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감사합니다’ 양재승 상무 역 배우 백현진
참신하고 대담한 연기, 개성적 표현 ‘카라바조’ 닮은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더불어 이탈리아 3대 천재 화가로 불리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드라마 ‘감사합니다’의 JU건설 양재승 상무를 연기하는 배우 백현진의 연기에서 카라바조가 연상됐다.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지만 흔히 출신지인 카라바조로 불리는 이 화가는 성경과 신화 속 장면, 인물과 정물의 어떤 순간이나 면모를 생생하게 포착, 대담하고 강렬하게 표현함으로써 익숙한 이야기와 풍경을 참신하게 느끼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의 인기작 ‘메두사’나 ‘도마뱀에 물린 소년’만 봐도 인물의 감정과 심리가 표정과 근육에 고스란히 실려 있어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마치 도마뱀에 물리면 그런 표정을 지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문을 얘기하던 두 제자가 길에서 만난 낯선 이와 함께 엠마우스 마을로 와서 저녁을 먹으려는 때, 식전 감사 기도를 드리기 위해 낯선 이가 오른손을 들자 그가 부활한 예수임을 두 제자가 알아채고 깜짝 놀라는 순간은 여러 화가가 그렸는데. 카라바조의 ‘엠마우스에서의 저녁식사’에는 글로바로 추정되는 제자가 두 팔을 벌려 놀라는 감정에 비례하는 깨달음의 깊이와 경이로움이 생생히 표현돼 있다.
후일 렘브란트나 루벤스 등 바로크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빛과 그림자의 극렬한 대비를 이끈 선구자답게 명암의 대조 속에서 예수의 부활은 더욱 선명하다. 정말이지 꼭 그러한 모습으로 부활을 알렸을 것만 같은, 카라바조가 완성한 그림 속에서 예수의 부활이 증거되는 느낌이랄까.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리는 순간의 메두사 표정인지 머리카락 대신 뱀들이 뒤엉킨 메두사를 보고 너무 무서워 돌이 되어 버리기 직전의 인간 표정인지 그 둘 다인지 헷갈리나, 카라바조가 그린 메두사의 표정은 공포와 경악의 ‘정석’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놀라야 진짜 공포와 경악 같고 다른 표정을 지으면 공포나 경악의 농도가 부족하거나 다른 감정인 것으로 여기게 할 정도다.
멀리 돌아왔으나 간단히 얘기하면, 진짜가 무엇인지와 별도로 진짜보다 진짜 같게 느끼게 하는, 리얼(real)로 인식하게 하는 표현법이 있다. 어떤 이는 사진과도 같이 극사실주의로, 어떤 이는 주요 특징을 잡아 극대화하여 극적으로 표현해 박진감(진짜에 가까운 느낌)을 추구한다.
배우 백현진은 실재를 사진 찍듯 모사하지도 않고 행동과 감정으로 극적으로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의 표현은 마치 카라바조처럼 참신하고 대담하다. 강렬한 명암의 대비처럼 연기 개성이 뚜렷하고, 다른 어떤 배우에게서도 본 적 없는 말투와 몸짓으로 눈길을 끈다.
익숙지 않은 표현법과 생경한 억양은 자칫 작품이나 다른 배우의 연기와 융화되지 못하고 이질적으로 도드라질 수 있고, 그것은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백현진의 표현법은 지속성과 완성도 측면에서 내적 타당도가 커서 ‘발연기’로 보이지 않고 그만의 개성적 연기로 다가온다. 게다가 글로 보기보다는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배우 개인의 귀엽고도 발랄한 매력이 개성적 표현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다.
배우 백현진의 연기를 보노라면, ‘어쩜 그리 디테일을 챙겨 맛있게 연기하나’ 싶은 놀라움을 지나… 남다른 음색과 감정 표현이 인물을 더욱 생생하게 하고 작품의 재미를 키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형성을 벗어난 백현진의 연기는 이상하거나 특이한 표현법인 게 아니고 ‘세상에 진짜 있을 것 같은 인물’을 만드는 제조법임을 깨닫는다.
그 좋은 연기를 이런 졸필로 표현해 보려니 부끄럽기 그지없는데. 드라마 ‘감사합니다’(연출 권영일·주상규, 극본 최민호·김영갑·김미현, 제작 스튜디오드래곤·필콘스튜디오)에서 양재승 상무는 자신이 모시는 부사장 황대웅(진구 분)의 오른팔을 자처하며 발군의 아부와 순수한 충직을 동시에 수행한다. 단순히 성공을 위해 ‘황대웅 라인’에 서서 정치적으로 감언이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아부와 충성을 끝없이 다짐하고 실행한다.
백현진은 양재승의 순수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본에 있든 없든 황대웅만 보면 멀리서부터 허리를 접어 인사하며 다가서고 대사 없이 물러날 때도 허리를 깊숙이 숙여 퇴장한다. 양재승을 연기하는 배우 백현진이 아니라 양재승이 되어 단 1초도 놓치지 않고 양재승으로 숨 쉰다. 덕분에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든 직장생활의 고충을 공감하게 하는 ‘의미’, 구멍 숭숭 허술하긴 해도 마음만은 진심인 양재승이 믿는 황대웅이라면 나도 믿어보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 서사 내 설득력 ‘기능’,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재주로 극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다.
배우 자신의 개성을 지키면서 맡겨진 역할과 기능은 충실히 해내는 것은 기본. 언제 또 ‘우리 양재승 상무’가 나오나 기다리게 만드는 백현진 파워. 이토록 흡족한 연기를 보면 마치 배우에게 빚진 느낌이 든다. 빚을 갚는 방법은 차기작 등 그의 행보를 찾아보고 기억해 함께하는 것.
오! 오는 11월 17일까지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개인전 ‘담담함안담담함 라운지’가 열린다. 지난 8월 말 발표한 심플렉스 시리즈 네 번째 앨범 ‘심플렉스: 담담함안담담한 라운지’에 수록된 11곡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음악가이자 화가인 백현진이 소리 자체를 탐구한 연주, 음악이 회화로 표현된 작품, 배우 백현진의 연기 세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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