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작가의 단편소설을 매일 오전 업로드합니다. 독자님들께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단편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처음 소개하는 작품은 정찬주 작가의 ‘그림자와 칼’입니다. 소설은 어느 날 사람들의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상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편집자]
골동품 가게 옥상에서 빵처럼 둥그런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행인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여러분, 여러분!”
졸고 있던 직원들이 창가로 붙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중년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이 들려왔다. 그는 한동안 ‘여러분’만을 계속 소리쳤다. 그냥 외치는 고성이 아니라 목쉰 음성에는 절실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중년의 간절한 외침에 무표정하게 지나치려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수효는 금방 불어났다. 모두들 일 년 전에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가게 앞을 빼꼭히 메우자, 중년은 메가폰을 켰다.
“여러분, 이제 그림자는 사라졌습니다. 저의 그림자도, 여러분의 그림자도…그림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유령에 불과합니다. 유령!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영락없는 유령입니다. 그림자가 있었을 때는 여러분이 실상이고 그림자가 허상이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허상이 없어졌으니 여러분도 실상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 사람이라고 믿는 여러분은 사람의 허상일 뿐입니다. 허깨비일 뿐입니다.”
그러자 중년을 응시하고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유령이라니, 허깨비라니…그렇다면 도대체 진짜 사람들은 어디 있다는 거야…”저놈은 불볕에 돌아버렸어. 아주 돌아버린 게 틀림없어.”
“그림자 없는 껍데기 삶을 포기하진 마십시오. 절망처럼 큰 죄악은 없으니까요. 의수(義手)와 의족(義足)이 있듯 방법은 하나 있습니다. 그림자를 대신할 수 있는 대용품을 찾는 겁니다.”
비로소 사람들이 흥분했다. 몇몇 사람들은 중년에게 모욕을 받은 것처럼 화를 내며 되돌아섰고, 좀 더 흥분한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졸지에 일격을 당한 사람처럼 얼떨떨한 얼굴들이었다.
사무실 안에서도 실망은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개새끼!”
“그림자 대용품 장사치 아니야?”
“사라진 그림자가 어쨌다는 거야. 그림자의 사라짐은 인간이 더욱더 고등동물로 발달했다는 증거 아닌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연일 그렇게 보도하고 있잖아. 그런데 경찰은 뭣들 하는 거야. 낮잠을 자나? 저놈을 잡아가지 않고.”
남무는 비록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중년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중년의 사내는 사람들의 술렁거림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떠들었다.
“여러분, 그림자가 사라진 건 바로 여러분의 탓일 수도 있습니다. 제 얘기는 거짓이 아닙니다. 비탈진 밭에 심어진 사과나무의 사과를 보셨습니까? 사과들은 하나같이 비뚤어지고 못생긴 몰골입니다. 비탈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남무는 중년의 외침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중년의 사내는 그의 직업을 드러냈다.
“신사숙녀 여러분, 절망하지 마십시오. 이제 곧 그림자의 대용품을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좋아하는 나무의 그림자를 고르십시오. 소나무, 대나무, 뽕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어떤 나무의 그림자라도 여러분에게 접목할 자신이 있습니다. 땜질을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기회는 이번 꼭 한 번뿐. 서두르십시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무우산과 그 부근의 동해바다가 남무는 그리웠다. 무우산 중턱에서 요양 생활을 하던 중 일어났던 일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폐인이 돼버린 백정 남편의 업을 씻기 위해 무소(無憂沼) 가에서 살고 있던 그 아낙네가 생각났다. 무우소는 동해의 용이 새끼 용들을 거느리고 와서 가끔 놀고 간다는 깊고 푸른 연못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불끈 치켜 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빨리 신고하라니까! 아니야, 경찰을 부를 필요가 없어. 우리가…”
누군가가 중년을 향해서 돌을 던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돌멩이가 날아갔다. 골동품 가게 유리장이 순식간에 깨어졌다. 큰 소동이 벌어졌다. 나무 기러기들과 목이 긴 토기 항아리들과 흙으로 빚은 작은 허수아비들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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