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체앤가바나만큼 뚜렷한 이탈리아 DNA를 지닌 브랜드도 드물다.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베네치아와 밀란, 포르토피노, 풀리아 등 이탈리아의 다양한 지역에서 꾸준히 알타 모다를 개최해 이탈리아 전통문화와 장인 정신에 경의를 표해왔다. 이번엔 고대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사르데냐로 향했다. 지중해 중심에 위치한 사르데냐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역사가 깊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돌체앤가바나는 새로운 하이 주얼리와 여성 오트 쿠튀르, 남성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차례로 소개했다. 지난 6월 30일 밤,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공연으로 돌체앤가바나의 알타 모다 위크 이벤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음날 7월 1일엔 사르데냐의 전통 요소를 더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 ‘알타 조엘레리아’가 베일을 벗었다. 컬렉션 주제는 정교한 수작업으로 금실을 뽑고 엮는 전통 공예 기법인 필리그리와 사르데냐의 다양한 전통문화였다. 복잡하고 섬세한 필리그리 구조와 다양한 젬스톤, 조각 스톤이 조화를 이룬 주얼리가 금빛 장식 사이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사르데냐식 이중 돔 형태의 금 단추와 이 지역 전통 바구니 모양의 수공예품 ‘사 코르불라(Sa Corbula)’에서 영감받은 주얼리가 눈길을 끌었다. ‘수 코코이(Su Coccoi)’라는 실제 빵 조각을 세팅한 주얼리도 있었다. 7월 2일엔 돌체앤가바나의 여성 오트 쿠튀르 컬렉션 ‘알타 모다’가 공개됐다. 사르데냐의 고고학 유적지인 노라에 미국의 설치미술가 필립 K. 스미스 3세의 아트워크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런웨이 쇼를 선보였다. 필리그리 세공에서 영감을 받은 3차원 자수 장식의 드레스, 수작업으로 제작한 장엄한 망토 등 고대 사르데냐의 직조 예술과 장인의 양모 공예를 닮은 다양한 피스가 차례로 등장했다. 이 지역의 역사적 뿌리에 경의를 표하는 디자이너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7월 3일에 열린 남성 오트 쿠튀르 컬렉션 ‘알타 사르토리아’ 이벤트는 사르데냐의 민속 문화를 소개하는 퍼레이드로 문을 열었다. 컬렉션 피스 역시 토속 문화를 담고 있었다. 산트에피시오 축제 기간 동안 거리에 장미 꽃잎을 뿌리는 인피오라타 전통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꽃무늬 자수 장식, 전통 직조 기술인 피비오네를 활용한 아우터웨어가 바로 그것. 7월 4일 밤엔 케이티 페리의 강렬한 무대가 펼쳐졌다.
알타 모다 위크 중 가장 먼저 소개된 건 하이 주얼리 ‘알타 조엘레리아’ 컬렉션. 사르데냐의 전통을 담고 있는 90여 점의 주얼리가 금빛 장식을 배경으로 전시됐다. 가장 두드러진 건 주얼리 제작 전반에 필리그리 기법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필리그리는 금을 실처럼 아주 얇게 세공해 손으로 직접 엮어 입체 구조를 만드는 고대의 보석 제작 과정이다. 돌체앤가바나는 이 기법을 바탕으로 사르데냐의 전통과 수공예를 하이 주얼리로 풀어냈다. 먼저 사르데냐 보석의 기본 요소로 꼽히는 이중 돔 형태의 금 단추를 차용했다. 펜던트, 귀고리로 쓰이는 이 단추는 예부터 다산을 상징했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부적의 의미를 지닌 것. 알타 조엘레리아에 녹아든 또 다른 전통 요소는 손잡이가 없는 바구니 모양의 모티프이자 지역의 유명 수공예품인 ‘사 코르불라’. 나선형 필리그리 구조에 꽃 모티프나 보석 등을 장식해 표현했다. ‘수 코코이’라는 실제 빵 조각을 세팅한 주얼리도 소개됐다. 수 코코이는 사르데냐 지역에서 특별한 축제 기간에 의식용으로 만드는 화려한 모양의 빵이며 순수함을 상징한다. 돌체앤가바나는 특수 방부 처리한 수 코코이를 일부 주얼리에 세팅해 독특하고 새로운 주얼리를 창조했다.
