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강남역 근처에 살았는데, 제 등교 시간이 클럽에서 막판까지 놀던 분들의 귀가 시간과 겹쳤거든요. 학교 가면서 그분들에게 너무 많이 치여서 그런지 클럽을 가겠다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재미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제작 쇼박스)에서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재희란 인물을 찰떡같이 소화해낸 김고은이 배역과 실제 성격의 비교에 대해 “재희처럼 잘 놀지는 못했다”며 한 말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여자와 남자가 함께 동거하며 각자의 사랑을 일궈가는 이야기로, 박상영 작가의 단편 ‘재희’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김고은이 재희를 연기했다.
재희는 연애도 인생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로, 영화에서는 클럽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술과 춤을 즐기는 모습으로 캐릭터의 일면을 드러낸다. 김고은이 이를 언급한 것이다. 그렇지만 재희의 고민은 여느 청춘과 다를 것이 없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재희와 흥수(노상현)를 통해서 20대 때 불안했던 감정들, 시행착오들, 그런 것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10대를 지나 20대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 같은 것들이 확고해지잖아요.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서러움, ‘다른 생각’을 ‘틀린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런 점이 재희와 같았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은 관객의 평가가 남았지만, 앞서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언론과 평단의 합격점을 받아놓은 상황. 지난 2월 개봉한 ‘파묘’에서 젊은 무당 화림 역을 맡아 신들린 굿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1000만 흥행에 일조한 김고은의 매력을 갱신할 만한 작품으로 거론된다.
연이어 좋은 작품, 좋은 연기를 선보이는 것과 관련, 김고은은 “작품 보는 선구안이 좋다는 생각은 안 한다. 주변에 의견을 많이 구하는 편”이라고 겸손을 보이는 한편 “연기할 때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집중한다”고 비결을 답했다.
“저는 연기하는 행위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20대 후반부터 나의 직업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죠. 그러한 생각이 저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줘서 결과적으로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한때 저도 연기에만 몰두하면서 괴로워했던 적도 있는데 그럴수록 디테일을 놓치게 돼서 결과물은 더 안 좋았어요. 연기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계속해서 연기를 하려면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대도시의 사랑법’은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다. 김고은이 이 작품을 하기로 결정한 뒤에도 제작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캐스팅의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고, 순제작비가 53억원으로 예산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주연배우로서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요즘 영화계가 힘들다 보니까 이 정도 규모의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는 거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게다가 예산을 맞추려면 두 달 반 만에 촬영을 끝내야 했죠. 예산이 적고 많고를 떠나서 저한테는 기간이 주는 압박감이 상당했어요. 그래서 촬영이 딜레이되거나 하는 상황이 오면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연출부의 마인드로 바뀌기도 한 것 같아요. ‘대도시의 사랑법’을 하면서 촬영 일정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영화가 이렇게 개봉하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러면서 김고은은 ‘대도시의 사랑법’ 같은 중급 규모의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블록버스터나 큰 예산을 들인 영화들은 아무래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치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며 “다양한 장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런 중간 사이즈의 영화들이 좋은 것 같다”고 중급 영화들의 선전을 빌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호아킨 피닉스·레이디 가가 주연의 영화 ‘조커: 폴리 아 되’와 같은 날 개봉해 경쟁을 펼친다. ‘조커: 폴리 아 되’는 2019년 개봉해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1조3000억원)를 벌어들이 ‘조커’의 속편으로, 전편의 흥행에 힘입어 관심받는 작품이다. 개봉 하루 전날 예매율도 ‘조커: 폴리 아 되’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앞선다.
“아직 보지는 못 했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를 가진 좋은 영화일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 영화와는 가는 길은 다릅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보는 내내 유쾌하고 보고 나서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작품이에요. 시사회 반응이 좋았던 것처럼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으면 좋겠어요. 아유, 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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