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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베니스의 선택 ‘아노라’ VS ‘룸 넥스트 도어’ 개봉…예술성과 동시대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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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한 장면. 틸다 스윈튼(왼쪽)과 줄리엣 무어가 주연해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칸과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올해 최고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갖춘 작품으로 선택한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관객을 찾아온다.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인종과 계층의 격차를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와 친구의 죽음을 앞두고 우정을 회복하는 두 여성의 마지막 삶을 다룬 이야기다.  

가을 스크린으로 다채롭게 장식할 ‘아노라’와 ‘룸 넥스트 도어’는 올해 5월 열린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과 지난 8월 진행된 제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각각 수상한 작품이다. 이들 영화제의 선택으로 전 세계 영화계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고, 고유한 예술성과 동시대 사회상을 담아내는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한 작품성으로도 인정받았다. 명배우들과 신인 연기자들이 아낌없이 쏟아부은 에너지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개봉하는 영화는 23일 공개하는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이다. 첨예한 논쟁의 대상인 안락사를 다루면서 인간의 죽음과 존엄성에 관한 풀기 어려운 고민을 아우른다. 주인공인 유명 작가 잉그라드는 오래 전 함께 일한 친구 미사가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간다. 오랜 기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미사와 안부를 묻고 우정을 다시 확인하던 잉그리드는 미사로부터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죽음을 앞둔 인간이 자력으로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미사는 평생 종군기자로 전쟁터를 누빈 인물. 숱한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그는 참혹한 전쟁이 남긴 상처로 후유증을 안고 살아왔다.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의 한복판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의지로 삶을 끝내려는 미사를 통해 영화는 단순히 ‘존엄한 죽음’을 넘어 인간의 죽음에 관해 성찰한다.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은 “죽음이라는 주제가 작품에 확실하게 드러나지만 침울한 분위기 대신 빛과 생명력이 충만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아무 말 없이 상대를 지지하는 인간적인 이해심으로 곁에 있어주는 일이 때로는 우리가 타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무려 18분에 이르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1949년생인 감독은 그동안 ‘그녀에게’ ‘내가 사는 피부’ ‘페인 앤 글로리’ 등 작품으로 스폐인을 비롯한 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70대 중반에 이르러 존엄한 죽음에 관한 질문을 들고 관객과 더욱 깊은 대화를 시도한다. 그동안 연출작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영화 ‘아노라’의 한 장면.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 ‘아노라’ 인종 등으로 갈리는 신분과 계층 비판 

11월6일 개봉하는 ‘아노라’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가 선택한 최고의 작품이다. 뉴욕의 스트리퍼 아노라가 철부지 러시아 재벌2세 이반과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는 여성 성매매 노동자와 러시아 재벌의 모습을 대비해 보이면서 신분의 격차를 공고히 하려는 이들을 실랄하게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다.

주인공 아노라는 허황된 사랑을 믿고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인물. 러시아 재벌의 아들 이반은 뉴욕의 클럽에서 아노라에 반해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지만, 이반의 가족은 아노라를 두고 볼 수가 없다. 부모는 하수인 3명을 고용해 둘을 떼어 놓으려 하고, 이에 놀란 이반은 줄행랑을 치지만 아노라는 이들에 맞서 반드시 결혼을 지키려고 한다.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도망친 이반을 찾아야 하는 아노라와 혼인 무효 소송을 위해 역시 이반을 찾아야 하는 하수인 3명이 뒤엉켜 질주한다. 

‘아노라’는 칸 국제영화제 공개 당시 황홀한 비주얼과 상반된 날카로운 이야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종과 재력 등으로 계층과 신분을 나누는 잔인한 세상의 한복판에 놓인 아노라를 통해 션 베이커 감독은 거침없이 질주한다. 2018년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빈민가의 현실을 어린아이의 시선을 풀어내 주목받은 감독이다. 

‘룸 넥스트 도어’가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관객의 기대에 완벽히 충족하는 선택을 했다면 ‘아노라’는 국내 관객에게는 낯선 배우들이 모여 깜짝 놀랄 만한 연기를 소화한다. 타이틀롤 아노라 역의 미키 매디슨은 1999년생의 신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짧게 출연하는 등 연기 경력이 길지 않지만 이번 ‘아노라’에서의 강렬한 활약으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반 역의 마크 아이델슈테인 역시 러시아 출신의 신인 배우다. 

나란히 국내 관객과 만나는 ‘룸 넥스트 도어’와 ‘아노라’는 내년 3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수상 후보이기도 하다. 작품상과 감독상, 주연상 등 주요 부문 노미네이트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 8월 열린 제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줄리안 무어와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 틸다 스윈튼(왼쪽부터).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맥스무비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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