여정 3일째, 돌체앤가바나의 여성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공개됐다. 쇼는 사르데냐의 고대 유적지로 꼽히는 노라에서 열렸다. 노라는 기원전 8세기, 이 지역의 최초 페니키아 정착지 중 하나였다. 이 고대 도시는 바람의 방향과 관계없이 항해할 수 있었던 전략적 위치 덕에 당시 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현재 일부는 바다에 잠겨 있다. ‘사르데냐’라는 이름 역시 19세기 말에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발견한 노라 비석 때문에 알려진 것이다.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이 유서 깊은 장소에 런웨이와 스테이지를 설치했다. 고대의 비석과 건물의 토대가 남아 있는 터전에 현대적인 아트워크도 세웠다. 빛에 따라 시각적으로 변화하는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미국의 설치미술가 필립 K. 스미스 3세의 작품이다. 한눈에도 공들여 만든 다양한 컬렉션 피스로 차려입은 모델들이 거대한 거울 기둥처럼 생긴 아트워크 사이로 차례차례 걸어 나왔다. 필리그리에서 영감을 받은 금빛 3D 자수, 사르데냐의 전통 주얼리인 이중 돔 형태의 금 단추에서 본뜬 장식, 필리그리 형태의 코르셋, 섬세한 레이스 드레스와 베일 등 고대 여신을 재현한 듯한 아름다운 룩이 눈길을 끌었다. 쇼의 마지막에 등장한 알록달록한 양털 망토는 고대 사르데냐의 직조 예술과 장인들의 양모 공예를 반영한 것. 해 질 무렵 시작된 쇼는 해가 완전히 진 다음에 마무리됐다. 황홀한 해변의 노을, 빛의 변화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준 아트워크, 장엄하고 경이로운 알타 모다 컬렉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피날레는 알타 모다 위크의 클라이맥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포르테 빌리지 아레나에서 남성 오트 쿠튀르 컬렉션인 알타 사르토리아 쇼가 열린 네 번째 날. 쇼는 사르데냐의 지역 축제와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퍼레이드로 시작했다. 성인의 동상을 금박 마차에 싣고 거리를 행진하는 종교 행렬이 특징인 산트에피시오 축제, 마부와 여성이 화려한 곡예를 선보이는 전통 승마 대회 파리글리에, 마을의 카니발 퍼레이드 등 사르데냐 지역의 다양한 민속 문화를 한데 섞은, 독특하면서도 흥겨운 행진이었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사 라마두라’라는 의식. 황소가 그려진 마차 트라카스가 지나간 거리를 꽃잎으로 덮는 이 관습은 고대에 동물이 남긴 냄새를 가리기 위해 월계수나 민트, 유칼립투스 같은 허브를 길에 뿌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가지각색의 전통 의상과 민속음악이 한바탕 지나간 다음, 여기서 영감을 받은 돌체앤가바나의 알타 사르토리아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형형색색의 꽃무늬 자수, 금사로 장식한 벨벳, ‘플라운스’라고 부르는 우아한 주름 장식은 사르데냐 전통 의상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프린지 장식을 연상케 하는 피스. 사르데냐의 전통 직조 기술인 피비오네를 활용한 것이다. 사르데냐어로 ‘포도 씨앗’을 의미하는 피비오네는 직물 표면에서 튀어나온 작은 루프를 뜻한다. 이 지역에서는 예부터 귀한 것으로 여겼던 혼수품에만 이 직조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돌체앤가바나는 이 전통 기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크리스털 장식을 더해 고풍스럽고 우아한 면을 강조했다. 다양한 굵기의 양털로 제작한 투박한 아우터웨어는 마모이아다 카니발 기간 동안 마무토네스(가면을 쓰고 동물로 분장하는 남성 캐릭터)가 입는 큰 양모 코트를 본뜬 것. 돌체앤가바나는 사르데냐의 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했다. 사르데냐의 신비로운 고대 문명을 주얼리와 여성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 보여주었다면 지역의 토속적인 전통 문화는 남성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 풀어냈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의 다양한 전통문화와 장인 정신을 조명하고 상기시킨 돌체앤가바나의 알타 모다 컬렉션. 이보다 더 효과적인 문화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
알타 모다 위크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건 두 슈퍼스타다. 첫날인 6월 30일 밤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오프닝 공연이 열렸다. 핑크색 보디수트에 퍼 스카프를 두르고 등장한 그녀는 뜨겁고 요염하며 아름다웠다. 마지막 날인 7월 4일 밤엔 케이티 페리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실버 뷔스티에와 보디수트를 입고 카리스마 있는 공연을 펼쳤다. 알타 모다 컬렉션이 공개된 7월 2일 밤엔 드래그 퀸 아티스트 트릭시 마텔의 디제잉 파티가 열려 흥을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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