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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무문사(無門寺)에 가서 <3>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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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에 이어 「무문사에 가서」를 선보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무문사라는 이름의 절집이지만 불교적 상상력에 매달린 작품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 사람과 자연의 인과(因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세계 한복판을 걸어가는 우리네 삶이 곧 수행의 길이며 인생의 여로에는 인간의 힘이 어쩌지 못하는 섭리가 가로놓여 있음을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문장 속에 새겨 놓은 명작입니다. [편집자]


나는 좀 더 철이 든 후에야 아버지가 무서운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마을사람들은 아버지를 슬슬 피했고, 마주칠 때는 굽실거리며 사정했다. 아버지가 빌어준 장리쌀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아버지는 일꾼을 세 사람이나 두었다. 한 사람은 상머슴인 덕출 아저씨였고, 또 한 사람은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이름 없이 그냥 막둥이라고 불리는 노총각이었다. 그리고 중머슴인 째보가 있었다. 절에 소금을 지고 가는 일은 째보가 도맡았다.

원주승이 긴 싸리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법당 마당에는 새처럼 작은 낙엽들이 여기저기 내려앉아 뒹굴고 있었다.

“고향 친척 분인가봐요?”

“아닙니다. 혜운스님하고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죠”

“그러시구만요.”

노할고 빨간 낙엽들이 나의 발밑에까지 굴러왔다. 그러자 풍경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려왔다.

“먼저 법당으로 가 참배하는 것을 보니께 절에 많이 다닌 분 같구만요.”

“국민학교 다닐 때는 방학 동안 절에서 보내곤 했습니다. 마을 바로 뒤에 절이 있어서요.”

“좋은 동네구만요.”

버스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버스는 절 앞 한길에서 잠깐 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승려는 그녀였다.

“혜운스님이구만요.”

버스는 곧 붉게 타고 있는 산모퉁이를 돌아가 버렸다. 그녀는 조그만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잠시 숲속으로 잠겨들었다. 절로 올라가는 길가에 서 있는 키 작은 떡갈나무들의 숲이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나자 원주승이 말했다.

“손님 오셨어, 그 상자는 이리 주고.”

순간, 그녀가 무슨 소리인가를 웅얼거렸다. 잠시 후에야, 그녀의 음성이 또렷해졌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

“법회를 마치고 오는 길이군요.”

“네.”

그녀의 얼굴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맑았다. 두 눈 주위에는 그늘처럼 그윽함이 감돌았다. 그녀는 원주승에게 상자를 내밀고는 천천히 법당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비로자나불 앞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되살아나는 속가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는 것이었을까. 기도는 오래 계속되었다. 향이 피워대는 연기의 올들이 법당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금세 사라지곤 했다.


그녀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우리들은 다가오는 학예회를 맞이하여 밤잠을 설치며 들떠 있었다. 어정쩡한 솜씨나마 으스대며 뽐낼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예회의 순서는 다채로웠다. 독창, 합창, 무용, 오르간 연주, 연극 등의 순서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의 기대와 관심은 연극에 모아졌다. 선생님이 정해준 작품은 ‘흥부전’이었다. 배역은 학예회 두 달 전에 벌써 정해졌다. 흥부의 아내 역을 맡은 여자아이는 동네에서는 물론 학교 안에서까지 가장 예쁘기로 소문이 난 그녀였다. 그리고 흥부 역은 추첨 결과 우리 반 아이가 맡게 되어 반 아이들이 모두 다 환성을 질렀다. 그날부터 흥부가 된 녀석은 사내아이들에게는 부러움을, 계집아이들에게는 질투를 받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부러워했다. 더구나 흥부는 우리 마을 녀석이 아니어서 다른 마을 녀석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으로 분하기조차 했다. 나는 학교를 가도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연극을 연습하는 창고 앞을 지나면서 침을 뱉기도 하고 공연히 쿵쿵거리고 다녔다. 등하교 길에 가방을 들어주고 싶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끝장인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면 날마다 곧바로 만나서 ‘여보’ ‘당신’ 하고 해대는 그들의 꼴이 연상되어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런데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이었다. 흥부 역을 맡아 으쓱거리던 아이가 연습 도중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다. 녀석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배역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반 아이 들은 쓰러진 친구에 대한 걱정보다는 누가 그녀의 남편이 되느냐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런 기회가 나한데 떨어질 줄이야!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흥부 역을 떠맡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부터 학예회가 끝나는 날까지 그녀의 남편, 흥부가 되었다. ‘여보’ ‘당신’이란 말을 실컷 해댔던 것이었다.

조이뉴스24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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