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엘르보이스] 선적하기, 횡단하기

엘르 조회수  

© tim-bogdanov

© tim-bogdanov

혀를 입천장에 살짝 닿는 정도로 말아 올리고, 목젖을 울린다는 생각으로 소리를 낸다. 아르르르흐. 어떤 언어에는 내가 낼 수 없는 소리가 있다. 건널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 그저 바라보면 되니까 마음이란 게 더욱 깨끗해지는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제1언어로 습득한 작가 다와다 요코는 제2언어로 습득한 독일어를 포함해 두 가지 언어로 온갖 글을 쓴다. 시와 소설, 희곡 그리고 나머지 모든 말…. 그는 언어의 이중국적자다. 일본인인 동시에 일본인이 아니다. 하지만 독일어로 글을 쓴다고 해서 독일인일까?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일본인은 그렇지 않은 일본인과 어떻게 다를까? 독일어로 쓰인 작품과 일본어로 쓰인 작품은 어떻게 다를까? 다와다 요코는 어떤 언어에 자신의 본령이 있다고 생각할까? 그런 건 애초에 없다고 생각할까? 그래서 두 언어를 쓰는 것일까? 나는 거의 모든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한 번 혹은 그 이상, 셀 수 없을 만큼 선적된 언어들. 저기서 태어나 이곳에서 정박하고, 머물다가 또 떠나고, 그 다음 정착지에서 또 한 번 더 정박. 멈출 때마다 다르게 되어야 하는 글자들. 그것을 이고 나르는, 옮기는, ‘글자를 옮기는 사람들’. 나는 본능적으로 이런 언어들에 끌린다. 원본을 알 수 없게끔 아마도 혹은 분명히 변형되었을 글. 그리고 그 사이를 횡단하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이. 생김새. 나는 번역이 가진 그 단독의 행위성이 좋다.
얼마 전 한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 번역돼 국내에 출간됐다. 이전에 다른 책을 읽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는 작가였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책은 달랐다. 말 그대로 정말, 다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사람의 영역이란 게 참 사방으로 뻗어 있는 거였지 하면서 새삼 재밌게 읽었다. 돌아보니 내가 포기할 뻔했던, 그러나 그러기엔 너무 멋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잡아 읽을 수 있게 된 데는 언제나 번역가의 존재가 있었다. 이후 거의 모든 책을 읽을 때마다 한 번쯤 멈춰 번역가의 이름을 확인한다. 그가 어떤 작품과 작가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다른 책을 번역했는지 훑어본다. 반갑다. 아는 이름이다. 어떨 땐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으려고 책의 끝으로 달려간다. 어쩐지 쓴 사람과 선적한 사람의 태가 조금 닮은 것 같다. 거의 항상 그렇다. 내가 모르는 언어와 우리가 아는 언어 사이를 횡단하며, 수만 개의 글자들을 선적했을, 배 안의 글자를 옮기는 사람들.

© greg-rosenke

© greg-rosenke

이번에는 책을 다 읽고 마침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번역가이기도 한 그분께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 이번 신간 너무 좋아요! 번역 짱!!!”이라는 조금 퇴화된 언어로…. 1차원의 세계에 있는 순수한 기쁨을 전달했다. 곧바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통화했다. 서로를 궁금해하고, 독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서로의 바쁨을 긍정적으로 견제하고, 언제 한번 보자는 전형적인 K대화의 마무리로 끝나는 그런 내용의 통화였지만 나는 참 좋았다. 이것은 글이 아니었다면, 글을 옮기는 사람과 그렇게 옮겨진 글을 다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말을 다듬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략 10포인트 정도 되는 줄글을 아직까지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조금 기뻐하면서 “선생님, 번역 많이 해주세요. 쉬지 마세요. 놀 생각 마세요!” 하면서 하하호호 웃었다. 상기된 목소리, 기쁨에 가득 찬 음성,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행복인 것 같았다.
‘나의 시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시집이 있구나, 그러면… 그러면 내 시집이, 나의 말들이 옮겨졌으면 좋겠다, 그 어느 곳이든 횡단하고 마음대로 선적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 이 꿈같은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난 정확히 모르고 그나마도 시집은 아주 가끔이지만, 그래도 오늘도 수십 권의 번역서가 출간되긴 할 것이다. 그중 기대하는 것은 2세대 한국계 미국인인 시인 캐시 박 홍의 시집이다. 마침 책 제목은 〈몸 번역하기 Translating Mo’um〉. 신체 수행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다루는 기구가 어떻게 변하든 간에, 글쓰기에는 언제나 행위성이 있다. 몸을 번역한다고. 그래, 그건 그냥 글을 쓰는 일 그리고 시를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다른 몸이 되어 다른 삶을 살게 된 내 말들, 나의 시집. 그것을 지대로 삼아 나 역시도 횡단하는 사람이 돼보고 싶다. 글자를 옮기는 사람에게 글자를 주고 싶다. 나눠지고 싶다.

