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일요일 오후입니다. 그런데 혹시 앞에 약속이 있었나요? 너무 예쁘게 입고 왔는데요
아닙니다(웃음). 일어나서 자전거 좀 타다가 씻고 바로 왔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처음 뵙는 자리인데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신고 오기엔 좀 그래서요. 특별하게 꾸민 건 아니고 입던 대로 입었습니다.
8월 한여름에 자전거도 탔군요
촬영도 있겠다 부기도 뺄 겸 남산 소월길부터 한남동, 이태원동, 해방촌까지 크게 한 바퀴 돌았어요. 그럼 5~6km 정도 되거든요.
무더위 속에 차기작 촬영도 한창이죠? 〈사내맞선〉 박선호 연출의 〈취하는 로맨스〉에서 김세정 배우와 주연을 맡았어요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첫 주연이었던 〈밤에 피는 꽃〉은 이하늬 선배님이 정말 잘 이끌어주셨거든요. 이번에는 파트너이자 친구로서 합을 맞춰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보니 어떻게 하면 현장 분위기가 더 즐거울까, 어떻게 해야 감정이 더 풍부해 보일까 고민하게 돼요. 긍정적 의미의 부담감과 책임감이죠.
그런 고민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는
집에서 혼자 장면과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하지만…. 화면에 더 잘 나오고 싶어서 생전 안 하던 팩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괜찮은데요? 로맨틱 코미디는 남주 비주얼이 서사 그 자체가 되기도 하니까요(웃음)
클로즈업 신에서 예쁘게 나오면 좋겠다는 욕심이 납니다. 잦은 지방 촬영으로 하루에 잠을 두세 시간 자고 난 날이라도 말이죠.
배우로서 본인이 가진 외형적 장점은 또 뭐가 있는 것 같나요
〈밤에 피는 꽃〉 덕분인지 최근 ‘눈빛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줄 때 비로소 그게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덕분에 눈빛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어요. 쑥스럽지만.
〈밤에 피는 꽃〉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죠.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후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한층 진지해졌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그 마음은 어떻게 투영되고 있나요
이번 작품에 들어가기 전 난생처음으로 연기학원에서 테크니컬한 요소를 배웠어요. 스스로 가진 감각으로 해낼 수도 있지만,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여러 가지를 배우면 좋을 것 같아서요. 덕분에 이번 현장을 빨리 흡수하고, 촬영장에서 여유도 생긴 것 같아요.
노력파군요. 8월 초 방영을 시작한 〈나쁜 기억 지우개〉는 2022년 사전 제작을 마친 작품이에요. 그 시기의 나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 같습니다
세계선수권 1위의 테니스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연습을 했죠. 20대 마지막에 촬영한 작품이라서 ‘보송보송’한 얼굴을 잘 남겼구나 싶어 좋더라고요. 연기력도 우려했던 만큼 어색하지는 않아서 그때도 열심히 했구나 싶어요.
〈취하는 로맨스〉의 윤민주 또한 브루마스터라는 보기 드문 직업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친해지고 있나요
윤민주는 듬직한 ‘남주’라기보다 섬세하고, 감정적인 부분에서 많은 걸 상대방과 교류하는 일상적인 캐릭터거든요. 실제로 맥주 브루잉을 하는 형이 있어서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지식을 재미있게 습득해 가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주변에 ‘형’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작품으로 만난 형들과도 가까이 지내고요. 3형제 중 막내이기도 한데 형들이 지겹지는 않은지
저보다 앞서서 많은 걸 해봤고, 또 그 경험을 토대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동생이니까 때로는 제 약한 모습 또한 맘껏 보여줄 수 있고요. 한남동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카페 사장님 친구들이 지금까지 제일 자주 보는 친한 형들이 됐어요.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인, 광고, 사진, 음악 등 분야가 각기 다른데 서로 다른 관심사와 성향 속에서 굉장히 풍부하고 다양한 것을 체득하게 됐죠.
