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강력하다.
이승윤의 정규 3집 ‘역성’은 앨범 타이틀부터 그 안에 담긴 사운드, 가사까지 ‘강렬함’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앨범 타이틀인 ‘역성(易姓)’은 대개 ‘혁명(革命)’과 세트로 묶이는 단어인 만큼, 타이틀에서부터 전해지는 무게감이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이승윤에게 “원래 저항 의식이나 반골 기질이 있는 편인가?”라고 묻자, 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이어가며 고심했다.
그리고 장고 끝에 내놓은 답은 “한 번씩 ‘그게 왜 중요해?’라고 묻기는 한다. 습관이 된 건지 학습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왜?’라고 묻는 버릇이 있는 거 같다”였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한 답변이긴 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한 이야기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니 왜 이승윤이 그런 답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이승윤이 ‘역성’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일단 ‘역성’에 대해 이승윤은 “나는 열린 이야기를 좋아한다. 대상을 한정 짓고 싶지 않다. 개인마다 ‘역성의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역성이 ‘대항’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대항이 거꾸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단순히 흑백논리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대상에게 저항하고 대항하는 그런 ‘역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 스스로를 이겨 내야 하는 상황, 무찔러야 하는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역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도감이 있는데, 역성이 필요한 상황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성’이 다른 의미로는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지지해 준다’는 뜻도 있다. 그 두 가지 의미를 다 담아서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즉 ‘일상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저항의 순간’이 이승윤이 생각한 역성이다. 이런 관념은 동명의 타이틀곡 ‘역성’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승윤은 “타이틀곡 ‘역성’은 앨범 가장 마지막에 쓰인 곡이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지막에 만들었다. 흑과 백의 논리가 아니라 왕관이 많다고 생각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채로, 누군가의 청춘을 빛내거나 누군가의 궤변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왕관이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그래. 진짜일지 아닐지 모를 그 왕관을 쓰십시오. 그러나 이번 한 번 만큼은 우리도 우리 목소리를 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느낌의 곡이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승윤 본인이 직접적으로 ‘반골’이라고 답하진 않았지만, 분명 시류에 편승해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생각, 소수 의견에 더 눈을 돌리려고 하는 성향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이승윤은 “‘역성’이라는 앨범을 들어보면 주 멜로디라고 부를 세계관이 있지만, 그중에서 잡음이라고 불리는 작은 삶, 고민들을 자꾸 이야기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라고 덧붙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자연스레 가사로 이어진다.
이승윤은 “창작자로서 이승윤과 개인 이승윤이 좀 다른 것 같다. 개인 이승윤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쓰면 너무 반항아가 되기 때문에, 창작자로서 가사를 쓰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지독히 이상적인 무언가를 놓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현실을 최대한 직면하려고 한다. 이상과 현실을 오가는 와중이 나에게는 글감이 되는 것 같다”라고 현실과 이상에 대한 고민이 자기 음악의 원천임을 알렸다.
이승윤의 이런 성향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 곡과 가사가 1번 트랙 ‘인투로’다. 해당 가사에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피투’와 ‘기투’가 등장한다.
‘인투로’를 두고 이승윤은 “피투되어 기투한다는 문장은 솔직히 잘 모르면서 가져다 썼다. 인상 깊은 문장이어서 그렇다. 피투라는 건 내던져졌다는 뜻이고 기투는 내던져진 삶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의미한다. 그것을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용어를 썼지만 내 존재를 함축할 수 없으니 그냥 걸어가 보겠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사실 설명을 들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에 일부러 어려운 어휘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승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가사를 쓸 때 이 맥락에 이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다 싶으면 그 단어를 쓴다. 안 쓰는 단어를 일부러 쓴다기보다 이 노래에 들어가면 좋겠다 싶어서 쓰는 것뿐이다. 좋은 노랫말은 그냥 듣기 좋으면 되는 것 같다. 가벼운 가사도, 무거운 가사도 듣기 좋으면 좋겠다”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이승윤은 자신의 음악이 ‘수퍼 이지리스닝’ 음악이 되기를 바랐다. 물론 그런 바람과 달리 하드 리스닝의 음악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승윤은 “나는 내 음악이 ‘수퍼 이지리스닝’이 됐으면 좋겠는데 계속 ‘하드리스닝’이 되고 있다. 사실 엄청 하드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난한 정도의 이지함을 요하는 곡인데,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면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자꾸 거창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자꾸 그러지 말자고 한다. 나는 현실주의자라고 하는데, 지독한 이상을 바라는 사람이다. 거창한 이상론을 자꾸 말할 때가 있다. 내가 하는 말이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거창해지지 말자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거창한 음악을 만들게 됐다”라며 웃었다.
종합해서 보면 이승윤은 분명 혁명가적 기질을 지니고 있어 보인다. 다만 이승윤은 이를 ‘방구석에서 너와 나에게 보내는 외침’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승윤은 “가사에 화자 설정을 너와 나로만 쓰는 것은 내가 남의 이야기를 할 만큼 큰 사람이 아니고 방구석에서 말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글을 쓸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어 “길들여지는 ‘척’하면서 반항하는 앨범을 잘 냈다고 생각한다”라 자평한 이승윤은 “이번 앨범은 나의 단말마(斷末摩)라고 생각한다. 나는 굉장히 현실주의자라서, 이 앨범은 지금이기 때문에 낼 수 있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다음에 무언가를 해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편이다. 이번 앨범을 완성하면서 음악인으로서 꿈은 이룬 것 같다. 처음 만들고 싶었던 노래를 만든 것 같아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라고 ‘역성’의 의미를 되짚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혁명의 불꽃’은 정말 작은 일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법이다. 과연 ‘역성’이 이승윤 혼자만의 단말마로 끝날지, 가요계를 뒤흔들 혁명의 불꽃으로 번질지 그 결말이 궁금해진다.
전자신문인터넷 최현정 기자 (laugardag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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