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임세미가 영화 ‘딸에 대하여’(감독 이미랑)로 관객 앞에 섰다. 국내 주요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돼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은 데 이어, 정식 개봉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는 임세미는 “소중하게 잘 지켜내고 싶은 작품”이라며 영화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임세미가 열연한 ‘딸에 대하여’는 딸(임세미 분)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하윤경 분)과 함께 살게 된 나(오민애 분), 완전한 이해 대신 최선의 이해로 나아가는 세 여성의 성장 드라마다.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작이자,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돼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내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상, 올해의 배우상(오민애) 수상을 시작으로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CGK촬영상(김지룡)과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지난 4일 개봉 후 CGV 골든 에그 지수 94%, 개봉 6일 만에 1만 관객 달성 등 호평 속에 순항 중이다.
극 중 임세미는 그린을 연기했다. 그린은 매사 솔직하고 주관이 뚜렷한 성격의 인물로, 시간 강사로 일하며 보다 안정적인 자리와 경제력을 원하는 대신 늘 함께 일하는 동료를 먼저 생각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부당 해고를 당한 동료를 위해 시위에 앞장서기도 한다.
임세미는 세상의 선입견과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순응하는 대신, 투쟁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그린의 단단한 면모부터 연인과의 사랑스러운 모습,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아이인 딸의 얼굴까지 폭넓게 소화하는 것은 물론,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깊은 공감을 선사해 호평을 얻고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임세미는 개봉 소감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딸에 대하여’와 함께한 순간을 돌아봤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난 데 이어 개봉까지 하게 됐다. 소회는.
“설레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영화를 소중해하는 만큼 많이 아끼고 봐줬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찍을 때도 너무나 많은 질문을 던져준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영화제를 다니면서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내가 나오지 않는 다른 신들이 가시처럼 날아오는 상황도 있었다. 아낌없이 계속 봐야 하는 작품이구나 싶었다. 우리가 이런 마음들을 느끼는데 관객들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소중하게 잘 지켜내고 싶은 영화였다.”
-원작도 읽었나. 어떤 매력, 힘이 있는 작품이었나.
“시나리오와 원작을 동시에 읽었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그 페이지마다 접었더니 책 두께가 두 배가 될 정도로 정말 좋은 책이었다. 시나리오도 거기에 못지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영화화했을까 느꼈다. 대사가 없는 침묵 속에서 그 문장들이 돌아다니더라. 굉장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딸의 짝꿍, 늙음에 대한 이야기, 홀로 서는 것에 대한 이야기, 여성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의 시선이 닿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작품이다.”
-그린은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이미랑 감독은 신념을 지키고 살아가는 그린과 임세미가 닮았다고 했다.
“그린은 투쟁을 하고 할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질타받을 일이 아닌데 왜 남들에게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전세금을 탕진해 가면서까지도 옳다, 틀렸다고 말해야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영화 안에서 같이 놀고 싶었고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이 소설과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 작품에 내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잘 어울린다고 감사하게 말해줬다. 남들이 말하지 않고 불편해하는 것들을 실천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린을 더 대단하게 본 순간이 많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나아지려고 하고 있고 매일매일 한 걸음씩 더 해보려고 한다.”
-‘엄마 같은 사람들이 막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라는 대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
“인생관에 대해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 대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나는 어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기한 건데도 그 대사를 보면 어딘가가 콱 막혀서 울컥한다. 난 뭘 하고 있을까, 저 말을 듣는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어려울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더 나은 인간이라는 건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입장, 관점일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삶이 인간뿐 아니라 동물, 자연까지도 바라보고 싶어서 노력하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간 중심적인 삶, 그 인간 중심이라는 것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대사, 장면이었다.”
-레인 역의 하윤경과 호흡은 어땠나.
“나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연기하는 찰나의 순간에 상대에게 집중하려고 하고 내가 가진 상상과 판단으로 연기하기보다 일어나는 충동들을 그 순간에 대입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만난 레인은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었다. 알록달록하고 히피스러운 옷이 잘 어울렸고 목소리가 힘 있고 다정했다. 레인과 그린은 7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굉장히 끈끈한 관계였다. 그 지점이 우리에게 잘 보일까 고민하고 대화를 많이 했다. 정말 단단해 보이길 바랐다. 하윤경이 정말 편안하게 대해줬다. 촬영 당시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방영했는데 정말 ‘봄날의 햇살’ 같았다.”
-그린과 이 작품이 배우 개인의 삶이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친 게 있다면.
“비건의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시야가 넓어졌다. 말하지 못하는 동물, 말하지 않는 자연이 하는 말을 인간이 들어야 하는구나 관심이 많았다. 장애에 대한 관심, 꿈에 대한 관심,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 어른들 싸움에 굶어 죽고 있는 누군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딸에 대하여’와 그린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들이 더 많이 들어왔고 가치관을 더 명확히 해줬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왜 멈추면 안되는지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더 나아가서 어떻게 듣는 사람이 돼야 할까,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어야할까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참 고마운 작품이다.”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관객이 작품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작품이 될 수 없고 영화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거든. 관객이 보고 나면 감상이 남아서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나면서 진심으로 이 작품을 사랑해 준다는 걸 느꼈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관객을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 작품이 정말 좋은 영화구나 느꼈다. 더 많은 이들이 봐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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