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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2>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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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길은 속도감에 길들여진 사내를 나무라는 것만 같다. 과속의 무례함을 나무라듯 구불구불 굽이쳐 있는 것이다. 마치 모태母胎 같은 김룡사를 향해 탯줄처럼 뻗어 있지 않은가. 그러니 김룡사 가는 길을 사내에게는 탯줄이라 불러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다.

탯줄 같은 길.

어머니가 한 생명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명 줄인 탯줄. 사내는 잃어버린 탯줄을 따라 승용차가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김룡사는 사내에게 고향 속의 고향 같은 곳이 아닐까.

사실, 사내는 서울에서 내려올 때도 김룡사 어느 구석엔가는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것들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내가 직접 태어난 마을은 이미 공장이 들어서 없어져 버렸으므로 갈 필요가 없었고, 그래도 늘 뇌리 속을 떠나지 않던 김룡사가 또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어쨌든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왠지 막막하고 비감했다. 공간으로 친다면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요, 시간으로 친다면 다시 주어지지 않을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강헌은 김룡사와 대승사大乘寺로 가는 갈림길인 삼거리에서 승용차를 멈추었다. 카메라 장비를 어깨에 멘 한 여자와 젊은 비구스님이 합장을 하며 동승을 원해왔으므로 그랬다. 창을 열자 여자의 물기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룡사 가시면 저희들도 태워주시죠.”


여자는 40대 초반으로 익을 대로 익은 과일처럼 통통했다. 카메라 장비를 메고 있는 모습을 보아 알 수 있듯 그냥 살림만 하는 여자는 아닌 듯싶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시종 큰 콧구멍을 벌름대며 젊은 스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키고 있다.

“지금쯤 송이버섯으로 국을 끓이겠네요.”

“그럼요. 요즘이 송이버섯 철이거든요.”

“어머! 싱싱하기도 하겠다.”

“지금은 채취한 지가 얼마 안 돼 날것으로 먹어도 그만이죠.”

“송이버섯을 날것으로도 먹어요?”

“그럼요, 솔향기를 맡으려면 날것이 최고죠.”

“그래서 스님 콧잔등이 번지르르한 게 아녜요? 호호호.”

그러고 보니 좀 전에 젊은 스님한테서 솔향기를 맡았었다. 먼저 그가 차에 오르자 송이가 숲 속에서 향을 흘리듯 솔향기가 물씬 풍겨왔던 것이다. 귀한 송이버섯을 많이 먹어서라기보다 솔향기가 나는 법당의 향香이 장삼에 배어 있음이 분명하다.

생선을 묶은 새끼줄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난다는 불가佛家의 금언이 있잖은가. 물론 여자한테서도 냄새는 났었다. 성性을 자극하는 여자의 냄새라 할까, 강헌은 동물적인 후각으로 여자의 암내를 맡았던 것이다.

그녀가 건강한 스님 옆에서 지나치게 종알대는 것도 암내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었다.

강헌은 승용차의 속도를 더 줄였다. 시외버스 종점인 듯한 마을이 하나 지나고 길이 계곡에 바짝 붙는 것이다. 대낮인데도 산 그림자가 길을 덮고 있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홍진을 앓는 듯한 붉고 노란 낙엽이 손에 잡힐 듯도 하고. 최근 심하게 가물었는지 절이 가까워진 계곡은 물이 줄어들어 수척하게 보인다.

밤송이들이 계곡에까지 굴러떨어져 드러난 바위 사이에 고슴도치 새끼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계곡에는 범접할 수 없는 고즈넉한 침묵이 서려 있다. 물 대신 적막寂寞이 흐르고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 산은 무심히 물을 내려 보내고, 절은 끊임없이 적막을 흘려보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의 산그림자도 푸른 적막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닐까.

“자, 여기서 내리시죠. 저는 이곳에서 숙소를 찾아봐야 할 것 같으니까요.”

일주문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강헌은 그들을 내려주었다. 바로 절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민박집의 평상에라도 앉아 심호흡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절에서 또 만나요. 사진 찍어드릴게요.”

금세 친해진 여자가 손을 흔들며 사라지고 있다. 그런 때 여자는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어머니도 여자였다. 또다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헌아, 너를 낳자마자 출가한 네 아버지는 김룡사가 자랑하는 선사禪師이시다.

그러니 꼭 찾아뵙도록 해라. 김룡사를 가면 운달산雲達山이 있고, 그 운달산 정상에 금선대金仙臺가 있단다. 거기에 네 아버지가 계시느니라. 다시 당부하지만 아버지를 원망하지 마라. 네 사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너는 깨달아야 한다. 큰 상처가 나야만 생살이 솟는다는 말씀 아니겠느냐.

평일이어서 그런지 민박집의 방들은 텅텅 비어 있다. 강헌은 어제 출판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던 중에 우연히 들른 대형서점에서 산 시집詩集을 챙기고는 승용차 문을 잠갔다.

시인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얼이 빠진 상황이었지만 시집을 샀던 것이다. 50대 중반으로 강헌보다 나이가 좀 많은 시인은 시집의 서문을 이렇게 끝맺고 있었다.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

……

……

강헌은 천천히 빈 민박집을 돌아다녔다. 농사일을 거들러 나갔는지 주인이 없는 것이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마당에까지 굴러온 밤을 주우며 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어슬렁거리던 강헌은 양각한 한 나무 편액을 보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서버렸다.

여시관如是觀

낙관은 없지만 강헌은 그게 누구의 글씨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어머니 편에 보내온 출가한 아버지, 법성선사의 필체가 분명했다. ‘이와 같이 보라’는 뜻의 ‘여시관’은 법성선사가 법문할 때마다 즐겨 드는 첫머리의 말이라고 어머니가 일러주었던 것이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오누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조이뉴스24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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