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라는 사람의 삶. 그건 어쩌면 가로등 드문 밤 우연히 들어선 길을 걷는 일과도 비슷했을 테다. 그는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총구를 겨누는 모습에 반해 총을 잡은 중학생이었다. 재능은 불빛이 되어 내딛는 발걸음을 비췄지만 앞이 환히 보일 만큼 밝은 건 아니었다. 가끔은 빛이 아예 사라질 적도 있었다. 이미 길에 들어서버린 소녀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될 때까지 20년을 그저 걸었다. 그리고 2024년 여름, 가장 뜨겁고 찬란한 빛이 기어코 머리 위로 쏟아졌다.
“역시 제게는 사격할 때가 가장 저 다울 수 있고,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예요. 마음가짐도 다른 경기 때와 다르지 않았고요.” 막 경찰청장기 전국사격대회를 마치고 온 소감을 묻자 김예지는 큰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말했다. 드라마틱했던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돌아온 후에도 김예지의 걸음은 계속됐다. 이번 대회는 10m 공기권총과 25m 권총 개인전을 각각 2위로 마무리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는 큰 경기를 치르고 왔는데도 그의 말씨에는 흥분이며 조급함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기량을 펼친 종목들을 담담히 설명할 뿐이었다. “10m 공기권총은 25m 권총보다 좀 더 세밀한 종목이에요. 보다 섬세하게 조준하고 격발해야 하거든요. 감각이 예민하게 작용한달까요? 반면 25m 권총은 과감할 필요가 있어요. 또 빨라야 하고요. 거리 차이 뿐만 아니라, 아예 사격 스타일이 다르죠.”
‘올림픽 스타’라는 수식은 4년에 한 번씩 메달처럼 주어지곤 한다. 일생의 영광일 수도, 뗄 수 없는 꼬리표일 수도 있겠지만 올해 그 타이틀의 주인공이 김예지라는 건 분명하다. 그럼 대체 왜 우리는 20년 동안 김예지를 몰랐던 걸까? 일론 머스크의 ‘샤라웃’이 그를 향한 전 세계의 주목을 증폭했을 지언정, 김예지는 늘 같은 곳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문득 올림픽 이전의 김예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한 달 내내 질리도록 들었을 똑같은 질문 말고, 항상 총을 놓지 않았던 김예지가 인터뷰 기회를 얻었을 때 듣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느냐고. 답은 명료했다. “그 때의 김예지는 인터뷰를 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에겐 적지 않은 방황의 시간이 있었고, 당시 스스로를 바라보는 기준이 확고해진 탓이었다.
전주에서 임실까지 40km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체력을 기르고, 그러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마스크를 피로 적시고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던 근성은 그 확고함에서 나왔다. 실업팀에서 처음 사격으로 돈을 벌게 되며 겪은 부담감이 슬럼프로 이어졌을 때도 그랬다. 결국 소속 팀을 그만 두고도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개인적으로 대회 출전을 했다. 삶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의 나침반은 늘 사격을 향해 있었다. “사격 말고 다른 길도 생각은 했지만, 그저 막연하게 ‘생각만’ 한 거죠. 사격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었거든요.”
짝사랑 비슷한 ‘미련’의 허함은 연습량으로 메웠다. 함께 올림픽에 출전한 양지인이 김예지와 똑같은 연습을 소화하다가 몸살이 났다고 할 정도의 양이다. 이 정도의 단단한 루틴이라면, 다른 스케줄을 소화할 때 부담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불안하지 않아요. 제가 여태까지 해 온 것이 있기 때문에. 또 평소보다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조용한 공간과 조금의 시간이 있다면 연습을 하곤 해요.”
연습이라는 노력은 김예지에게 결과를 선물했다. 남보다 조금 더 하니 국가대표가 됐고, 그보다 조금 더 하니 올림픽 은메달을 땄다. ‘보답하는 노력’을 증명한, 성장 캐릭터의 정석이다. 그런 김예지에게도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었을까. “노력에 끝이란 게 있을까 싶어요. 될 때까지 하는 거죠. 사실 사격을 할 때도, 쏜 다음 매번 후회가 돼요. 만족할 만한, 완벽한 격발은 60발 중에 10발이 나올까 말까에요. 후회를 하되, 바로 다음 격발을 준비하는 거죠.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고, 전 다음 발을 쏴야 하니까요.”
