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얼핏 주인공인 김고은과 노상현의 사랑 이야기일 듯하지만, 사실은 둘의 우정에 관한 영화다. 친구사이인 두 남녀가 함께 살면서 서로의 사랑과 인생을 응원하는 작품으로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 노상현이 연기한 흥수가 남자를 사랑하는 성소수자로 그려진다.
노상현뿐 아니다. 배우 이유미와 한소희도 퀴어영화로 향한다.
영화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로 독립영화계에서 먼저 주목하고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에미상 게스트 여배우상을 수상한 이유미가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의 주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로 눈도장을 찍은 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 ‘경성크리처’ 시리즈의 주연의 입지를 굳힌 한소희가 동성애 소재의 영화 ‘폭설’에 출연한다. 모두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이다.
● 인기 배우들이 연기하는 성소수자 캐릭터
지금까지 성소수자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동성애를 그리는 작품들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신인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도맡았다. 소수자의 이야기인 만큼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데다, 일부 편견을 지닌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대도시의 사랑법'(제작 쇼박스)의 이언희 감독은 노상현을 만나기까지 흥수를 연기할 배우를 찾지 못해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은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16일 개봉하는 ‘우.천.사'(감독 한제이·제작 에스더블유콘텐츠)는 태권도 국가대표전을 준비하는 여고생 주영(박수연)과 소년원 출신의 예징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이유미가 예지를 맡아 삶의 목표 없이 살아가는 중 우연히 만난 주영으로 인해 변해가는 인물을 그린다.
23일 개봉하는 ‘폭설'(감독 윤수익·제작 LINT필름)은 10대 시절 만난 소중한 인연을 성인이 된 뒤에도 잊지 못해 다시 찾아 나선 이들의 이야기로, 한소희는 10대 시절 배우 지망생이었던 수안(한해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하이틴 스타 설이를 연기했다. 두 영화에서 이유미와 한소희는 각자 처한 아픔과 상처 속에 동성의 연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인물을 소화한다.
● BL 드라마 인기 속 연기 스펙트럼 넓히는 기회
노상현을 비롯한 이유미와 한소희는 이미 인기와 인지도를 얻은 유명 배우이거나, 한창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성소수자 역할에 갖는 부담보다 작품과 캐릭터의 매력에 중점을 두고 도전에 나섰다.
노상현은 “극중 흥수가 성소수자 역할이라는 사실이 영화 출연을 결정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살면서 답답함, 고립감, 수치심 등을 겪으며 자신을 누르고 살아온 흥수의 사연에 공감했고 재희(김고은)와 교류하며 성장하는 서사에 끌렸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최근 동성의 사랑을 굳이 성별로 구분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이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상황도 배우들을 퀴어영화로 향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우.천.사’를 홍보하는 로스크의 김태주 대표는 “(퀴어영화들이)성(性)에 초점을 두지 않고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로 접근하는 분위기”라며 “배우들도 작품이 좋다고 판단하면 거부감 없이 출연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퀴어영화로 향하는 흐름은 최근 몇 년간 ‘BL'(보이즈 러브) 작품들이 인기를 끈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BL 작품들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 심의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꾸준히 유통되고 있으며, 상업적 성과까지 내고 있다. 국내에서 BL 열풍을 지핀 박서함·재찬 주연의 ‘시맨틱 에러’가 대표적인 예다. 차서원 주연의 ‘비도의적 연애담’과 손우현이 주연한 ‘너의 별에게’ 시리즈까지 남성 간의 로맨스를 그린 BL은 고유한 폭발력을 지닌 팬덤을 형성하면서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더해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도 언급되는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첫사랑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퀴어영화 열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국내서 2018년 개봉해 23만명을 동원한 영화는 티모시 샬라메를 향한 열혈 팬덤을 낳았다. 이후 몇 차례 재개봉과 넷플릭스 등을 통해 공개돼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BL 작품이 화제가 되고 팬덤을 형성하는 등 퀴어장르는 더 이상 독립영화나 쇼트폼 콘텐츠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그러한 인식의 변화와 맞물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배우들이 작품을 선택하는데 진입장벽을 낮추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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