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은 눈치 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 분)와 세상과 거리 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노상현 분)가 ‘동거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 작품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메가폰은 영화 ‘탐정: 리턴즈’ ‘미씽: 사라진 여자’ 등을 연출한 이언희 감독이 잡았다. 이언희 감독은 원작 속 짧은 단편 ‘재희’를 섬세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2시간짜리 영화로 재탄생시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서사는 더 풍성해졌고 인물의 감정은 보다 깊어져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와 공감을 안겼다는 평이다.
배우들의 호연도 호평 이유로 꼽힌다. 김고은은 특유의 사랑스럽고 당당한 면모에 섬세한 표현력을 더해 재희를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완성하고, 노상현도 복잡한 감정을 지닌 흥수를 섬세하게 빚어내 첫 스크린 도전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 역시 흠잡을 데 없다.
이언희 감독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대도시의 사랑법’의 출발부터 연출 중점 포인트, 촬영 과정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의 출발이 궁금하다.
“박상영 작가의 그전 작품들은 그저 재밌기만 했다. 이 책도 그냥 독자로서 보기 시작했는데 ‘재희’에게 너무 꽂힌 거다. 이건 내가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첫 영화를 아주 오래전에 찍었는데 그때가 20대였다. 어느 순간 내가 저 영화를 다시 찍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른 엔딩을 가지게 될까, 어떤 다른 감정을 실을 수 있을까 그런 궁금함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재희’를 보게 됐고 새롭게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재희를 보면서 이미 부러웠던 것 같다. 나와 다른 지점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표현하다 보면 나의 아쉬움이 조금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들었다. 막연하게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구체적인 것들이 생겼다. 디테일한 포인트들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 재희와 흥수의 관계가 균형 있게 보이길 바랐다.”
-‘퀴어’를 소재로 했다. 상업영화에서는 전면에 내세운 경우가 많지 않은 데다 영화의 톤도 밝고 경쾌해서 연출적으로 더 고민하고 견제한 점도 있을 것 같다.
“무척 고민됐다. 처음에는 재밌으니까 되지 않을까 했는데 직접 부딪혀 보니 캐스팅도 그렇고 투자도 그렇고 쉽지 않더라. 데이터가 없으니까. 영화를 공개하기 전까지도 다들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그냥 편하게 영화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당연히 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열심히 만들었지만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은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완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재희가 캐릭터 자체로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여성 캐릭터로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원작에서는 가볍고 유쾌하게 지나간 장면들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재희의 표정이 담기면서 그 인물을 더 깊이 이해하게 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시나리오 쓸 때 되게 중요했던 지점이었다. 원작을 가지고 작가와 피디, 여자 다섯 명이 열심히 작업했다. 그 과정에서 원작이 정말 ‘영’(영화 속 흥수)의 시선으로 이뤄지고 있구나를 깨닫게 됐다. 재희가 보고 싶은데 왜 안 보일까, 그게 뭘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 답은 재희가 강의실에서 나오면서 떨고 있는 손이었다. 재희가 정말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도 쉬운 상황이 아닌데. 거기서부터 재희라는 캐릭터가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전에는 헷갈렸다. 보고 싶은 사람, 대리만족을 하게 하는, 굳건하고 멘탈도 강한 약간 센 언니처럼 표현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들은 주인공이 아닌 거다. 조력자 정도로 표현돼 왔다. 정말 그 감정으로 들어가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약한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고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나 해서 그 지점부터 제 갈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재희의 엔딩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결국 결혼을 택한 재희의 선택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나도 결혼을 하긴 했지만 이제는 결혼이 필수가 아니잖나. 결혼 장려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안하는 게 맞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호(흥수의 연인)의 결혼식을 넣을까 고민도 했었다. 온갖 고민을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재희는 왜 결혼하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더라. 재희는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은 애인데 결혼이라고 안 될 게 있나. 그래서 내가 내린 답은 돌아올 수도 있으니 그냥 해보자였다. 그래서 흥수의 마지막 대사가 중요했다. ‘그래, 잘 다녀와라.’ 그냥 ‘잘 가라, 재희야’에서 끝을 내면 절대 안 됐다.”
-김고은이기에 재희가 더 살아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니터 안에서 재희처럼 살아 숨쉰다고 느껴진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흥수와 함께 걸어오는 첫 장면을 찍는데 포즈와 걷는 자세가 그냥 재희인 거다. 그런데 그 첫 장면을 그렇게 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의상 피팅을 하면서 재희가 어떤 인물일지 옷을 통해 이야기를 했다. 의상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의상팀의 200벌 정도 의상을 가져왔다. 몽타주 안에서 미친 듯이 옷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김고은이 내가 재희라면 이렇게 입을 것 같아라며 믹스매치를 직접 하며 아이디어를 줬는데 이미 내가 아니더라도 알아서 잘하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정말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물이 오른 느낌이다.”
-노상현 합류 과정도 궁금하다.
“간절하게 흥수를 찾고 있을 때였는데 ‘파친코’ 시즌1이 오픈돼서 그때 연락을 했다. 새로웠다. 사실 나는 겁도 많고 추진력이 있거나 그렇지 않다. 고민도 많이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노상현이) 딱 저 배우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보다는 새롭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노상현이 문에 딱 들어서는 순간 ‘하실 거죠’라고 물어봤다. 그냥 진짜 운명이었다.”
-김고은, 노상현의 합이 정말 좋았다. 비주얼부터 연기 호흡까지 흠잡을 데 없었는데.
“캐스팅됐을 때 둘 다 쌍꺼풀이 없는 눈이라 누군가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캐릭터의 다양성도 필요하니까. 그런데 같이 있는데 너무 좋았고 지금도 보면 그림체가 비슷하다는 게 이렇게 큰 힘을 주는구나 싶다. 사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배우가 선택을 해줘야 하는 영화였다. 두 배우가 해준다고 했을 때 정말 감사하고 기뻤다.”
-흥수의 결혼식 축가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원작에서는 핑클의 ‘영원한 사랑’이었을 거다. 시기를 바꾸면서 노래도 바꿔야 했고 시나리오 작가님이 ‘배드 걸 굿 걸’을 찾아줬는데 가사가 너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이건 정말 재희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했다. 노상현이 춤추는 걸 너무 부담스러워했다. 엄청난 용기도 필요하고. 그런데 노래가 시작되면 정말 진심을 다했다. 재희에게 많은 걸 받은 흥수가 정말 재희를 위해, 재희를 통해 힘을 찾게 됐다는 걸 표현할 수 있는 신이었다.”
-영화 속에서 박상영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등장한 것도 ‘깨알’ 웃음 포인트였다. 비화가 궁금하다.
“박상영 작가와 별개의 캐릭터로 보여야 하는 것도 있지만, 흥수가 원하는 게 확실하고 간절한데 그걸 잘하지 못할까 봐 회피하는 방어적이잖나. 그런 인물에게 그 마음(글을 쓰고 싶은 간절함)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그런 기사였고 가상의 인물보다는 원작자가 등장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작가님에게 출연 가능하냐고 묻고 사진도 확인받고 잘 썼다.(웃음) 작가님도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 줬다. 정말 감사하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됐으면 하나.
“작업하는 영화가 끝나면 어떤 감정을 주고 싶은지 정리하는데 ‘탐정’ 때는 정말 ‘재밌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번 영화는 그냥 이 영화가 만들어져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수많은 좋은 영화들이 있잖나. 나도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힘든데 영화도 힘들면 굳이 보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와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행이라는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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