모두가 김예지를 ‘쿨하다’고 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그가 줄곧 자신을 향해 되뇌이는 ‘다음’이 있다. 정작 본인은 “대체 쿨한 게 뭔지 모르겠다”라며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순간도, 올림픽 본선에서 찰나의 실수로 탈락한 순간도 그의 얼굴이 초연했던 건 다음을 생각한 덕이다. 특히 금메달까지 예상했던 세계 무대에서의 좌절 앞에서 “0점을 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후회를 삼켰던 그는 ‘말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요. 반대로 부정적인 말을 하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말로 제 자신을 달래는 거예요. 안 좋은 일일수록, ‘다음은 있다’는 마음으로요.” 그래서 김예지는 탈락의 고통을 너털웃음으로 승화했지만, 그 인터뷰를 두고 ‘가볍다’고 질책하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도 쏟아졌다. 일일이 진심을 담아 답장을 하자 질책은 사과와 응원으로 바뀌었다. 김예지가 찾아낸 ‘말의 힘’이었다.
언젠가는 더 이상 다음을 그리지 않는 날도 올 테지만 김예지에게 그런 ‘끝’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너무 먼 미래는 바라보지 않아요. 당장 눈 앞의 미래도 모르는데, 그렇게 먼 곳까지 알려고 한다면 지칠 것 같아서요. 지금 제 앞에 목표들이 있고, 그것들을 향해 노력해서 달려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요? 저는 꿈을 계단식으로 잡아요. 현재 제 꿈은 월드컵 파이널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고, 그 다음 목표는 세계선수권, 그 다음 목표는 아시안게임, 그리고 또 올림픽이죠.”
그는 앞으로 어떤 메달을 따더라도 파리 올림픽의 은메달이 가장 값질 것이라고 했다. 첫 올림픽에서 얻은 건 성적과 유명세 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은 저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줬어요. 일단 0점을 쏘고 나서,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와 훈련 과정을 바꿨죠. 이런 시행착오에서도, 대표팀 동생들에게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준비 기간부터 대회를 치른 순간까지 모든 것이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김예지를 비롯한 사격 국가대표팀이 올림픽에서 보여준 모습은 국민들을 전국의 사격장으로 불러모았다. 선수들처럼 멋진 포즈로 총을 쏴 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는 ‘김예지 키즈’도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취미이든 직업이든 자신을 보고 총을 잡으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러자 김예지에게서는 마음가짐 이야기부터 나왔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취미로 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을 믿지 못하면 조준선을 제대로 볼 수 없어요. 체력적인 부분을 보면, 사격은 코어와 팔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 아령을 들고 1분 정도 버티는 훈련부터 해야 겠죠.”
무섭도록 ‘넥스트 레벨’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김예지가 총을 내려 놓았을 땐 어떨까. 사실 그는 정말로 사격 이외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른다.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 보기 드문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김예지에게 작은 즐거움이 있다면, 그건 영화다. 영화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김예지가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소지섭과 손예진 주연을 맡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리메이크된 한국판을 먼저 보고 나서 일본 원작도 찾아보고, 여러 번 다시 감상할 만큼 좋아하는 영화다. “극 중에서 비가 올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등장인물들이 서서히 가족의 정을 느끼게 되는 부분도 찡했죠. 최근에는 훈련 때문에 많이 못 봤지만 공포물도 좋아하고 액션도 좋아해요. 아, 드라마는 피하려고 해요. 다음 내용이 기다려져서 훈련에 지장이 오거든요(웃음). 완결된 다음에 몰아 보는 것도 안돼요.”
그와의 이야기에서 ‘다음’ 만큼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부끄러움’이다. 정확히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김예지가 내린 ‘부끄러움’, 혹은 ‘부끄럽지 않음’의 정의는 뭘까. “미래에 제가 스스로를 봤을 때 당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 잘 살았다’고 자평할 수 있게요.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그냥 김예지’의 행복이요? 지금도 행복한 걸요. 행복이란 별 게 아닌 것 같아요. 힘들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웃을 수만 있으면 그게 제겐 행복이에요. 그 행복은 제가 만들어 가는 것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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