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가슴 아래쪽으로 전혀 감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꿈인가 했다. 하지만 악몽 같은 현실이었다. 2022년 10월18일. 유연수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팀 동료들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음주 운전 차량이 들이받았다. 가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17%. 만취 수준이었다.
피해 차량에 타고 있던 5명 중 4명은 경상이었다. 뒷자리에서 잠을 자던 유연수만 중상을 당했다. 하반신 마비가 왔고, 더이상 걷지 못하게 됐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다리를 잃은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축구를 더는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월드컵 출전을 꿈꾸는 제주 유나이티드FC 골키퍼였다. 축구는 그의 과거가 됐다.
그보다 더 충격받은 부모님을 생각해 슬픈 감정을 애써 꾹꾹 눌렀다. 절망을 빨리 털어내고 일어나는 게 부모님의 눈물을 닦아줄 길이라 믿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문으로 다시 스포츠를 골랐다. 휠체어 농구, 탁구, 배드민턴, 사격 등을 경험했는데, 사격을 최종 택했다.
유연수는 2024 파리패럴림픽 사격 종목이 열리는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를 찾아 대표팀을 응원했다. 이날 사격 대표팀은 금메달(조정두)을 비롯해 은메달(이윤리), 동메달(서훈태)을 모두 쓸어 담았다.
유연수는 이후 취재진과 만나 “현장에 와서 보니까 사격이라는 스포츠를 잘 택한 것 같다”며 “총을 가지고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약 한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한 발 한 발을 신중하게 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는 면에서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그가 사격을 택한 이유는 골키퍼와 비슷해서다. 유연수는 “사격은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인데, 골키퍼도 집중력이 많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나와 잘 맞는 것 같다”면서 “축구하면서도 아무 잡념 없이 열심히 하고는 했는데,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사격에 임해서 좋은 선수가 되고, 존경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롤 모델로는 올림픽 사격 영웅 진종오(현 국회의원)를 꼽았다. “그의 집중력을 닮고 싶다”고 한다.
유연수에 앞서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김명제가 교통사고 뒤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변신해 도쿄패럴림픽에 참가한 바 있다. 유연수는 2028 엘에이(LA)패럴림픽을 겨냥해 훈련하게 된다. 만약 그때 태극 마크를 달면 축구 선수로 이루지 못한 국가대표 꿈도 이루게 된다.
유연수는 “연습을 잘해서 그 만큼의 기량만 나온다면 엘에이에 갈 수도 있고 대표팀이 돼서 또 메달도 딸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금메달이 목표지만 금메달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 하고 싶다”는 각오를 말했다.
이날 아들과 함께 현장을 찾은 아버지 유웅삼(58)씨는 “사고 후 생업으로 했던 개인택시를 잠시 세워두고 아들만 봤다”면서 “아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희망을 갖는 모습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로서 한없이 응원할 뿐”이라고 했다. 유연수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 부모님이 끝없이 간병도 해주시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제가 제대로 사격을 시작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가족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처럼 불의의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유연수는 “지금껏 해보지 못한 스포츠를 통해서 자존감을 얻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저하지 말고 나와서 세상과 부딪히면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자기가 이루지 못했던 꿈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28년을 향한 유연수의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한겨레 파리/김양희 기자 /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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