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태리가 주연한 드라마 ‘정년이’가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하는 열기 속에 1950년대 종합 예술의 무대 여성 국극을 향한 관심도 증폭하고 있다. 전통의 소리와 춤, 연기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지는 국극은 한국전쟁 직후 대중문화로 뜨겁게 꽃을 피웠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국극이 드라마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연출 정지인)가 지난 27일 방송한 6회에서 시청률 13.7%(닐슨코리아·전국 기준)을 기록하면서 또 한 번 최고치를 달성했다. 전체 12부작 가운데 전반부의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한 작품은 남은 6편을 통해 주인공 윤정년이 어떻게 최고의 국극 스타가 되는지 집중적으로 다룬다. 정년이가 국극단에 입성하는 과정을 넘어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는 정년이의 거침 없는 도전을 통해 고유한 문화 국극의 세계를 심도 있게 담아낸다. 이미 정년이의 드라마틱한 방자 연기로 시선을 끈 ‘춘향전’과 욕망이 앞선 정년이의 실수가 벌어진 ‘자명고’까지 두 편의 국극을 드라마에 넣는 ‘극 중 극’ 형식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노래와 연극을 접목한 지금의 뮤지컬 장르와 유사한 국극은 서양의 문화가 몰려든 1950년대에도 우리의 전통성을 지킨 고유한 예술 장르로 인정받았다. 드라마에서 매란 국극단을 이끄는 단장 강소복(라미란)은 입버릇처럼 “예인의 자존심”을 이야기한다. 국극 배우로 지켜야 할 가치, 전통을 잇는 예술인으로 마땅히 지녀야 할 자부심을 강조한다. 드라마의 배경은 한국전쟁 직후 전국에 생중계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대중가요 스타들도 줄지어 탄생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틈에서 국극은 전통성을 지키는 종합 예술의 장르로 뜨겁게 사랑받는다.
실제로 국극은 한국전쟁 직후 전성기를 맞았다.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아 연기하는 장르로 특색이 분명하고 ‘춘향전’과 ‘자명고’ 등 주로 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에 집중해 당시 소녀팬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70여년 전 국극 스타들과 팬들의 관계는 현재 아이돌 가수와 팬덤과 매우 흡사하다.
‘정년이’가 소환한 국극의 세계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이 있다. 2011년 제작해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감독 김혜영·제작 영희야놀자)이다. ‘정년이’의 원작 웹툰을 집필한 서이레 작가가 여성 국극의 세계를 구상하면서 자료를 찾을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한 작품이기도 하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한국 국극의 스타 조금앵, 김진진, 박미숙, 허숙자, 이옥천 등 배우들을 통해 1950년대 꽃을 피우고 이후로도 명맥을 이은 국극의 세계와 그에 헌신한 명배우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국극 배우를 꿈꾸던 이들의 모습은 윤정년과 다르지 않다. 패물을 훔쳐 상경해 국극단에 입성한 사람부터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 맞서 몰래 전국을 누비면서 무대에 오른 인물들도 있다. 학업을 미루고, 심지어 결혼을 잊은 재 국극에 심취한 70여년 전 배우이자 여성들의 뜨거운 열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영화는 194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시작해 1950년대 정점을 찍은 당대 국극의 모습과 배우들의 활약상을 자료 사진과 영상을 통해 구성한다. 이를 통해 진귀한 아카이브 필름의 역할도 한다. 동시에 전성기가 지난 국극의 명맥을 고집스럽게 이어간 배우들의 이후 삶까지 아우른다. 노년의 배우들이 뜨거웠던 국극의 시대를 직접 돌이키면서 여성 국극의 역사를 한눈에 보게 하는 작품이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한국전쟁 직후 모두가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여성들이 모여 애절하고 드라마틱한 무대를 만들어 대중과 교감하고 소통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이는 드라마 ‘정년이’로 이어지는 메시지다. 서이레 작가가 ‘왕자가 된 소녀들’을 통해 접한 당시 국극의 리얼한 세계를 웹툰에 녹여냈고, 이런 고유한 정서와 주제가 드라마로도 이어진 셈이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현재 OTT 플랫폼 웨이브와 티빙, 왓챠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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