고 앵글에 맞는 움직임을 묘사하기도 했다. 밀가루도 예상치 못하게 너무 많이 흩날려서 갑자기 밀가루로 세수하고 촬영하기도 했다. 되게 즐겁게 촬영했다.”
-최근 일본에서 유의미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일본 활동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우선 일본어를 배웠다.(웃음) 언어라는 게 벽에 크게 부딪히는 점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 간극을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예상치 못하게 작품이 나를 빨리 찾아와줬다. 2018년부터 일본 활동을 시작했는데 한 3년 후부터 작품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블루아워’ ‘신문기자’ 등 빨리 작품이 찾아왔다. 그때는 일본어를 지금보다 더 못할 때니까 번역 대본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일본어 대본을 달달 외웠다. 매일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서 읽었는데 그때 했던 연습들이 지난날 잊고 있던 연기 연습했던 방식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어릴 때 촬영한 드라마 대본이 아직도 있는데 해져있거든. 그 정도로 계속 반복해서 읽고 연습하고 밑줄치고 연습을 했는데 점점 성인이 되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잡아가고 싶고 방식을 다르게 바꿔보고 싶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연습을 많이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연습한다기보다 내 안에 잘 갖고 있다가 현장에서 확 터트리는 날 것 같은 연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방식. 충실했지만 왜 보이는 것은 다른 식으로 비칠까 그게 뭘까 생각했는데 일본에서 그렇게 연습해 보니까 이거였지 싶은 거다. 대본을 읽다 보면 전체를 보게 된다. 그 전체를 바라봤던 거였다. 그래서 연습이 참 중요했다는 거, 연기를 준비하는 관점을 다시 상기하고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어느덧 30대가 됐다. 연기는 배우에게 어떤 존재인가.
“애증 관계라고 생각한다. 항상 너무 어렵고 미울 때도 많다. 도대체 왜 계속하고 있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아직 내 안에 더 보여주고 싶은 게 남아있고 뭔가 더 해야 할 게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성격을 바꾸기 위해 연기 학원에 다녔는데 하다 보니 너무 좋고 재밌는 거다. 열정이라는 감정을 연기 학원에 다니면서 처음 느꼈다. 평범한 동네 꼬마였고 초등학생이었는데 연기를 접하고 이 일을 평생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느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고는 있는데 매일 생각한다. 내가 과연 배우로서 적합한 사람인지,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이대로 괜찮은지. 너무 어렵다. 이만큼 했으면 많이 한 거 아닐까, 내가 잘하는 걸까, 그만둘까. 그런데 그러다가도 또 연기, 작품을 하면 거기에 빠져버리는 거다. 연기를 하면 너무 좋다. 애증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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