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 노상현이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탄탄한 연기 내공과 남다른 캐릭터 소화력을 발산했다.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 배우였던가, 새삼 놀라서 여러 번 돌아보게 된다. 김고은과 만들어낸 찐친 케미 역시 일품. 진짜 저 인물이 내 주변에 살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 가득 차올라 마음이 뭉클해진다.
최근 개봉된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은 눈치 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와 세상과 거리 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노상현)가 동거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 영화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속 ‘재희’를 원작으로 한다.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되며 해외에서 먼저 폭발적인 관심과 호평을 얻었다.
노상현은 사랑을 감정 낭비로 여기며 세상과 거리를 두는 흥수 역을 맡아 재희 역 김고은과 지금껏 본 적 없는 특별한 앙상블을 완성했다. 성 정체성으로 인해 자신을 꽁꽁 숨기는 흥수는 세상의 편견과 오해에 맞서 늘 당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재희를 만나 ‘나다움’을 찾아간다. 노상현은 이런 흥수의 변화와 성장을 탄탄한 연기로 표현해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계속 곱씹고 싶은 대사, 이 시대 청춘을 위로하는 이야기, 배우들의 호연 등으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 ‘대도시의 사랑법’은 실관람객들의 극찬을 얻으며 N차 관람을 이끌고 있다. 다음은 노상현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쉽지 않은 소재인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신경이 안 쓰인 건 아닌데 흥수라는 인물의 하나의 특성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인물을 더 이해하는 게 더 중요했다. 시나리오 읽을 때 직관적으로 알 것 같았고, 두 인물 모두 자연스럽게 납득이 됐다. 그래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담백하고 솔직하게 쓰였고, 대사도 굉장히 현실적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 극 속에서 13년이라는 시간의 변화를 담아야 했다. 흥수와 재희를 어떤 인물이라고 해석했나?
“재희는 본인의 아이텐티티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많이 두드러지게 표현이 되는데, 그래서 소문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반면 흥수는 자신의 특징에 대해 두려움이 많다. 어릴 적부터 억압된 감정이 굉장히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자아이기 때문에 답답함, 억울함, 고독함 등 많은 감정이 응축되어 있고 그래서 고립되어 있었을 거다. 그런 흥수를 처음으로 어루만져준 인물이 재희다. 소주 한잔하면서 재희가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돼?”라고 했을 때 마음을 많이 뺏기지 않았을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데 이미 그렇게 하는 재희를 보면서 그 친구의 고충까지 알게 되니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결핍들로 인해 굉장히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 것 같다. 초반에 마음을 연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였고, 13년이라는 시간을 걸쳐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준다. 의지도 많이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서로 상처 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굉장히 친한 사이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흥수는 훨씬 더 자신을 인정하고 표출하게 되고 자신감을 가진다. 그렇게 성장해나간다. 후반부 경찰서와 결혼식에서 자신을 표출하고 표현을 적극적으로 한다. 그런 서사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 혹시 그런 친구가 있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의 100%를 공유할 수 있는 인물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복이다. 어려운 일이고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생기면 너무 좋을 것 같다.”
– 작업하면서 배우의 의견이 반영된 지점이 있나?
“의견을 냈다기보다는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자유롭게 많은 얘기를 하기도 하고, 성소수자들을 만나 정보를 듣고 배우기도 했다. 그들의 성장 과정이나 예전에 겪은 이야기를 참고했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자유분방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많이 풀어주셨다. 그래서 고은 씨와 호흡하면서 찾아갈 수 있었다.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 흥수와 성격적인 부분에서 닮은 점이 있나?
“흥수처럼 감정 표현이 두렵고, 그로 인해서 숨어버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뭔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자제나 절제를 하지만, 친한 사람에게는 훨씬 더 많이 공유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저도 마찬가지로 내가 나답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자아를 더 발전시키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 닮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재희와 흥수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 김고은 배우와 노상현 배우가 진짜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재희와 흥수를 그려냈다. 김고은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연기하면서 놀랐다거나 새롭게 발견한 지점이 있나?
“케미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세트에서 재희 집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다. 처음으로 찍은 신이 마주 보고 앉아서 라면 국물 떠먹고 눈빛 교환 후 소주를 가져와서 마신다. 대본에는 지문이 나와 있지는 않았다. 국물을 먹는 순간 이건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며 교감하고 소주를 가지러 가는 순간 호흡이 통했다고 느꼈다. 그 신을 찍으면서 뭔가 잘 맞을 것 같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신들도 너무나 좋았다.”
– 그렇게 만들어간 신이 많았나?
“많다. 시도를 많이 했고, 감독님이 좋아해주셨다. 지금 딱 떠오르는 건, 아침에 자고 일어난 후 재희가 업힌다. 거실로 나와서 실랑이를 하면서 우유를 가지러 가는 시퀀스에 대사가 없었다. 그래서 애드리브로 했다. 그 장면에서 조용히 가면 이상할 것 같아서 던졌는데 잘 이어져서 좋아해주셨다.”
– 김고은 배우와의 호칭은 어떻게 되나?
“반말하는데, 오빠라고는 잘 안 하고 흥수라고 부른다.”
– 촬영하기 전에 클럽도 함께 가보면서 많이 친해졌다고 했다. 인간적으로도 많이 친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인간으로 본 김고은과 배우 김고은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배우로서는 프로페셔널하다. 현장에서 정말 리더처럼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많이 노력한다. 연기야 워낙 잘하는 분이고, 인간적으로는 털털하기도 하고 쿨하기도 한데 여린 느낌도 있다. 다양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장난도 많이 치고 유쾌하다.”
– ‘장도연의 살롱드립2’에 출연했을 때는 당황하고 민망해하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땠나? 어려웠나?
“민망하고 예능이 쉽지 않더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거나 친해지면 훨씬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토크쇼 촬영은 뭔가 부담이 된다. 카메라도 많고, 다들 지켜보시니까 재미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확실히 어려웠다.”
– ‘대도시의 사랑법’이 불편하지 않게, 유쾌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배우가 생각하는 영화의 강점은 무엇인가?
“전반적으로 봤을 땐 감독님의 연출법이다. 호흡이 좋았고, 완성본을 봤을 때 제가 했던 것 이상의 다채롭고 풍성해진 작품으로 완성이 된 것 같다. 주제는 진지하지만, 너무 무겁게 다루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고 유쾌하게 담았다. 그런 조화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시면 여운을 느끼실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메시지가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저는 특별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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