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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무문사(無門寺)에 가서 <2>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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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에 이어 「무문사에 가서」를 선보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무문사라는 이름의 절집이지만 불교적 상상력에 매달린 작품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 사람과 자연의 인과(因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세계 한복판을 걸어가는 우리네 삶이 곧 수행의 길이며 인생의 여로에는 인간의 힘이 어쩌지 못하는 섭리가 가로놓여 있음을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문장 속에 새겨 놓은 명작입니다. [편집자]


나는 화엄이라고 부르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요사채를 나왔다. 절 마당 주위에는 여승들이 작은 돌멩이들로 쌓아올린 탑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연못이었던 듯싶은 곳에는 머리가 떨어져나간 거북이 있었고, 그 거북의 품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잘려진 거북의 목을 바라보면서 혜운을 생각했다. 거북은 지금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을 잃은 채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출가를 가끔씩 삶의 도피로 생각했다.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그녀였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입산하기 전이었다. 선배의 화실에서였다. 처음에는 누드화로써 그녀를 만났었다. 고개를 말없이 숙인 채 의자 위로 올린 다리의 무릎에다 팔을 괴고 있는 그림이었다. 선배는 그녀의 흰 피부가 좋다고 자랑했다. 우윳빛처럼 희고 매끄러운 살갗일수록 선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모델에 대해서 별로 부끄럽지 않게 말했다. 명함을 만들어서 화가들에게 돌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화실을 전전하는 시간보다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더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어둠이 지키고 있는 빈 방이 더 무서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피했다.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려 해도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때마다 말머리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곤 하였다. 씻기지 않는 아버지와 그녀 아버지 간 의 해묵은 얼룩 때문이었다. 그 전쟁 때 그녀 집안은 좌익이었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온 그녀 할아버지가 군당위원장까지 지냈으니까. 그녀 아버지는 지금도 그녀의 할아버지 행동이나 기개를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는 모양이었다. 우직하리만큼 반골이었다.

반면에 아버지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유들유들한 성격 탓이었다. 좌익의 세상이 되면 그쪽으로 몰려가서 박수를 쳤고, 우익의 세상이 되면 또 그쪽으로 끌려가서 만세를 불렀다. 아버지뿐만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그렇지 않고는 삶의 방법이 없었다. 버드나무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어느 곳에도 멈추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그런 이치였다. 결국 그녀 집안만 몰락했고, 아버지는 그녀 집 소유였던 염전을 아주 헐값으로 사들였다. 그 후에도 아버지의 처세는 늘 삶에 보탬이 되는 쪽으로 기울곤 하였다. 무슨 자리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삶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아버지가 우러러보였다.

방학 동안 절에 가서 놀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나는 절에서 한문을 배우기도 했었다. 그곳 늙은 스님은 나에게 한문은 물론 진흙을 주물럭거려서 동자상(童子像)을 만드는 법까지 가르쳐주었다. 박처럼 둥그런 얼굴에다 입을 그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 아이의 미소를 담아야 하는데 붓을 잘못 놀리면 칭얼거리는 아이의 입이 돼버리곤 하였다. 통통한 볼에 붉은 안료를 바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 늙은 스님은 이야기를 곧잘 해주었다. 이야기 중에서도 우리 마을의 전설이 가장 흥미로웠다.

“너희 마을 조상들은 원래 해적이었지. 목선을 타고 멀리 중국까지 건너가 아리다운 처녀들을 훔쳐 와서 자손을 퍼뜨린 게야. 그래, 마을 처녀들의 살결이 옥처럼 곱다고들 말하지. 그런데 해적질을 그만둔 것은 바로 이 자리에 절이 지어지면서부터였지. 이 절을 창건한 스님이 속가에 있을 때는 소금 굽는 사람이었거든. 마을사람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준 게야. 그때부터 마을에 염전이 일궈지고 논밭이 만들어졌어.”

그 늙은 스님의 이야기는 사실인지도 몰랐다. 아직도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정월이 되면 두서너 가마씩 마을 뒷산에 있는 절로 소금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금은 옛날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보은염이라 불렸다.

조이뉴스24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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