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으면서도 방송을 그만둘 수 없었던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
미녀 개그우먼으로 방송국에 발을 들였지만,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장밋빛 인생’, ‘늑대’ 등에서 명품 조연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던 방송인 안선영.
그녀는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햇빛이 들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아 물통에 받아와야 했던 집에서 살았다고 고백했는데.
심지어 화장실이 없어 공중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으며, 어머니가 쌀을 사 오지 못하신 날에는 남은 쌀을 불려 먹으며 자랐다고.
안선영의 어머니는 딸을 키우기 위해 방문 판매를 시작했고, 주말에는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그녀를 리어카에 태우고 일을 다녔다고 한다.
당시 눈치가 빨랐던 그녀는 손님의 아이가 심한 장난을 쳐도 모르는 척하며 참았고, 덕분에 어머니는 한 개만 팔 것을 다섯 개나 팔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형편이 나아져 좋은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으며,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안선영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에 그녀는 유학비를 벌기 위해 차량 광택제와 오렌지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전국 최우수 사원이 됐을 정도로 일을 잘해 시급이 1200원이었을 시절에 한 달 반 동안 무려 500만 원을 벌었다고.
이젠 행복할 줄 알았지만…
이 돈을 들고 영국으로 떠나 깍두기를 만들어 팔며 힘들게 공부를 이어갔지만, IMF 때문에 어머니의 가게가 망해 다시 빚이 불어나게 됐다.
이에 안선영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야 했고, 억대의 빚을 갚기 위해 300만 원 상금을 주는 개그맨 공채에 응모해 방송국에 발을 들이게 됐다.
또한 그녀가 처음 홈쇼핑에 출연할 당시에는 연예인이 쇼호스트 활동을 하는 일이 없어 욕을 많이 먹었는데, 이 역시 가족을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안선영은 아들의 이름을 딴 세일즈 홍보 대행 사업을 시작했으며, 2022년까지는 무려 연봉이 20억 원 이상이었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그리고 힘들었던 과거를 잊지 않고 장애인, 사회 소외 계층, 재난 피해 이웃 등 다양한 방면으로 꾸준히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안 그래도 좋아하는 연예인인데 더 멋지네”, “고생하면서 자랐구나”, “어머니는 너무 뿌듯하시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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