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제 효자 노릇하던 김호중소리길, 구속 이후 철거 요구 빗발
“순간 애물단지로…연예인 거리 명칭 부여 신중해야”
#인천 계양구에서 나고 자란 김모씨(36)는 과거 서부천 벚꽃길에 ‘박유천 벚꽃길’이 들어섰던 것과 관련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사실상 계양구와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는 박유천의 이름을 딴 길이 조성된다는 것이 의아했다. 오히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의 이름을 사용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박유천이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 해당 길이 사라진 것에 대해 “변수가 큰 유명인 마케팅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라고 지적했다.
국내 지역 곳곳에는 유명인의 이름을 붙인 거리나 길이 우후죽순 격으로 조성돼 있다. 지역 경제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장점이 있지만, 변수도 크다. 유명인이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지자체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부랴부랴 팻말을 철거하는 등 유명인 이름 지우기에 진땀을 빼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김천시는 현재 ‘김호중 소리길’ 운영의 존폐를 놓고 고민이 깊은 상태다.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구속되자 그의 이름으로 조성된 ‘김호중 소리길’을 철거하라는 민원이 빗발쳐서다. 최근까지도 김천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김호중 소리길 아직도 철거 안했냐’ ‘범법자를 기리는 소리길을 철거하라’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김천시는 2021년 김호중이 졸업한 김천예고와 벚꽃 명소인 연화지를 잇는 100m 거리에 2억원을 들여 벽화와 포토존, 스토리보드 등 조형물과 함께 ‘김호중 소리길’을 만들었다. 이후 인근 상점의 매출이 급상승하고 1년 만에 김천의 관광객이 140% 이상 늘었다. 지난해 방문자는 15만명을 기록하는 등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지역 경제에 효자 노릇을 하던 ‘김호중 소리길’이 김호중의 구속 이후 애물단지가 된 셈이다. 이미 모교인 김천예고의 교내 쉼터 누각에 단 ‘트바로티 집’ 현판이나 김호중의 사진 등은 철거됐지만, 김호중 소리길은 이전과 같은 상태다. 김천시의 고민이 읽히는 부분이다.
이번 김호중 사태 이전에도 연예인의 이름으로 조성되는 거리나 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박유천 벚꽃길’이다. 팬의 지속적인 기부로 이뤄진 ‘박유천 벚꽃길’이 2013년 인천시 계양구에 들어섰다. 총 1.8㎞의 벚꽃길 중 100m에 박유천을 형상화한 여러 개의 그림과 문구, 자작곡 가사, 드라마 대사 등이 적힌 시설물이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후 박유천이 필로폰을 구매해 투약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벚꽃길에 대한 철거 요청이 빗발쳤고, 시는 2019년 해당 시설을 모두 철거했다.
2015년 빅뱅 출신 승리의 26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당시 중국 팬클럽이 서울 강남구에 조성한 ‘승리 숲’도 비판의 대상이다. 승리가 서울 강남 소재 클럽 버니썬 자금 횡령과 성접대·성매매 알선, 경찰 유착 등의 의혹을 받으면서 부지를 제공한 강남구를 비판하는 여론이 이어졌다.
이밖에도 서울 개포동 구룡역 앞 달터근린공원에 마련된 ‘로이킴숲’ 역시 로이킴이 이른바 ‘정준영 카카오톡 대화방’ 논란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사자 강남구청은 로이킴의 이름이 적힌 정자 현판과 우체통 등을 철거했다. 이후 로이킴의 음란물 유포 혐의에 대해 최종 기소유예처분을 받았지만 제거된 표식들이 복구되진 않았다. 현재 포털사이트 지도에서도 로이킴숲은 검색되지 않는다.
같은 사례가 반복됨에도 유명인을 내세운 거리 마케팅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경북 김천에 거주 중인 시민 A씨는 “거리의 명칭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특정 인물에 기댄 거리 명칭은 언제든지 부정적인 이슈로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연예계 관계자 역시 “연예인의 이름을 딴 길이나 숲을 조성하는 것은 새로운 팬덤 문화로 각광을 받았고, 현재도 팬덤에 의해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다”면서 “팬덤의 결속력을 다지고 동시에 지역 경제 발전에도 일부분 기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장기적인 발전을 고려해 거시적인 안목을 가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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