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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말을 가르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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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한 달만 가능해요.”

강아지 김정원이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2년 전 이맘때, 9월이었다. 정원이가 오기 직전 생애 첫 유기견 임시보호를 끝낸 나는 당분간 더 이상의 ‘헤어질 결심’은 없을 거라 단언했다.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를 다녔던 내가 살면서 온몸으로 체득한 게 있다면 나는 잘 헤어질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임시보호 기간의 대부분은 헤어짐보다 만남과 동거로 이뤄졌는데도 나는 임시보호의 진정한 해피엔딩인 헤어짐에 집어삼켜져 한동안 괴로워했다. 당시 임보견이 내가 꿈꿨던 것보다 훨씬 좋은 입양처로 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는 그저 헤어짐을 어쩔 줄 모르는 약해 빠진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에 한 강아지의 사진이 올라왔다. 어둑한 사무실과 작은 방석 위에 올라앉아 카메라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강아지. ‘손잡아 주세요’라는 글귀와 함께. 알고리즘을 타고 내게 찾아온 강아지의 이름은 ‘징가’. 구조자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얼기설기 엮어보면 계속 실외를 전전하며 살아온 강아지였다. 처음에는 음식점 뒷마당, 나중에는 컨테이너, 마당 그리고 또 마당. 믹스견에 대한 편견에 찬 인간들이 ‘똥개’라 부르는,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에게 적합하다며 배정된 공간이었다. 그 덥고 찬 야외에서 벌레에 뜯겨가며 새끼도 낳았고, 새끼들은 이리저리 보내져 생사도 모른다. 마지막 마당 주인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이런 강아지’는 아파트에 데려갈 수 없다는 이유로 산으로 보내기로 했다고. 무려 2000평이나 되는 땅을 혼자서 지키라며 산 중턱에 묶어두고 보름에 한 번 정도 누가 와서 물과 사료를 갈아줄 거라고 했다. 8kg 비숑이나 웰시코기보다 작은 사이즈이지만 생김새 때문에 아파트에 같이 갈 수 없는 여아 강아지. 크기와 성별이 어찌 됐든 21세기에 개 한 마리로는 마당도, 재산도, 산을 지킬 수도, 그렇게 묶여 살아도 되는 개도 없는 게 당연하지만 징가를 비롯한 대다수의 진도견 혹은 믹스견에게는 그 당연함이 도달하지 않았다.

징가는 고정장치도 없이 옥수수 박스에 넣어진 채 차 트렁크에 실려 이동됐다. 운이 좋다면 좋았던 걸까, 태풍 때문에 산에 곧바로 가지 못하고 잠시 머물던 곳에서 우연히 구조자에게 발견됐다고 한다. 이전 보호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구조자는 어떻게든 새 가족을 찾아주겠노라 사정해서 몇 주간 말미를 얻었다. 온라인에 열심히 홍보해도 거취가 정해지지 않을 경우 추석이 지나면 약속한 대로 산에 있는 밭 주인에게 보내기로 합의하고, 사무실 한쪽에 방석만큼의 자리를 얻은 징가는 온라인 입양 홍보를 거쳐 내 스마트폰 화면에 등장했다. 애처로운 눈을 가진 강아지야 세상에 너무나 많고, 안락사 명단도 매일 업데이트되는데 왜 하필 이 아이였을까. 추석이 지나면 산으로 보내진다는 말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업데이트를 확인하다가 연휴 마지막쯤 메시지를 보냈다. 한 달은 가능하다고, 진짜로 딱 한 달만 가능하다고. 절반은 업무 스케줄 때문이었고, 절반은 한 달 이상 있다 헤어질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겁을 잔뜩 먹은 강아지가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왔다.장염에 걸린 강아지에게 나는 납치범과 마찬가지였으리라. 겁이 많아 뭘로 구슬러도 밥을 안 먹는 아이에게 약을 강급하고, 좋은 입양처가 많이 연락해 왔으면 하는 마음에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발을 닦이고, 양치를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서 깨끗한 물과 밥을 제공해도 평생 밖에서 살아온 강아지에게 닫힌 공간에서 인간과 단둘이 살아야 하는 것은 매 순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임시보호자니까 빨리 악역을 마치고 조금이라도 안정된 모습을 홍보해 좋은 집을 찾아주겠노라고 다짐했다. 입양자가 어떤 방식으로 양육할지 모르고 나도 정 붙이는 게 무서워 잘 때 침대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그 까만 코가 씰룩거리고 검정·하양·갈색 털이 섞인 작은 등이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는 걸 훔쳐보다 까무룩 잠드는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업무와 주변 환경을 정리한 후 입양을 결심했다. 정확히 말하면 입양을 결심했다기보다 우리가 이미 가족인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아이가 내 정원이라는 걸 알았다. 한강으로, 남산으로, 바다로, 걷기 싫어하고 무기력한 나를 하루 세 번씩 어떻게든 끌어내서 햇빛도 보게 해주고 풀 냄새도 맡게 해줬다. 그러고 나면 마룻바닥에 둘이서 팔베개를 하고 널브러져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또 할 일을 했다. 그래, 어차피 집은 침실일 뿐 정원이 있더라도 산책은 따로 나가야 하니까. 이대로 평생 서로의 정원이 되자. 정말 정원이 없으면 안 되니까, 징가였던 아이의 이름은 그대로 ‘정원’이 됐다.

