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남자애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늘 긴장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걔들이 언제 껄끄럽고 불편한 상대로 돌변할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애들은 나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놀다가도 갑자기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거나, 가슴에 손을 대거나, “섹스라는 게 뭔지 아냐, 어떻게 하는 건지 아냐”고 물으며 웃어댔다. 여학교에 다녔던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남녀공학인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비슷한 상황은 반복됐다. 신입생 때부터 나를 포함한 여자애들과 한 무리로 뭉쳐 정답게 지내던 남자애들이 어느 순간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누는 얘기는 대부분 강의에 오가며 만나는 여성들에 관한 것이었다. 자기들끼리 ‘얘는 팔뚝이 얇아서 예쁘고, 쟤는 가슴이 커서 좋고’ 하는 식으로 여성들의 몸에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을 때 나는 당황했다. 허물없는 친구라고 믿었던 애들이 뒤에서는 나나 다른 여성들을 본인과 동등한 범주가 아닌 어떤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렇지만 ‘친한 친구’라서 부끄럽게도 그 사실을 대놓고 비난하지 못했다. 나와 여자친구들의 얼굴, 몸의 일부가 언제 저들의 이야깃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은 채 그들과 애매한 친구 사이를 유지했다.
얼마 전 밝혀진 텔레그램의 딥페이크 성 착취 범죄를 보며 학창시절의 기억이 줄줄이 딸려나왔다. 남성들이 여성들의 몸을 놀잇감 삼아왔다는 것이, 그런 행위로 공고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다는 것이 낯설지 않다. ‘지인 능욕’이라는 이름이 붙은 텔레그램 방에는 가해자들과 같은 학교 친구이거나 가족인 여성들의 얼굴이 다른 여성들의 몸에 합성돼 포르노그래피로 등장했다. AI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어떤 가해자들은 비용을 받기도 했다. 합산 20만 명이 넘는 가해자들이 이런 텔레그램 방을 이용했고, 여기에 대학생은 물론 10대 청소년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퀴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였던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은 ‘남성성’이라는 것이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를 기반으로 구성됨을 지적한 바 있다. 남성들의 관계란 여성을 경유해서만 공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흥업소에서 이뤄지는 노동과 젠더 간 권력관계를 탐구한 책 〈남자들의 방〉에서 황유나 활동가는 “남자는 여자라는 타자를 만들고, 이 타자에게 우위를 점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수많은 ‘남자들의 방’은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며 서로의 남성성을 확인, 승인, 관리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썼다. 엄기호 교수 역시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서 디시인사이드를 연구한 이길현의 논문을 인용하며 벌거벗은 여성들의 사진, 즉 포르노를 첨부 파일로 올려놓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특유의 문화를 이렇게 분석했다. “첨부된 포르노가 새로운 것일수록 그리고 정도가 심할수록 더욱 환영받는다. (중략) 이들의 남성적 형제애를 보증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교환이다.”
일부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촬영하고 이를 온라인에서 유포 · 판매했던 ‘n번방 사건’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 착취, 불법 촬영과 유포 사실이 드러났던 ‘버닝썬 사태’, 같은 학교의 여성들을 향한 성적 발언을 일삼았던 몇몇 대학교의 단톡방 사건 등과 이번 범죄는 모두 동일선상에 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구체적으로 여성의 몸은 일부 남성에게 자원으로 기능한다. 남성들은 여성의 몸이라는 자원을 통해 자신들의 유대를 끈끈하게 유지하고, 그 속에서 남성성을 구축하고 확인하며, 실제로 돈을 벌기도 한다. 이번 사태가 밝혀진 이후 대체 왜 범죄 대상이 ‘지인’인지, 어째서 아는 여성을 ‘능욕’하고 싶어 한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여성이 가해자들에게 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딥페이크 성 착취를 위한 여성 지인들의 사진을 많이 확보해야 해당 텔레그램 방에서 만들어진 남성들의 세계에 동참할 수 있고, 그런 사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 계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 남성 청소년 가해자들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이들도 여성의 교환을 통한 남성들의 세상 만들기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자 한국의 여성 혐오적 문화를 흡수하면서 자라온 남성 청소년에게는 거기에 진입하는 일이 너무 쉽고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에 강연을 나갔다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한 남학생을 만난 적 있다. “사회가 여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증명하실 수 있나요?” 그가 이렇게 묻자마자 주변에 앉아 있던 남학생 몇 명이 일제히 킬킬거렸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여성 청소년들의 매일은 어떨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됐다. 그들은 내가 10대였던 시절보다 훨씬 더 노골화된 여성 혐오를 같은 학교 ‘친구’를 통해 마주해야 하고, 심지어 친구라고 믿었던 누군가가 나를 불법 촬영하거나 어디선가 나를 놀잇감으로 삼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일상적으로 긴장과 불안, 공포를 안고 지내야 한다면 안 그래도 고단할 학교생활이 더더욱 피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터진 후 일부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을 교육하는 대신 여학생들에게 ‘개인 SNS를 포함한 온라인 공간에 자신의 사진이나 정보를 올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대체 소녀들의 세계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좁아져야 하나? 여성들은 얼마나 더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걸까?
젠더 기반의 성폭력이 거듭되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한국 여성들은 언제든 이런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일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에 압도된다.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다. 딥페이크 성 착취와 같은 범죄는 일시적인 사회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여성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여성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좁히지 않고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일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뭘 해야 할까? 어렵지만 절실한 질문 앞에서 같이 답을 찾아보자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요청한다.
황효진
」
책부터 팟캐스트까지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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