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인생이 180도 달라졌던 가수
1973년 ‘안녕하세요’로 데뷔한 장미화는 데뷔곡부터 큰 인기를 끌며 이후 ‘봄이 오면’, ‘서풍이 부는 날’ 등 여러 히트곡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데뷔하자마자 야간 업소 행사 1순위 가수로 떠오른 그는 한 업소에서 90만 원씩 받았고, 당시 250~280만 원 했던 웬만한 집값을 세 업소만 뛰면, 한 달에 27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즉, 한 달에 집 한 채씩 벌었다고.
그렇게 돈을 쓸어모았지만, 그는 결혼을 하며 내리막길 인생을 걷게 됐다. 1979년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했던 그는 3년 만에 이혼했다.
친정엄마의 만류에도 이혼한 그는 ‘현모양처처럼 남편에게 헌신했지만 아무 소용 없구나’라고 느꼈다고. 그는 “동등해야 하는데 전 남편이 날 아래로 보더라. 상대방에 관한 존중이 없었다”고 밝혔다.
아이와 바꾼 100억
장손인 아들은 법적으로 시가에서 데려가게 되어 있었지만, 장미화는 아들의 양육권을 가져오는 조건으로 남편의 100억 원 채무를 대신 떠안았다.
이 빚더미를 갚기 위해 다시 무대에 돌아온 그는 무리해서 야간 업소 12군데를 뛰다가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몸 아끼지 않고 20년의 세월에 걸쳐 겨우 100억을 청산했지만, 사업 실패로 또다시 아픔을 겪어야 했다.
2019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던 장미화는 사업 시작 두 달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으면서 빚과 함께 폐업했다.
그는 “다 까먹었다. 빚지고 내려왔다. ‘곧 끝나겠지’ 싶어 기다렸는데 안 되겠더라. 폐업하고 아직 그 후유증이 있다”고 털어놨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까지
이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상처도 생겼다. 1년 동안 운전해 준 매니저에게 자신이 차린 회사에 자리까지 만들어 고용하고 통장도 맡겼지만 매니저는 회삿돈에 손을 댄 후 사라졌다.
게다가 매니저는 장미화의 지인들에게 장미화의 이름을 대며 돈을 빌려 갔다고. 장미화는 “옛날에도 가까운 사람한테 맨날 당했지만 그런 사람인지 정말 몰랐다”며 “엔터 문 닫고 난 뒤에야 내 지인들에게 돈 빌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두 명이 아니다”라며 억울해했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모성애가 대단하십니다.”,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아들 위해 사셨으니 남은 인생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얼마나 고생했을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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