불안을 관리하며 사는 내게 개와 가족이 되는 건 인생 최대의 도전이었다. 그나마길어야 함께할 시간이 20년인 존재를 유일한 동거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다니, 매일 슬픔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과 매일 집에 큰 기쁨이 상주하는 기분을 정원이와 함께 품에 안은 채 살아간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와 소통할 유일한 방법은 서로 약속한 루틴뿐이고, 말과 글로 먹고사는 나는 가끔 이 사실에 무력해진다. 나, 우리 집, 내 차, 식사, 물그릇, 리드 줄…. 무엇 하나 정원이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그저 내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생각하면 오늘 겪은 일을 내일도 똑같이 겪게 하는 것 외에 이 아이를 안심시킬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게 강제로 삶의 루틴이 조금씩 만들어졌다. 내가 출근해 잠시 헤어질 땐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걸 손동작과 외출 간식으로 약속하고, 마지막 배변 산책 루틴을 지켜 하루를 마무리하는 ‘쉬야’는 마킹 없이 길게 하도록 하고, 발을 닦일 때는 오른쪽 앞다리, 왼쪽 앞다리, 오른쪽 뒷다리, 왼쪽 뒷다리 순서로 끝나면 뽀뽀! 내일도 이렇게 할 거니까 놀라지 않아도 돼. 모레도 마찬가지야. 정원이가 살아가면서 기억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함께 있는 거야. 그게 규칙이야. 언니 마음대로 정원이를 데려와서 가족이 되기로 한 대신 정원이가 규칙을 안 지켜도 언니는 지킬게. 훗날 정원이가 나이가 들어 지금처럼 깔끔하게 밖에서만 배변할 줄 몰라 온 집 안이 더럽혀져도, 갑자기 마음까지 병들고 익숙했던 모든 게 무서워서 난생처음 언니를 ‘왕’ 하고 물어도, 언니랑 가족이 되느라 견생 최고로 큰 변화를 열심히 받아들여준 정원이에 비하면 언니가 겪을 일은 정말 소소하고 작은 일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루틴왕’ 정원이의 첫 돌발행동은 입양이 결정된 날 이뤄졌다. 겁도 많고 규칙적으로 살길 좋아하는 정원이가 자려고 누운 내 침대에 예고 없이 폴짝 올라왔던 것. 그리고 임시보호를 거쳐 입양한 많은 보호자에게 똑같은,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에피소드를 듣는다. 그날 침대에 뛰어 올라온 정원이를 쓰다듬으면서 언니가 미안하다고 한참 말했던 기억이 난다. 너는 우리가 가족이란 걸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언니가 눈치가 없어서 시간이 걸렸네. 그날 이후 우리에게 생긴 또 다른 루틴이 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정원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편안할 때, 서로를 마주 볼 시간이 있고 TV를 비롯한 모든 소음이 없는 정적의 시간에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간식도, 다른 보상도 없이 “사랑해”라고 말하면 마주 보고 누운 정원이의 꼬리가 가만히 흔들린다.

개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칠 수 있을까? 말과 가르침의 정의에 따라 의견은 갈릴 것이다. 다만 어떤 말로 포장하든 보호자의 불안은 개에게 전이된다는 걸 깨달은 후로 나는 불안을 가장 크게 유발하는 이 존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몇 배의 에너지를 불안 관리에 쏟고 있다. 정원이는 그런 방식으로 나를 이전보다 위태롭게 하거나 동시에 안전하게 만든다. 그 까만 두 눈과 코를 바라보며 나는 네가 있어서 괜찮다고, 다른 것은 어떻게든 될 거라고 확신하는 순간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나는 정원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가르침과 동시에 정원이가 가르쳐주는 “사랑해”를 학습한다. 내가 “사랑해”라고 믿는 감정은 이런 것이구나. 지면에 인간의 말로 담아낼 수조차 없는, 정원이와 나만 알고 있는 그것.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양치를 할 것이다. 내가 먼저, 정원이가 다음. 그러고는 누워서 말해줄 것이다. “사랑해”로 시작하는 자기 전 인사로 정원이의 꼬리가 살랑거리기 시작할 때 나는 매일 말하는 자기 전 인사를 하고, 스탠드 불을 끄고 하루를 닫을 예정이다. “사랑해 정원아, 늘 잊어버리지 마. 우리 내일도 행복하게 지내자.”

WRITER 곽민지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방송작가. 〈걸어서 환장 속으로〉〈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반려견 정원이는 2023년부터 서울시 반려대 순찰견으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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