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에 이어 「무문사에 가서」를 선보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무문사라는 이름의 절집이지만 불교적 상상력에 매달린 작품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 사람과 자연의 인과(因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세계 한복판을 걸어가는 우리네 삶이 곧 수행의 길이며 인생의 여로에는 인간의 힘이 어쩌지 못하는 섭리가 가로놓여 있음을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문장 속에 새겨 놓은 명작입니다. [편집자]
서로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는 막둥이가 중노인 한 사람을 때려눕힌 것이 발단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와 아버지를 찾았다. 식구들 모두가 벌벌 떨었다. 막둥이는 아예 마을 뒷산으로 도망쳐버렸다.
분을 삭이지 못한 마을사람들은 동구 밖에 있는 방죽 쪽으로 몰려갔다. 방죽 가운데는 풍인정(風仁亭)이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공들여 지은 정자였다. 아버지는 가끔씩 면장이나 지서주임을 풍인정으로 초대해서 술을 마시곤 하였었다.
풍인정은 그날 불타버렸다. 풍인정 방화사건으로 해서 그녀 아버지는 읍내에 있는 경찰서에서 며칠간이나 살다가 풀려나왔고, 소동은 곧 진정되었다.
나는 그때 째보형을 시켜 날마다 그녀에게 쪽지를 보내곤 했으나 번번이 허탕만 쳤다. 그녀와 밤에 곧잘 만났던, 삼대를 삶는 가마터에서 서성거렸지만, 그녀는 끝내 나와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함께 마을을 도망치려고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마침내 그녀 집 식구들은 서울로 뜨고 말았다. 그녀가 중학교를 졸업한 바로 그해, 폭설이 자주 내린 정월이었다.
“행자(行者)들을 위한 법음이에요.”
땅에서 불끈 솟아오른 듯한 선돌처럼 생긴 자연석이었다. 한 면은 한자로, 또 한 면은 그 뜻풀이가 붉은 글씨로 음각되어 있었다.
佛言 愛欲莫甚於色 色之爲欲 其大無外 賴有一矣 若使二同普天之 人無能爲道者矣(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애욕 가운데 색 만한 것이 없으니 색의 욕심은 크기가 끝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것이 하나뿐이었기 망정이지 만일 같은 것이 둘만 있었더라면 이 천하에 능히 도 닦을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애욕을 경계하라는 준엄한 당부였다.
산이 성큼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산봉우리 위의 크나큰 바위가 마치도 생사를 요달(了達)하기 위해 결연히 가부좌를 튼 수도승의 옆모습같이 보였다.
계곡물은 나뭇잎 빛깔이었다. 이끼가 파랗게 돋은 돌들을 어루만지며 흐르고 있었다. 멀리 절골 마을도 보였다. 초가들이 유난히 많은 마을이었다. 버스를 함께 타고 왔던 노인이 말했었다. 여승들이 드문드문 환속해서 자기 마을에 눌러 산다고.
어쩌면 그 노인은 그러한 여자를 며느리로 데리고 사는지도 몰랐다. 어디서 살든 죄짓지 않고 살면 그만 아니냐며 담배를 꺼내 물었던 것이다.
“이 산속 어딘가에 지하불(地下佛)이 있다고 그래요.”
“지하불이라뇨?”
“땅 속에 계시는 부처님 말이에요. 탐심이 없는 사람 앞에서만 나타나신다고 그래요.”
“물론 환각이겠죠.”
“잘 모르겠어요. 행자 시절 그 부처님을 무척 기다렸지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서요.”
토끼나 다람쥐가 스쳐가도 지하불이 나타난 줄 알고 깜짝 놀랐고, 어떤 날은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었다. 그러나 혜운은 그때나 지금이나 지하불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신의 어리석음이 낀 마음 탓으로 돌렸다.
“절골 마을의 어느 아낙네는 고사리를 뜯으러 다니다 그 부처님을 보았다고 해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저 숲 속에서 말이죠.”
“그럼요.”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부처님 아닐까요?”
“글쎄요. 분별심으로 헤아리기보다는 믿음의 문제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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