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더글로리’ 젠틀한 하도영은 없었다. ‘전,란’에서는 왜군 수장으로 분해 묵직한 존재감을 떨쳤다. 전작 이미지를 벗고 스펙트럼을 실험하고 싶었다는 정성일의 ‘한수’는 완벽했다.
정성일은 2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고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 글로리’로 주목받은 정성일은 고심 끝에 차기작으로 ‘전,란’을 택했다.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임지연 분)의 남편인 하도영 역을 맡아 진중하고도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 그가 사극에 도전,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정성일은 “‘더글로리’ 끝나고 작품 고를 때 신중했다. 너무 잘된 작품이고, 캐릭터가 가진 힘이 세서 비슷한 류의 대본이 많이 들어왔다. 주인공이 됐건 조연이 됐건 그런 것이 와서 고사를 많이 했다. 내 이름이 하도영만 될 것 같아서 오래 시간을 두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는 정성일은 “‘전,란’ 대본 받자마자 극 자체도 사극이고, 역할도 다른 나라 사람이다. ‘더글로리’를 지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색다르고 좋은 역할이었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밝혔다.
‘전,란’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각각 선조(차승원 분)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이 되어 적대적으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공개 2주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 3위에 등극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집에서도 계속 보다보니 재미있는 부분을 많이 찾았다”고 작품 공개 후 만족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주변 반응도 꽤 좋았다. 다행히 제가 원했던 반응처럼 몰라본 사람들도 있다. ‘잘 봤다’ ‘잘했다’ ‘재미있었다’는 반응들이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임진왜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전,란’에서, 정성일은 조선 땅을 침략한 일본군 선봉장 겐신 역을 맡았다. 겐신은 트레이트 마크인 뿔달린 투구를 착용하고 조선 의병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인물이다. 기존 작품에서 수없이 나왔던 왜군과는 또다른 일본을 만들어냈다.
“국적 자체가 다른 인물이에요. 한국말도 아니고 시대적인 배경 자체도 사극이라 접근하기가 오히려 쉬웠어요. 대본 자체가 가진 힘이 있고, 겐신이라는 역할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사실 왜군이 뻔할 수 있잖아요. 작품의 짧은 분량 안에서 변화를 주는 것에 대해 고민했어요. 기존에 했던 빌런 같은 왜군, 소모성이 아니라 이 사람이 조선에 와서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천영(강동원 분)을 다시 만났을 , 이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조선을 침략하러 왔다가 긴 시간을 보내다보니 살육을 하고 살인에 대해 무뎌지는 인물이잖아요. 일본 최고의 무사라고 생각하는데, 동급 (실력을 자랑하는) 천영을 만나 계속 쫓게 되요. 7년의 시간이 지나다보니 무뎌지고, 자만하게 되고 오만하게 되고 그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왜군 장수들과 좀 다르게 보여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정성일은 극중 화려한 검술 연기와 중저음 목소리로 내뱉는 일본어 연기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것은 일본어 대사로, 이를 위해 6개월 간 일본어 연습을 했다. 일본어에 감정을 녹이기 위해 히라가나 가타카나 등 기초부터 시작했다. 현대말 뿐만 아니라 고어도 연습해야 했다.
“일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6개월 가량 준비했어요. 일본 사람들이 봤을 때 ‘쟤 왜 저래’라고 하면 극 자체를 깨버리잖아요. 일본 사람들이 봐도 괜찮을 정도이고 싶었어요. 한국사람이 들었을 때는 ‘아’하고 느낄 수 있지만, 오류가 많은 작품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발음이나 장단을 디테일하게 긴 시간 연습을 했죠. (부국제) 전야제 시사회에서 일본인이 ‘더빙한 거냐’고 했는데 그 칭찬에 기분이 좋았어요.”
평소 운동을 좋아한다는 정성일은 일본어 연기에 비해 액션 연기는 수월했다고 털어놨다. 과거 출연한 영화 ‘쌍화점’에서 기본적인 무술 훈련을 받았던 터. 당시 정성일은 왕(주진모)을 보필하는 꽃미남 건룡위 멤버로 선발돼 호흡을 맞췄다.
“‘쌍화점’ 때 긴 시간 훈련을 많이 했어요. 그 당시 재미있었지만 혹독할 만큼 검을 연습했고, 말에서 두 손 놓고 활을 쏠 정도로 연습 했었어요. 시간이 타이트했고 노련했어야 했어요. 그래서 금방 늘었죠. 몸으로 체득한 건 쉽게 안 잊혀지는 것 같아요. (‘전,란’ 때) 다시 말을 탔는데 되더라구요. (검술 액션도) 신체적인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어서 금방 따라갈 수 있었어요. 그래도 두 개의 검을 들다보니 많은 연습이 필요했어요. 검 두개를 갖고 하는 액션은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무거운 갑옷과 뿔달린 투구를 쓰고 액션 연기를 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는 “갑옷만 10kg이 넘고 활까지 합하면 15kg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라며 “룩은 좋은데 그 안에 들어가있는 저는 ‘움직일 수 있다고?’ 싶었다. 그걸 입고 연습하는 것을 많이 했다”며 “향후 5년 동안 갑옷을 입지 않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성일은 사극 연기에 대해서도 “‘전란’에서 해볼 건 다 했다. 갑옷도 입고 한복도 입고 상투도 틀고,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힘들더라. 더 이상 할게 있을까 싶다”고 웃었다.
함께 한 배우들에 대한 신뢰감도 드러냈다. ‘전,란’은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화제가 됐는데, 정성일은 이를 듣고 “미쳤다”고 했다.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에 제작 박찬욱 감독, 연출 김성만 감독이잖아요. ‘내가 여기에 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좋은 배우들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이에요. 어제도 GV 끝나고 제작사 대표님이 강동원, 차승원 형과 찍은 사진을 보내줬어요.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가보로 남겨야지 했어요. 연예인 보는 것처럼 좋았죠.”
‘전,란’에서 처음 만난 강동원은 골프라는 공통 관심사로 급격히 친해졌다. 뒤늦게 친해진 박정민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자유로운 배우”라고 했다. 두 사람에 대해 “배우가 봐도 끌어당기는 힘이 크다”고 감탄했다. 정성일은 “셋이 칼싸움 하는 신에서도 너무 재미있게 잘 찍었다. 호흡을 맞추기엔 힘든 것이 없었다. 더 오래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2022년 ‘더 글로리’에서 임지연의 남편 하도영 역으로 주목받은 정성일은 ‘전,란’으로 또다시 완벽한 변신을 꾀했다. 차기작은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다. 부지런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새로운 배역에 대한 갈증을 털어놨다.
“똑같은 건 싫어’는 아닌데, 작품을 고를 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 있을까 생각해요. 전 주로 공연을 주로 했던 사람이라 너무 많은 역할을 했어요. 사실 코미디도 좋아하고, 일상에서는 청바지와 트레이닝복을 좋아하는데 TV에서는 늘 수트를 입었어요. 수트에 얽매여있는 것 아닌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정형화 된 것이 (아쉽고) 너무 딱딱하지 않은 코미디도 할 수 있어요. ‘전,란’은 아예 다른 작품이라 선택하기도 했지만 조금 다른 모습으로 범위를 넓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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