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이 번 돈으로 바람피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사연
1957년 KBS 4기 전속가수에 합격해 데뷔하여, ‘산 너머 남촌에는’,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던 가수 박재란.
하지만 밝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달리 그녀의 인생은 고난과 역경이 줄을 지어 기다리며 계속해서 등장했다는데.
박재란은 첫 번째 남편과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지만, 당시 돈을 버느라 바빠 가족 간에 대화나 소통은 물론이고 흔한 외식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전 남편이 사업을 여러 번 실패하며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녀가 아무리 돈을 벌어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고.
박재란은 “그때 나는 죽어라 일만 하며 집에도 못 왔다. 하루에 여섯 개의 공연을 하기도 하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돈을 벌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가 번 돈은 전부 남편의 뒷주머니로 들어갔고, 일은 하지 않고 쏘다니며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혼은 여자에게 흠이 되는 시대였고, 박재란은 참고 살며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알게 된 남동생은 길길이 날뛰며 남편의 뒤를 몰래 쫓았고, 알고 보니 남편은 명동에 있는 다방의 마담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여관에 들어가는 둘을 목격한 남동생은 여관을 때려 부수며 화를 냈다.
알고 보니 남편과 내연녀인 마담은 박재란 몰래 홍콩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나기 위해 준비 중이었는데, 남편이 군 미필자라서 비자가 나오지 않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나와 두 딸은 어쩌라고 혼자 떠나려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때 여자가 이혼한다는 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후 남편이 찾아와 무릎을 꿇고 “세상이 멸망해도 당신의 마음은 그대로일 줄 알았다”라고 사과했고, 이에 그녀는 “옛날에는 그랬다. 그런데 당신이 변하게 만들지 않았느냐”라고 대답했다.
새로운 인생 꿈꾸며 떠났지만
혼자가 된 박재란은 미국으로 떠났는데, 두 딸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남편이 격렬하게 반대해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한인 사회에서 노래하며 돈을 벌었는데, 당시 받았던 행사비는 천만 원 이상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번번이 사기를 당했고, 가족처럼 여겼던 동생에게도 10억 원을 빼앗긴 박재란은 삶의 의지를 잃고 자살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또한 박재란은 영주권도 없어 불법 체류 상태로 미국에 머물렀는데, 이 때문에 추방당할 위기에도 처했고 유치장에 갇히기까지 했다고 한다.
힘들었던 그녀에게 단비처럼 두 번째 사랑이 찾아왔고, 박재란은 그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한 후 드디어 영주권도 얻게 됐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박재란의 두 번째 남편이 아편을 시작해 어느 날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행방불명된 탓에 자연스럽게 이혼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며 몇 번이나 바닷가에 가서 신발도 벗었다. 그런데 자꾸 남은 가족이랑 딸들이 생각나서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박재란 젊었을 때 진짜 예뻤는데”, “노래는 너무 좋은데 저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니”, “남자 복이 너무 없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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