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째 주 중 사흘은 혹독했다. 인터뷰하러 남양주 산골과 고양시를 오갔고, 취재차 강남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가산디지털단지도 갔다.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쏘다녔다. 공교롭게도 8월 그 주 주말부터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하필 첫 필라테스를 하는 날 저녁에는 요가지도사가 된 친구의 첫 수업도 예정돼 있었다. 몇 년 만에 운동을 재개했는데, 하루에 두 탕이라니. 그 와중에 부지런히 친구들도 만났다. 그야말로 ‘무리’였다.
8월 2주 차 수요일 저녁. 운동 후유증인지 근육이 욱신거렸다. 종아리 근육통이 심각해 파열된 줄 알았다. 힘 빠진 몸은 축 처졌다. 다음날 아침,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근육의 고통 강도가 최대치를 찍었고, 두통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요즘 재유행인 코로나19와 독감 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었고 결론은 그냥 몸살. 지난 5년간 코로나19에 감염된 적 없던 터라 나는 증상을 잘 몰랐다. 수액을 맞고 근육통은 사라졌지만, 사흘 차부터 인후통이 시작된 것. 마감 기한과 인후통이 맞물릴 것 같은 불안에 또 3만 원짜리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음성. 그리고 그날 저녁, 후각과 미각을 상실했다.
내가 좋아하는 ‘패티스앤베지스’ 햄버거를 사 먹었지만 맛은커녕 냄새도 못 맡고, 그냥 햄버거 질감만 느끼며 배를 채운 사람이 됐다. 아침에 뿌린 향수는 뿌려진 건지 만 건지 모를 일이었고, 양치질을 해도 청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의 부재는 생각보다 대형 사고였다. 눈을 질끈 감았을 때 느껴지는 어둠만큼 답답했고, 극단적으로는 내 존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하늘의 아름다움에 젖어 감성 사진을 찍고, 바닷가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에 집중하고, 맛있는 음식 한 입에도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늘 인색했다. ‘뭐가 저렇게 대단하다고 일상에서 쉽게 감동받고 감성에 젖는 걸까?’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성향이 아니고, 비교적 무뚝뚝한 편에 가깝다. 극도로 자극적인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변화에만 약간 반응하는 정도. 이를테면 출장 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라이즈가 옆자리에 앉은 상황 정도는 되어야 반응하는. 잔잔한 일상에서 감각하는 것들은 그저 평범한 것으로 취급해 왔다. 이것이 후각과 미각을 잃고 돌아본 나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원고 마감 하루 전, 출근하는 차 안에서 갑자기 후각이 느껴졌다. 예고도 없이 4일 만에 갑자기! 모닝커피를 쪽 들이켰다. 커피 한 모금에 너무나 다채로운 풍미가 느껴졌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문득 일상의 것을 오감으로 느끼고, 만족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유난인 게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삶을 만끽한 거였고,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감을 활용해 스스로 만족을 느끼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졌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나는 고민과 불안, 상상, 정보 등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떠드느라 정작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움을 외면했다는 걸 깨닫게 된 것. 틈만 나면 유영했던 쇼츠, 릴스도 무딘 감각에 한몫했을 터. 신이 준 선물, 오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살아온 몇 년의 세월에 머리가 ‘댕’ 울렸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봤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 공기와 햇빛,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도로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초콜릿 한 입의 달콤함에 집중했다. 이 모든 게 그저 소중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감각해야 실제 세상이 비로소 보인다.
중요한 깨달음은 일상에서 불현듯 찾아온다. 인간은 행복한 삶을 좇으며 살아간다. 어젯밤에 야근을 했어도 오늘 아침에 들이켜는 커피 한 모금은 맛있다. 그 덕에 사는 것 아닌가? 행복을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를 간과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아침 마주한 햇빛은 얼마나 뜨거웠나? 오늘 감각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정소진
」
〈엘르〉 피처 막내 에디터. 다양한 또래 여성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며 바쁜 일상에서도 재미난 사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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