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다시그리기길, 조성 이후 매해 약 150만명 찾아
성남시 신해철거리는 운영비 문제로 철거
“연예인 마케팅, 반짝특수에 그쳐…지역과의 상생 고민해야”
#비틀즈의 앨범 커버 사진 촬영지로 유명해진 런던 애비로드는 멤버 4인이 줄지어 건너는 횡단보도를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이 횡단보도는 잉글랜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태국의 유명 관광지 푸켓 섬 주변에는 카오 핑 칸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지역 주민 정도만 아는 곳이었지만, 1974년 로저 무어 주연의 영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가 이곳에서 촬영된 뒤 관광명소가 됐다. 이 섬은 ‘제임스 본드 섬’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푸켓 관광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연예인의 이름을 딴 거리는 단순한 ‘길’을 넘어, 팬들의 성지순례 코스이자 지역 관광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어려운 이름보다 유명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지역 홍보와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연예인의 이름으로 된 거리 중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대구에 위치한 김광석길(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다. 고(故)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거리로, 2010년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의 하나로 방천시장 골목길에 11월부터 조성됐다. 350m 길이의 벽면을 따라 김광석 조형물과 포장마차에서 국수 말아주는 김광석,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광석 등 골목의 벽마다 김광석의 모습과 그의 노래 가사들이 다양한 모습의 벽화로 그려졌다.
낙후됐던 이 골목은 김광석길이 조성된 이후 불과 몇 년 사이 SNS 열풍을 타고 대구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2017~2019년 기간 매해 약 150만명이 이 골목을 걸었다. 고 김광석의 노래들과 쓸쓸한 골목 분위기가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관광객들의 평이 있다. 특히 매년 ‘김광석 추모 콘서트’ ‘김광석 노래 부르기 경연대회’ 개최하며 고 김광석을 추억하면서 길을 조성했을 당시의 의미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는 ‘송해길’이 조성됐다. 50년 전 종로구 낙원동에 ‘연예인 상록회’ 사무실을 열고 이 일대를 제2의 고향처럼 여기며 활동했던 방송인 송해를 기리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다. 지난 2016년 5월 23일 ‘도로명 주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송해의 공식 명예도로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송해길’로 불리게 됐다.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거리의 상징인 송해 동상과 팻말을 바로 찾을 수 있고, 곳곳에 송해 캐리커처가 붙은 가게들도 눈길을 끈다. 이곳에 위치한 ‘추억을 파는 극장’에서는 55세 이상이면 2000원에 옛날 영화를 볼 수 있다. 또한 송해가 즐겨 찾는 맛집으로 유명한 60년 전통의 우거지국밥집에서는 2000원이면 한 끼 해결이 가능하다.
스타마케팅을 활용해 외부관광객을 유도하고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는 등 지역경제 발전에 효과가 나타나는 이 같은 사례들은 지자체들이 ‘연예인 거리’를 적극적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전남 목포시에 자리한 자유시장은 2015년부터 가수 남진의 이름을 딴 야시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야시장이 열릴 때마다 한 회 평균 3000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강원 양구군도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숲길을 ‘소지섭길’로 정해 관광객으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2010년 여름 강원도 일대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담아 포토에세이집 ‘소지섭의 길’을 출간하며 강원도와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지자체 관계자 A씨는 “연예인 이름으로 된 거리나 길의 경우 국내외 팬덤을 자연스럽게 관광객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팬덤을 바탕으로 입소문이 나면 일반 관광객도 끌어들일 수 있다”면서 “또한 팬덤의 기부로 조성되는 거리나 길이 많은 만큼 지자체에서는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공간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경기 성남시는 대구의 관광 활성화를 이끈 김광석길을 벤치마킹해 2018년 가수 신해철의 연습실이 있던 성남이 수내동 160m 거리에 ‘신해철 거리’를 조성했다.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숨지기 전까지 머물렀다는 음악 작업실의 존재가 그의 이름이 붙은 거리를 조성한 계기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시기부터 일평균 방문객이 5명 이하에 그치고, 정자교 등 노후화한 분당구 도시 인프라 개선을 위해 예산이 필요해지면서 신해철 음악 작업실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성남시와 임대인 사이의 임대차 계약도 지난해 12월 31일로 끝났고, 지난 2월 23일 완전히 철거됐다.
A씨는 “단순히 연예인 이름을 가져다 쓴다고 모든 특성화 거리가 흥하는 것은 아니다. 연예인 이름의 거리를 즐기는 동시에,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또 다른 관광명소나 자연경관, 지역 특색이 묻어나는 식당 등 주변 관광 인프라가 마련돼 있어야 관광객들이 꾸준히 방문할 수 있다”면서 “연예인 이름만을 내세운 것은 반짝 특수에 그치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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