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패기로 신속·정확한 뉴스를 전달한다. 안녕하세요. 인턴 기자 주! 현! 영!입니다.”
이런 인사말을 예상했으나, 주현영은 수줍게 웃으며 주먹악수를 청했다. 2021년 11월1일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에스엔엘(SNL) 코리아 리부트 시즌1’ 꼭지 ‘인턴 기자’로 막 뜨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어리바리하던 인턴 기자는 조금씩 성장하더니 시즌 막판엔 ‘주 기자가 간다’ 꼭지로 윤석열·이재명 등 당시 대선 후보 인터뷰까지 했다.
코미디언 이미지가 강했는데, 알고 보니 정극 연기를 공부한 배우였다. 우연히 지원한 ‘에스엔엘’ 오디션이 삶을 바꿨다.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떤 분들은 인턴 기자 캐릭터가 너무 강하게 박혀서 다른 연기를 하기 힘든 거 아니냐고 걱정하세요. 저도 걱정되는 한편 오기도 생겨요. 정반대 캐릭터도 소화하며 다양한 영화·드라마에서 제가 가진 것들을 다 꺼내서 쓰고 싶어요.”
올 초 주현영이 ‘에스엔엘’ 하차를 발표했을 때 다들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미 프로그램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터였다. 시즌4까지 제작했던 에이스토리와 시즌5부터 직접 제작에 나선 쿠팡플레이는 갈등을 빚고 있었다. 안상휘 피디 등 제작진이 에이스토리에서 나와 쿠팡플레이 자회사로 옮기면서 ‘제작진 빼가기’ 논란과 소송전이 벌어졌다. 주현영은 에이스토리 자회사 에이아이엠시(AIMC) 소속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주현영) 터졌다’는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주현영은 새로운 색깔의 연기 도전을 위한 선택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에스엔엘’에 합류하는 것도 도전이고, 그만두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고, 힘든 새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고 제작진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한겨레에 “쿠팡플레이 쪽 제작진과 에이아이엠시 모두 하차를 말렸으나 배우 본인 의지가 강했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최근 주현영의 하차가 김건희 여사 패러디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뒤늦게 퍼졌다. 주현영은 대선 전 당시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를 패러디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정치 유튜브 채널 ‘송작가티브이(TV)’는 지난 9월19일 “주현영이 김건희와 똑같았다. 그런데 쿠팡이 세무조사 몇번 처맞고 나더니 주현영을 없애버렸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의 쿠팡 특별 세무조사 착수 사실이 알려진 건 지난 5월이다. 주현영의 하차와 연결 짓기엔 시기가 안 맞는다.
근거가 빈약한 ‘카더라’ 수준의 해당 발언이 알려진 건 지난 2일 스포츠경향, 스포츠투데이 등 일부 매체가 뒤늦게 기사화하면서다. 그러자 7일까지 20여개 매체가 비슷한 기사를 잇따라 올렸다. 대부분 사실 확인 노력 없이 유튜버의 의혹 제기를 ‘복붙’ 하는 수준이었다. 국민일보만이 “외압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쿠팡플레이 관계자의 말을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두가지 지점을 보여준다. ‘에스엔엘’은 과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씨제이(CJ) 계열 티브이엔(tvN) 방송 시절인 2012년 ‘여의도 텔레토비’의 ‘또’는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를 상징하는 빨간 옷을 입고 욕설을 마구 날렸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또’를 연기했던 배우 김슬기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정치 풍자는 자취를 감췄다. 훗날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미경 씨제이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유죄가 확정됐다. 지금 비슷한 의혹 제기가 반복된다는 건, 사람들이 김 여사를 보고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리고 있음을 뜻한다.
또 하나는 언론의 문제다. 기사들이 쏟아지자 ‘송작가티브이’는 지난 4일 올린 영상에서 “여러 언론이 갑자기 우리 채널 실명을 언급하며 보도했다. 대통령실에서 허위사실 유포로 저를 고발하려고 좌표를 찍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 주장대로 용산과의 교감 아래 기사를 썼을 리는 만무하지만, “오타까지 복붙해 받아썼다”는 유튜버의 조롱 섞인 일침은 웃어넘기기 힘들다. 아무리 온라인 조회 수가 간절해도 언론은 유튜브와 달라야 한다.
기사가 쏟아진 즈음, 주현영은 자신이 주연한 영화 ‘괴기열차’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 중이었다. 영화로 주목받아야 할 시기에 엉뚱한 기사가 더 많이 떴다. 재능 있는 배우의 앞길을 막는 자는 누구인가.
한겨레 서정민 기자 /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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