언어는 머무르지 않는다. 영원히 떠다닌다. 항해하고 선적된다. 여행하며 옮겨진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를 횡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는 다른 말로는 절대 번역되지 않는 책도 있습니까?”
“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요.”
“번역본밖에 남아 있지 않은 책도 있나요? 옛날 책.”
“네, 원본이 사라져서 번역본만 남아 있는 책도 있습니다.”
“번역본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원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까?”
“그건 누구나 바로 알 수 있어요. 번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와 같거든요. 뭔가 후두둑 돌멩이가 떨어지는 느낌이 드니까 알 수 있어요.”
다와다 요코의 〈글자를 옮기는 사람〉(유라주 옮김)에서 인용

박참새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 〈시인들〉을 펴냈다.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시집 〈정신머리〉를 출간했다. 글자에 가둬지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엘르
content@www.newsbell.co.kr

댓글0

300

댓글0

[연예] 랭킹 뉴스

  • 감상평부터 법리 해석까지…'굿파트너' 작가 최유정 변호사가 본 '히든페이스'
  • 이현주 혀 절단 사고 사이비종교 우울증 알콜중독 그는 누구
  • ‘이혼 사유’ 직접 밝힌 배우 부부
  • 코미디언 성용, 21일 사망·향년 35세…"지나친 억측 삼가주시길"
  • 2PM 준케이X닉쿤X우영 방콕 팬콘 성료...풍성한 세트리스트
  • 위하준 "연애할 때만큼은 참지 않고 마음 표현…'직진남' 스타일"

[연예] 공감 뉴스

  • 원조 군통령, 인기 가수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 주말 극장서 뭘 볼까, 파격의 '히든페이스' VS 깊은 사랑 '캐롤'
  • 라이즈 소희, 생일에 '마마 어워즈' 출격 "많은 축하해주신 만큼 멋진 공연할 것"
  • 비투비, 'Be Alright' 콘셉트 포토 공개...설렘 가득 연말파티
  • 레드벨벳 아이린 솔로 데뷔 앨범 'Like A Flower' 기대 포인트
  • '마마 어워즈' 美 호스트 박보검 "LA 돌비시어터 개최…배우로서 벅찬 기분"

당신을 위한 인기글

  • 담백한 국물과 쫄깃한 살코기,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닭곰탕 맛집 BEST5
  • 푹- 끓여내어 야들야들한 건더기와 얼큰한 국물의 만남, 육개장 맛집 BEST5
  • 한식에 술만 있다면 무한으로 마실 수 있는 술꾼이 인정한 한식주점 5곳
  • 찬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지금, 딱 좋은 감자탕 맛집 BEST5
  • 주말 극장서 뭘 볼까, 파격의 ‘히든페이스’ VS 깊은 사랑 ‘캐롤’
  • 이혼 전문 변호사도 놀란 파격적 설정, ‘히든 페이스’
  • 웰메이드 서스펜스 ‘보통의 가족’ 이제 안방에서 본다
  • 설경구 “충격적 사제지간” ..손석구 “편안해 살쪘다”
//php echo do_shortcode('[yarpp]'); ?>

함께 보면 좋은 뉴스

  • 1
    이태원 참사 유족 “비겁한 언론인 되지 않도록 사명감 가져 주길”

    뉴스 

  • 2
    대표팀에서도 사고친 벤탄쿠르, A매치 출전 금지 징계는 끝…'우아한 축구' 우루과이 자찬

    스포츠 

  • 3
    '7연승 도전 막아냈다' 우리은행, 김단비 앞세워 연장 승부 끝 '신승'...BNK 썸, 개막 6연승 행진 마감

    스포츠 

  • 4
    ‘눈치 좀 그만봐’… 한국 축구 사령탑 홍명보, 이천수 주장에 단호히 반박했다

    스포츠 

  • 5
    대한항공, 한국전력 완파…선두 현대캐피탈과 승점 격차 해소

    스포츠 

[연예] 인기 뉴스

  • 감상평부터 법리 해석까지…'굿파트너' 작가 최유정 변호사가 본 '히든페이스'
  • 이현주 혀 절단 사고 사이비종교 우울증 알콜중독 그는 누구
  • ‘이혼 사유’ 직접 밝힌 배우 부부
  • 코미디언 성용, 21일 사망·향년 35세…"지나친 억측 삼가주시길"
  • 2PM 준케이X닉쿤X우영 방콕 팬콘 성료...풍성한 세트리스트
  • 위하준 "연애할 때만큼은 참지 않고 마음 표현…'직진남' 스타일"

