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영화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만약 나라면?” 물론 답은 있지만, 과연 실제 그 상황이라면 진짜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모두가 쉽게 답하지 못할테다. 주인공을 맡은 설경구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보통의 가족’이 그린 결말이 너무나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개봉된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웰메이드 서스펜스 영화다. 헤르만 코프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다.
섬세한 감정 연출의 대가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거머쥔 허진호 감독의 신작 ‘보통의 가족’은 국내 개봉 전부터 국제 유수 영화제 초청 19회라는 기록을 세우며 일찌감치 기대작으로 등극했다.
설경구는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을, 장동건은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재규를 연기했다. 또 김희애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 역을, 수현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쿨한 여성의 표본 지수 역을 맡았다.
장동건과는 형제로, 수현과는 부부로 변신한 설경구는 이번에도 탄탄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극의 중심을 꽉 잡아준다. 다음은 설경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어땠나?
“뒷부분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원작과는 달리 직접 보여주니까 충격이더라. 토론토에서 관객들과 같이 봤는데 충격받아서 엔딩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더라. 정말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끔찍하다. 상상하니까 너무 무섭고 말을 못 하겠더라. 부모와 자식이 같이 영화를 본다면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
– 진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 같나?
“생각과 직접 그 일이 닥쳤을 때는 또 다를 것 같다. 생각만으로는 제 3자의 입장이다. 자수시켜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현실이라고 하면 ‘잠깐 있어 봐’ 싶다. 소름 돋는다.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무슨 말도, 결정도 못 할 것 같다.”
– 재규와 재완의 대화에서 “흥부”라고 한 것도 애드리브라고 했었는데, 극이 마냥 무겁지 않고 웃음 포인트가 있었다. 배우의 해석이 들어가서 더 풍성해진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땠나?
“형제 대화에서 조금 더 걷어낸 것 같긴 하다. 저는 좀 아쉬운 것이 김희애, 수현의 화장실 장면에서 “거울 보세요”라고 한다. 애드리브다. 김희애 씨가 나가고 수현 씨가 혼자서 “엔간히 좀 해라”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다. 그냥 일상적으로 했다. 큰일이라고 해서 연기하면서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툭툭툭 뱉는 것을 더 집중 있게 했던 것 같다. 마치 연기가 아닌 것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수위 조절을 다 잘한 것 같다.”
– 후반으로 가서 입장이 바뀐다. 당연히 아이들을 감쌀 줄 알았는데 선회를 해버리고 동생이 오히려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 그렇게 바뀌는 것이 설득됐나?
“재완은 굉장히 실리를 따지는 사람인데 끝까지 여러 수를 두고 고민했을 것 같다. 잡혔을 때와 자수했을 때를 생각했을 때 과연 묻힐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거다. 그래서 후배와 통화하면서 형량도 물어본다. 그러다 CCTV 속 아이들을 보는데, 정말 무섭더라. 그 어떤 폭력 영화보다 더 폭력적이다. 그때 딱 결정을 내린 거다. 자수하는 것이 벌을 받고 나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나 생각하고 결정한 거다. 그래서 저는 재완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재규가 바뀐 거다.”
– 실리를 고려하고 수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정의감은 크게 작용이 안 됐다는 해석인 건가?
“정의감이라기보다 애가 이렇게 컸을 때 대한 걱정은 있었을 거다. 그게 없으면 부모가 아니다. 그것도 걱정이고 실리도 따졌을 거다.”
– 유일하게 노숙자 병원도 찾아가고 극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미묘하게나마 갈등을 한다. 여러 생각이 잘 쌓여서 마지막 선택이 와닿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재완은 미묘하게 움직이지 선을 크게 바꾸는 캐릭터는 아니다. 피해자 부모를 찾아간 것도 사실은 다르게 해석했다. 미안함도 있겠지만 졸렬한 인간이라 장례식장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범인이 현장에 가서 확인하듯이 한 거고, 돈을 빌려준 것도 치졸하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것 중에 치졸함을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죄를 탕감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비 오는 날도 선택을 한 거고 수술 장갑도 혹시나 지문이 남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해보자고 했던 건데 나쁘지 않더라. 그런 모습이 치졸한 인간 같았다.”
– 딸 홍예지 배우의 연기도 좋았는데, 호흡은 어땠나?
“많이 못 친해졌다. 부모들끼리 감당할 게 많아서 거기 집중을 많이 했다. 캐릭터와 잘 맞더라. 욕도 차지게 하더라. 섬찟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더라.”
– 진지하고 무거운 얘기를 하는 와중에 관객이 빵 터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촬영 단계에서도 예상이 된 부분이 있나?
“촬영할 때도 터졌다. 아무 생각을 못 했는데 세 배우가 그냥 빵 터지더라. NG가 나서 다시 하면 또 터진다. 저는 왜 웃지 싶었는데 웃긴다고 하더라. 웃음 터질까 봐 얼굴 보지 말고 귀를 보라고 하기도 했는데, 장동건이 또 웃더라. 배급관에서 영화 볼 때도 장동건만 크게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대사였는지 그게 웃음 포인트가 된 것 같다. 계산을 한 건 없고, 대본에 큰 소리 친다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는데 빵 터지더라. 웃어서 한동안 촬영을 못 했는데 배우들의 정확한 리액션이었다.”
