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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녀에게’ 감독은 왜 ‘장애 아이 엄마’의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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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개봉하는 영화 ‘그녀에게’의 한 장면.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극화해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제공=애즈필름 

경험해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인생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관심과 공감만으로 상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상대의 삶에 관심을 두는 마음, 바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첫걸음이 아닐까. 영화 ‘그녀에게’가 관객에 내미는 손길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다.

11일 개봉하는 ‘그녀에게'(제작 애즈필름)는 어렵게 낳은 쌍둥이 남매의 동생이 발달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낯선 삶을 시작하게 된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 상연(김재화)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신문사에서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성공한 미래를 계획하던 상연은 더디게 자라는 줄 알았던 둘째 지우가 지폐성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휴직을 하고 온전히 아이에 집중하는 그는 점차 섬에 갇힌 듯 고립감을 느끼지만, 주저앉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편견에 맞선다.

‘그녀에게’는 이상철 감독이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한 한권의 책에서 출발했다. 발달 장애를 지닌 성인 아들과 노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던 때 관련 서적을 찾다가 10년 넘도록 장애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 작가의 경험을 녹인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을 접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감독은 구상하던 이야기를 일단 미루고, 류 작가의 이야기부터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작가 역시 큰 고민 없이 감독의 영화화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상철 감독은 2012년 장편 연출 데뷔작 ‘밍크코트’에서 존엄사를 다뤄 주목받았다. 이후 2019년 미술계의 허상을 고발하는 블랙코미디 ‘속물들’로 연출을 이었고, 이번 ‘그녀에게’까지 현실과 밀접한 세계를 다루면서도 미처 주목하지 않은 이면을 아우르는 작품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 감독의 시선은 ‘그녀에게’를 통해 빛을 발한다.

개봉을 이틀 앞두고 이상철 감독과 영화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신아가 감독을 만났다. 이들은 ‘밍크코트’와 ‘속물들’을 공동 연출한 동료로, 이번 ‘그녀에게’는 시나리오를 같이 집필한 뒤 감독과 프로듀서로 역할을 각각 나눠 맡았다. 인터뷰는 기획부터 연출을 도맡은 이상철 감독의 이야기에 주로 맞췄다. 

“류승연 작가의 원작 에세이를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였어요.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 어떤 영화를 해야하나 고민하던 때에 책을 읽었는데 큰 용기와 위안을 얻었어요. 그때 제가 준비하던 장애인 영화처럼 판타지의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구나 싶었죠. 이건(원작) 진짜 현실의 이야기였어요. 장애 아이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그걸 잘 몰랐던 저에게 큰 위로를 줬어요.”

‘그녀에게’를 연출한 이상철 감독. “엄마 상연의 시선”을 지키면서 그녀의 여정에 집중했다. 사진제공=애즈필름 

● 엄마 상연의 여정에 집중 

서사와 캐릭터가 풍부한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지금도 꾸준히 이뤄지지만, 작가 개인의 삶을 녹인 에세이를 영화화하는 작업은 드물다. 그만큼 경험담 위주의 에피소드를 극화하는 과정에는 더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명세 감독의 연출한 ‘M’의 조감독부터 여러 상업영화의 스토리보드 작가로도 활동한 이상철 감독은 그간 연출한 작품들처럼 이번에도 1년 넘는 시간을 각본 작업에 몰두했다.

중심은 ‘엄마의 시선’을 유지하는 방향이었다. 그동안 장애 아동을 다룬 영화들은 꾸준히 나왔지만 대부분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표현하거나, 한계를 딛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쪽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이상철 감독은 처음엔 고통스럽지만 결국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에 맞서 가는 엄마 상연의 여정에 집중했다. 원작자인 류승연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책에 담지 않았던 좀 더 내밀한 상황의 이야기들을 모았고, 그 사이에 조금씩 허구의 이야기도 가미했다. 류 작가는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해 영화 속 이야기를 ‘진짜’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장애 가족이 처한 어려운 상황들에 대한 묘사가 필요한데 영화에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수위로 넣을지 고민했어요. 제 선택은 ‘최소한’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선으로 관객에게 보여주자, 지우가 장애 판정을 받은 이후 상황, 그 이후 상연의 모습과 마음에 더 집중했어요.”

상연은 아들이 장애 판정을 받자 오래전 알고 지낸 대학 선배에게 무작정 전화를 건다. 그 역시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선배는 목소리가 한없이 떨리는 상연에게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런 뒤에 주민센터에 가서 복지카드부터 만들라고, 당장 필요한 지극히 현실적인 정보들을 나눠준다. 

영화에는 상연에게 도움을 주는 선배, 함께 장애인 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 지우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들, 그리고 상연이 쌓인 분노를 표출하는 고교 동창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캐릭터가 실재 작가 주변의 인물들”이라며 “작가가 맺은 관계와 경험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했다.

덕분인지, 상연과 지우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은 출연 분량은 많지 않은 데도 장애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가족을 둘러싼 세상의 시선을 대변한다. 사회 시스템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부터 공교육의 테두리에서 벌어지는 암묵적인 배타, 심지어 가족인 딸과 친정 엄마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다.

김재화는 야심찬 정치부 기자였다가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주인공 상연 역을 맡았다. 사진제공=애즈필름 

● ‘그녀에게’의 발견, 배우 김재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제작 예산이 크지 않은 작품인 ‘그녀에게’는 주연 배우를 캐스팅하기까지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냈다. 감독은 처음부터 배우 김재화를 상연 역으로 캐스팅하고 싶었다. 다양한 장르에서 다채로운 역할을 넘나드는 그의 실력을 굳게 믿고 있어서다.