지금 뜨는 뉴스

  • 1
    "저만 잘하면 될 거 같습니다" 선발 복귀하고 3연승, 그럼에도 한선수는 자책했다 왜 [MD인천]

    스포츠&nbsp

  • 2
    'KKKKKKKK' 타카하시 158km 괴력투+코조노 2홈런 7타점…'우승 후보' 日, 미국 9-1 완파 [프리미어12]

    스포츠&nbsp

  • 3
    “대통령의 오만을 언론의 무례로 둔갑시킨 尹정권”

    뉴스&nbsp

  • 4
    위메이드 석훈 PD "레전드 오브 이미르 시즌은 이렇게 다르다"

    차·테크&nbsp

  • 5
    EV9 사려다 “마음 바꿨다”… 무려 532km 주행 가능한 대형 전기 SUV

    차·테크&nbsp

[연예] 추천 뉴스

  • 원조 군통령, 인기 가수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 주말 극장서 뭘 볼까, 파격의 '히든페이스' VS 깊은 사랑 '캐롤'
  • 라이즈 소희, 생일에 '마마 어워즈' 출격 "많은 축하해주신 만큼 멋진 공연할 것"
  • 비투비, 'Be Alright' 콘셉트 포토 공개...설렘 가득 연말파티
  • 레드벨벳 아이린 솔로 데뷔 앨범 'Like A Flower' 기대 포인트
  • '마마 어워즈' 美 호스트 박보검 "LA 돌비시어터 개최…배우로서 벅찬 기분"

당신을 위한 인기글

  • 담백한 국물과 쫄깃한 살코기,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닭곰탕 맛집 BEST5
  • 푹- 끓여내어 야들야들한 건더기와 얼큰한 국물의 만남, 육개장 맛집 BEST5
  • 한식에 술만 있다면 무한으로 마실 수 있는 술꾼이 인정한 한식주점 5곳
  • 찬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지금, 딱 좋은 감자탕 맛집 BEST5
  • 주말 극장서 뭘 볼까, 파격의 ‘히든페이스’ VS 깊은 사랑 ‘캐롤’
  • 이혼 전문 변호사도 놀란 파격적 설정, ‘히든 페이스’
  • 웰메이드 서스펜스 ‘보통의 가족’ 이제 안방에서 본다
  • 설경구 “충격적 사제지간” ..손석구 “편안해 살쪘다”

추천 뉴스

  • 1
    이태원 참사 유족 “비겁한 언론인 되지 않도록 사명감 가져 주길”

    뉴스 

  • 2
    대표팀에서도 사고친 벤탄쿠르, A매치 출전 금지 징계는 끝…'우아한 축구' 우루과이 자찬

    스포츠 

  • 3
    '7연승 도전 막아냈다' 우리은행, 김단비 앞세워 연장 승부 끝 '신승'...BNK 썸, 개막 6연승 행진 마감

    스포츠 

  • 4
    ‘눈치 좀 그만봐’… 한국 축구 사령탑 홍명보, 이천수 주장에 단호히 반박했다

    스포츠 

  • 5
    대한항공, 한국전력 완파…선두 현대캐피탈과 승점 격차 해소

    스포츠 

지금 뜨는 뉴스

  • 1
    "저만 잘하면 될 거 같습니다" 선발 복귀하고 3연승, 그럼에도 한선수는 자책했다 왜 [MD인천]

    스포츠 

  • 2
    'KKKKKKKK' 타카하시 158km 괴력투+코조노 2홈런 7타점…'우승 후보' 日, 미국 9-1 완파 [프리미어12]

    스포츠 

  • 3
    “대통령의 오만을 언론의 무례로 둔갑시킨 尹정권”

    뉴스 

  • 4
    위메이드 석훈 PD "레전드 오브 이미르 시즌은 이렇게 다르다"

    차·테크 

  • 5
    EV9 사려다 “마음 바꿨다”… 무려 532km 주행 가능한 대형 전기 SUV

    차·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