– 재완은 처음엔 딸을 감싸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의심하는 지점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노숙자가 죽었다는 말에 “오히려 잘 된 거 아냐?”라고 한다거나 차 사달라고 한다거나. CCTV가 도화선이 된 건데 내가 생각하는 딸이 진짜가 아닐 수 있겠다고 하는 그 감정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고민의 연속이었는데 결정을 해야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 식사 자리이긴 했지만, 진짜 결정을 하게 된 건 CCTV였고 이미 그전부터 계속 혼자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이걸 행간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부인과 식사 전에 얘기를 다 했던 거로 저희는 설정했다. 마지막 식사 전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고민의 연속이었는데, 고민은 끝이고 이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결정을 한 거다. 이게 가장 현명하고, 빨리 벌을 받고 나오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라고 판단을 한 거다.”
– 재완은 실리를 따지니까, 만약 이게 드러났을 때 딸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보다 본인이 쌓은 커리어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컸던 건가?
“대사에도 있지만 아이들의 문제가 부모에게까지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계산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수를 시키는 변호사라는 타이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재완은 변호를 직접 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이게 자신에게 좋은 커리어가 아니며, 내가 쌓은 것도 무너지고 망가진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 극 초반엔 지수가 어리고 몸매 관리를 하는 모습이 부각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지수가 제일 객관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럴듯한 직업을 가졌고, 연경은 봉사도 많이 하지만 결국 자기 것만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이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장 와닿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거창하게 생각해서 접근했던 건 아니다. 재완의 아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농담으로 몇몇 후보군을 놓고 누가 맞을 것 같냐고 하셔서 저는 저와 안 맞을 것 같은 수현이 궁금하다고 했다. 설정부터가 뭔가 안 맞는 부부 같아 보였다. 넷에 관해 설명 안 하고 같이 걸으면 저와 김희애 씨가 부부인 줄 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저와 언밸런스한 인물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지수는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게 맞아떨어진 것 같다. 사실 비집고 들어오기 어려운 캐릭터다. 가족인데 가족 아닌 것 같은 애매한 지점이 있다. 툭툭 아무 생각 없이 잘 들어오는데, 가장 생각이 있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연기할 때도 되게 좋았다. 대단한 연기를 한 건 아니고 툭툭 던지는데 좋더라. 목소리 톤도 안 떠있고 차분하다. 제일 어른 같았다.”
– 디너신을 100번 넘게 찍었다는 얘기를 했다.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
“계속 반복해서 하다 보면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뭔가 새롭게 뱉는 대사처럼 나와야 하는데 익숙해져서 나와버린다. 김희애 씨 같은 경우, 자기가 안 찍는데도 열연을 해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런데 정작 자기 찍을 때는 눈물이 안 나온다. 온종일 똑같은 걸 계속 찍는 거다. 아마 옛날 필름 시절이었으면 마스터로 못 찍었다. 이 식사 장면을 끝까지 보는데 편집이 됐음에도 꽤 길더라. 그런데 집중이 잘 되고 우리가 잘 맞았나 싶었다. 아기도 연기를 잘한다. 저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애는 처음 봤다. 딱딱 맞춰서 활짝 웃는다.”
– 농담이겠지만, 김희애 배우와 연기를 같이 할 때 너무 무섭다는 얘기도 했었다.
“무섭다기보다는 진짜 열심히 한다. 모니터 의자에서 쉬고 있는데 누가 화면에 잡혀서 보니 김희애 배우가 연기한다. 저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조명 장비가 왔다갔다 하는데도 거기서 연습을 하고 있다. 방법이 없다면서 연습을 하니 할 말이 없다 싶다. 본인은 농담으로 기억력이 떨어져서 연습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제가 본 배우 중 가장 열심히 한다. 끊임없다.”
–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 때 딸이 맞고 오는 것이 낫나, 아니면 때리고 오는 것이 낫나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 만약 두 가지 경우가 있다면 어느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나?
“맞고 오는 것이 더 낫다. 때리고 오면 안 된다.”
– ‘베테랑’, ‘범죄도시’ 시리즈 등 인기 있는 형사물이 많은데 형사 연기를 다시 해보고 싶지는 않나?
“저는 제가 원조라고 생각한다. ‘공공의 적’과 같은 패턴이지 않나. 마지막에 다 박살 내고. 특히 1편 시나리오가 좋았다. 옛날에 한번은 길을 가는데 웨이터 명함이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 보니까 강철중이었다. 유명해야 이름을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 1편을 정말 재미있게 스트레스도 풀면서 찍었다. 너무 웃어서 NG도 많이 났다.”
– 부모와 아이가 같이 봐야 할 영화라는 말도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같이 볼 생각이 있나?
“같이는 아니겠지만 아이도 보게 할 거다. 저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보다 폭력적이고 피가 철철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빌런보다도 해결이 안 되는 빌런이 나온다. 때려죽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해결이 안 되는 빌런이다. 총과 칼, 온갖 장비보다 더 많이 난도질한다. 그래서 되게 잔인하고 센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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