특히 김재화가 2018년 출연한 단편영화 ‘다운’에서 보여준 모습은 감독의 신뢰를 더욱 높였다. 늦은 나이에 임신한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접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감독의 의지만으로 배우의 출연을 장담할 순 없는 일. ‘그녀에게’가 프리 프로덕션을 마치고 크랭크인 시기를 정할 무렵 김재화는 영화 ‘밀수’ 촬영과 독립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을 막 마친 상태였고, 동시에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클리닝업’ 등 주연으로도 분주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감독은 “상연을 캐스팅한다면 김재화 배우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쁘게 활동하는 걸 보니 가능할까 싶었다”며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는 전달했다”고 했다. 크랭크인을 두달 앞둔 때였다.

결과적으로 김재화 캐스팅은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감독은 마음을 졸였다. 김재화는 ‘그녀에게’ 시나리오를 받을 무렵 지독한 번아웃 상태를 겪으면서 당분간 연기 활동을 멈추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긴 휴식이 필요해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런 굳은 결심을 돌린 건 ‘그녀에게’의 시나리오였다. 김재화는 “자신을 반성하게 만든 작품”이라며 작품으로 향했다. 영화의 이야기를 접한 김재화의 친정 어머니까지 영화 출연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사실 저의 시나리오에는 빈공간이 많아요. 그 틈을 김재화 배우가 모두 채워줬습니다. 육아 경험이 있는 배우가 상연을 연기길 바랐는데 김재화 배우도 실제 아들 둘을 키우고 있어요. 그 뿐 아니라 상연의 삶은 드라마틱하잖아요. 일에 대한 야망이나 자신감도 커요. 그러다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고 10년 동안 힘겨운 삶을 살아가죠. 그 과정을 딛고 다시 후배의 전화를 받는 상연은 ‘인생이 끝난 게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선배의 역할까지 해요. 스펙트럼이 넓은 두 얼굴을 모두 감당하는 배우로 김재화 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이상철 감독과 신아가 감독은 영화 속 김재화의 모습에 대해 “기대한 것보다 200% 이상을 해줬다”고 반겼다. 실제로 지난해 영화가 처음 공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 작품에 녹아든 김재화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진다영화 말미 김재화의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그녀에게”라는 말에 가슴은 요동친다.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역할을 맡아 배우이자 엄마의 마음을 아낌없이 쏟아낸 그의 분투를 보고 있으면, 올해 연말 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하나는 꼭 받았으면 하는 ‘사심’까지 생긴다.  

“제작 과정을 통틀어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크랭크인을 한달 앞두고도 상연 역을 확정하지 못했을 때에요. 영진위 등에서 제작 지원을 받아 시작한 작품인데 촬영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기였어요. 오디션으로 배우들을 찾고 있었는데 그 때 김재화 배우가 결정을 해줬죠. 김재화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작품이 나왔을지 상상이 가지 않아요.” (이상철)

“처음 이상철 감독이 ‘그녀에게’를 만든다고 했을 땐 많이 힘들테니 하지 말라고 말렸어요. 장애 아이를 다룬 영화가 그동안 있었고, 어떤 차별화를 갖는지가 중요했죠. 보는 게 힘들 수 있다고도 판단했고요. 그런데 지우는 쌍둥이 남매에요. 누나는 비장애인이고요. 그런 부분에서 좀 더 다른 영화로 관객에 닿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신아가)

‘그녀에게’를 연출한 이상철 감독(오른쪽)과 프로듀서로 참여한 신아가 감독. 사진제공=애즈필름 

● “발달 장애에 관심 두지 않았던 이들이 봐 준다면…”

상연만큼이나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은 아들 지우다. 누나와 다니는 키즈카페에서도, 부모와 찾은 마트에서도, 초등학교 친구들과 떠난 소풍에서도, 지우는 발달 장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상의 날선 시선에 노출된다. 다만 그 편견에 부딪히는 사람은 지우가 아닌 엄마 상연. 그의 분투를 보고 있으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발달 장애 아이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난다.  

지우 역할은 7세 아역 배우 빈주원이 맡았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그는 오디션을 통해 지우 역할에 발탁됐다. 오디션 과정에서도 감독은 ‘발달 장애 아이의 영화’에 갖는 편견을 목도했다. 영화의 주인공을 뽑는다는 공고에 많은 아역 연기자가 지원했지만, 정작 작품의 소재와 역할을 접하고 대다수의 부모들이 뜻을 접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할 때 원칙이 있었어요. 발달 장애 아동을 최대한 보여주지 않는 방향을 원했어요. 기존의 장애인 관련 작품들이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장애인 캐릭터를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여주기도 하잖아요. 그걸로 연기력을 평가하기도 해요. 우리 영화는 장애를 지닌 아이의 이야기인 만큼 관객에 구경거리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때문에 감독은 지우 역의 빈주원에게 따로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지 않고, 대신 두달 정도를 함께 보내면서 서로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겹고 고된 시간이지만,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만큼은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 이상철 감독과 신아가 감독의 마음도 같다.

“개봉을 준비하면서 발달 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들의 반응을 접하고 있어요. 이런 영화를 통해 발달 장애 가족이라는 걸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긍정적인 기회가 돼 준다는 의견을 접하고 있어요. 반면 가슴이 아파서 보기가 어렵겠다는 의견도 있고요.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발달 장애에 대해 미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들이 많이 봐 주면 좋겠습니다.”

이상철 감독과 신아가 감독은 ‘그녀에게’를 넘어 새로운 협업도 준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를 처음 만든 박두성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훈맹정음’이다. 마침 2026년은 박두성 선생이 점자에 이름 붙인 훈맹정음을 창안해 반포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두 감독은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의 상상을 더해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맥스무비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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