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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자화장 <7>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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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을 선보입니다. 작품은 수행자들이 용맹정진하는 절집이 배경이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자아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편집자]


우멸은 며칠을 우명이 내준 넓은 방에서 지냈다. 동안거가 끝나자마자 산철이라도 선방이 있는 절로 가려고 알아보는 중이었다. 문경 D사는 안거와 산철 구분 없이 대중들이 꽉 차 무작정 대기해야 했다. 그리고 하동 C사는 조실이나 구참수좌의 추천이 없으면 방부를 들이기가 힘들었다. 삼보사찰 선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바에는 지리산 칠선계곡 초입에 있는 B사 선방이라도 갈 요량을 했다. 지리산 B사는 십여 명 안쪽으로 선객을 받는 조그만 절이었지만 유서 깊은 참선수행 도량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멸이 포교당에 머문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우멸에게 법성의 편지가 왔다. 법계사 주지를 통해서 부친 편지였다. 법성은 진주 포교당 주소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편지 겉봉에 쓰인 주소는 법성의 필체가 아니었다. 다만 ‘우멸아, 바로 보아라.’ 라는 뜻의 우멸즉견(愚滅卽見)은 법성 필체였다. 우멸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볼펜을 꾹꾹 눌러 쓴 반듯한 행서체는 법성의 글씨가 분명했다.

우멸은 봉투 끝을 뜯어 편지를 꺼냈다. 편지 내용은 한시 한 수뿐이었다. 한시를 읽는 순간 우멸은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버린 듯 온몸이 굳어버렸다.


我今終生死

誰得誰失道

過去無來處

山色自靑靑

나는 이제 생사를 마친다네

도는 잃지도 얻지도 않았고

과거는 온 데 간 데 없는데

산빛은 절로 푸르고 푸르네.

잠시 후 우멸은 편지를 앞에 놓고 큰절을 올렸다. 과일접시를 들고 방에 들어오려던 우명이 우멸의 모습을 보고는 물러섰다. 우멸이 말했다.

“우명스님, 은사스님 편진데 한번 읽어보게.”

“예, 사형님.”

우명이 편지를 읽은 뒤 도리질을 했다.

“사형님, 은사스님 신변에 무슨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 비로암으로 가야 할 것 같네.”

우명은 즉시 사무장을 불렀다. 그런 뒤 신도회장과 상의해서 포교당을 잘 지키라는 당부를 했다. 우멸은 우명이 운전하는 짚을 탔다. 포교당에서 사용하는 새 차였다. 짚은 눈이 쌓여가는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단성인터체인지를 벗어난 지점에 사고 차량이 보였다. 눈길에 추돌한 승용차 두 대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우명이 운전하는 사륜구동의 짚은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했다.

우명은 시천면 중산리 버스종점에서 소변을 한번 보았을 뿐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주차장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진주, 단성과 달리 지리산 중산리 쪽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리산 일대는 며칠 동안 폭설이 내린 듯했다. 지리산 계곡과 산등성이는 눈이 부실 만큼 흰 빛깔 일색이었다. 우명과 우멸은 걸망을 바짝 등에 붙였다. 우멸이 말했다.

“눈길은 몇 배나 힘드니까 걸망 짐을 줄이게.”

“사형님, 제 걸망에는 은사님 누비승복하고 누비조끼밖에 없어요.”


예상한 대로 산길은 폭설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산길에 산짐승 발자국들이 드문드문 찍혀 있었다. 먹이 때문에 산 아래를 오간 산짐승 발자국이었다. 우멸은 미끄러지지 않고 능숙하게 산길을 탔다. 법계사까지 무난히 올랐다. 법계사 주지가 우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제 한 대학생이 산속에서 헤매다가 헬기에 실려 갔어요.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왔다가 동사한 거지요.”

“우리 스님을 뵀습니까?”

“보름 전쯤이었을 겁니다. 편지를 부탁하러 한 번 내려오신 뒤로는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조심하세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산길이 나 있지만 비로암은 길이 없잖습니까?”

“길 없는 길이죠.”

특히 너덜겅 돌길이 위험할 터였다. 화창한 날인데도 너덜겅 돌길에서 낙상한 등산객이 헬기에 실려 간 적도 있었던 것이다. 눈 덮인 너덜겅 돌길이라면 기어서 가야 할 듯싶었다. 뿐만 아니라 구상나무 숲도 오리무중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우명은 벌써부터 불안해했다. 우멸 역시 법계사 주지의 ‘보름 전쯤’이란 말에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조이뉴스24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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