상경 후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재미있는 부분을 빠르게 흡수해 가는 20대 초반 이종원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전라도 순천과 구례에서 자랐죠.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포천에서도 살았고요. 그래도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서 자랄 때가 제일 좋았어요. 강에서 삼촌들과 물고기 잡고, 돌게를 잡아 돌게장 만들고, 도라지랑 쑥도 캐고, 할머니가 양갱도 만들어주시고…. 지금도 틈만 나면 강원도에 가는 게 어릴 때 그 느낌을 다시 받고 싶어서예요. 그냥 계곡물에 발 담그고 앉아 있다가 와도 좋아요. 자연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고 살짝 들르려고 해요.
흔적 없이 손님처럼 다녀오는군요
초록빛이 무성한 곳에 그냥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새소리도 좀 듣고, 물이 흘러가는 것도 느끼면서 나무랑 흙도 좀 만지고 풀 냄새도 맡고, 추우면 불 지펴서 따뜻하게 있기도 하고…. 직접 맨발로 딛고, 맨손으로 만져보고, 살결에 닿는 게 되게 좋거든요.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도 알지만 점점 모든 지역이 비슷해지고, 더 많은 사람이 도시에서 자라고 지내는 게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조금만 벗어나도 정말 평화롭고 풍부한 세계를 볼 수 있는데 말이죠.
음악과 영화, 패션을 좋아한 소년으로서 10대 시절 대도시를 향한 동경은 없었나요
생각해 보니까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패션 정보를 스크랩하는 걸 열심히 했어요. 그때는 〈멘즈 논노〉가 최고였으니까 여기에 내가 나오면 좋겠다, 유럽 도시에서 길거리 스냅으로 찍히면 좋겠다, 이런 상상은 해봤죠(웃음).
스물다섯 살에 연기를 시작했죠. 워낙 빠르게 진로를 정하는 요즘, 늦다면 늦은 나이이기도 합니다
아예 연기 수업이나 학원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감독님들도 ‘얜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싶었대요. 굳이 정식 루트를 따르지 않았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늦든 말든 일단 부딪혀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 전까지 보고, 듣고, 느끼며 쌓아둔 경험들이 또 길을 확장해 줄 수도 있으니까.
인스타그램에서 ‘나랑 오래오래 놀러 다닙시다’라는 문구와 함께 올린 어머니와 찍은 여행 사진을 봤어요. 여행 메이트로서 어머니는 어떤가요
성향이 잘 맞아요. 저희 두 사람의 공통점은 뭐든 개의치 않는다는 거예요. 계획이 틀어져도 상관치 않고, 서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하죠. 어머니가 북유럽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작품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2주 정도 오로라를 보고 오는 게 목표입니다. 열심히 일해야죠. 어머니 좋은 차 태워드리려면(웃음).
장거리 운전도 개의치 않는 듯하더군요
운전을 좋아해요. 차가 있으면 그 지역을 더 깊게 알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목적지까지 3000km라고 하면 큰 틀만 잡아두고 여기저기 들르면서 몇 날 며칠 걸려 가기도 해요. 그러다 할아버지가 하는 오래된 에스프레소 바나 구글 맵 리뷰 하나 없는 가게에서 커피를 마셔보기도 하고, 더 방대한 자연을 목격하게 되기도 하죠.
미국, 핀란드, 이탈리아 등 여행지에서 필름 사진을 많이 남겨왔죠. 한국의 자연 풍경을 담는다면
‘부처님 오신 날’ 즈음 오대산 월정사에 갔어요. 마침 스님들이 한 해 동안 수행했던 책을 태우고 깨끗하게 보내는 행사를 하고 계시더군요. 초상은 잘 찍지 않는데, 그 모습이 너무 좋더라고요. 종교는 없지만 가까이에서 절을 살펴보면 건축이나 양식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져요. 절 사진도, 스님이 잠시 놓고 간 목탁이나 물컵, 연등도 찍었습니다. 사진을 좋아하지만 아무 목적 없이 여유롭게 찍는, 취미 영역으로 남겨두고 있어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걸 보니 LP에도 진심이던데요. 쇼에 참석했던 생 로랑 애프터 파티에서 한국 뮤지션의 노래를 하나 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딱 하나 생각나는 게 있어요.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럼 오늘은 무슨 곡을 들으며 촬영을 시작해 볼까요
기타나 드럼 소리가 들리는 신나는 곡이면 좋겠어요. 롤링 스톤스의 ‘She’s a rainbow’로 시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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