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올림픽 정신이 2024 파리 올림픽으로 이어졌다. 파리가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며 루이 비통, 쇼메, 벨루티 등이 속한 LVMH가 후원사로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스포츠계뿐 아니라 패션계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7월 26일, 드디어 열린 개막식. 센강 위로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세 가지 컬러가 강렬한 연기를 내뿜으며 이벤트의 시작을 알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캉캉 춤과 뮤지컬, 가수들의 공연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늘을 가로질러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줄을 타고 나타났다.
한 손에 성화봉을 든 그는 센강을 지나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등 파리의 랜드마크를 누볐다. “개막식 무대가 될 센강의 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부드러운 곡선은 평화를 상징하고, 대칭적 구조는 선수 간의 평등을 의미하죠.” 재활용한 철강으로 성화봉을 디자인한 마티외 르아뇌르의 의도가 파리 곳곳에 전파되는 순간이었다.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든 성화봉은 지네딘 지단, 라파엘 나달, 세리나 윌리엄스 등 전설적인 올림픽 선수들의 손을 거쳐 생드니 대성당 문 앞에서 프랑스 기자 모하메드 부하프시와 배우 레티시아 카스타에게 넘겨졌다. 그들은 거대한 열기구에 토치 키스를 건네며 분위기를 절정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성화봉은 생드니 대성당 꼭대기에 있던 최종 주자, 루이 비통의 남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에게 향했다.
그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꽃 수호자에게 랜턴을 전달한 뒤 꺼진 성화봉을 토치 트렁크에 반환하면서 성화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파리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가 퍼렐인 것이 다소 의아한 이들도 있겠지만, 최근 그가 이끈 쇼를 본 이들이라면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합류한 지 이제 세 시즌이 지났지만 그만의 영향력으로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인물이니까. “과거 올림픽에선 조각, 건축, 시각예술 등의 분야를 아우르는 예술 경연 대회가 함께 열렸죠.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유산을 조명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술에 대한 영감의 끈을 놓지 않는 그다운 말이었다. 퍼렐이 첫 시즌부터 주목했던 다미에 패턴에 황동 잠금장치를 더한 트렁크는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웠지만, 1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쌓아온 장인들의 기술력도 빛을 발했다. 창립자의 철학을 잊지 않고 트렁크를 만들며 여행의 낭만을 이야기해 온 브랜드답게 위아래 성화봉을 고정하는 원형 틈을 만들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
장인들의 사물에 대한 연구는 메달 트렁크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1988년 메종이 아메리카 컵을 위한 트로피를 제작한 이래로 FIFA 월드컵, 발롱 도르, 로랑 가로스,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수많은 스포츠 이벤트를 위해 트렁크를 선보여 왔기에 공개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다. 경첩으로 연결한 두 개의 날개를 열어 수납할 수 있는 방식인 ‘말 쿠아푀즈(Malle Coiffeuse)’에서 영감을 받은 트렁크는 쇼메에서 제작한 468개의 메달을 안전하게 고정할 수 있도록 자석 시스템의 받침대를 장착했다. 침대와 티 세트, 악기, 카메라, 샴페인 등 용도에 따라 트렁크를 맞춤 제작해 온 하우스의 기술력을 또 한 번 체감할 수 있었던 순간. 파리 올림픽과 LVMH의 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515명의 메달 시상 요원 유니폼과 메달 트레이에서도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임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유니폼은 페미니즘이 대두되던 1924년 파리 올림픽 정신을 이어받아 성별 구분 없는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여기에 폴로 셔츠와 가브로슈 모자는 LVMH의 여러 메종에서 나온 자투리 천을 업사이클링한 원단으로, 와이드 팬츠는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를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 거주하는 난민 출신 공예가들의 직업 적응을 돕는 비영리단체 라 파브리크 노마드와 협업해 지속 가능성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시상식을 위한 작품을 통해 LVMH 장인, 파트너 단체들과 함께 선수들의 역사적 순간에 특별함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더욱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기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LVMH 앙투안 아르노의 말에서 이번 올림픽과 패션 하우스의 예술적 교감이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예술적 교감은 경기장 밖에서도 이뤄졌다. 올림픽 성화 봉송 경로 중 한 곳이었던 루이 비통 재단미술관에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전시를 펼친 것. 유선형 모양의 카약을 조각처럼 표현한 로만 시그너,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가 네 개의 손으로 그린 오륜기,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인물로 스스로를 분장해 초상화를 그린 오마르 빅토르 디오프 등 루이 비통 소장품 컬렉션에서 선별한 아티스트 5명의 작품을 9월 2일까지 전시한다.
또 이번 올림픽의 여운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시티 가이드〉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간 여행을 주제로 도시의 특색을 담아온 〈시티 북〉을 통해 커피 테이블용 책으로 30년 만에 다시 파리를 조명한 것. 그것도 특별판으로 출간하는 〈파리 스포츠〉와 함께 말이다. 〈시티 북〉은 이전보다 한층 더 발전적으로 재창조된 도시에서 예술가 · 사진작가 · 현대 만화작가들이 해석한 파리의 모습을 담았고, 〈파리 스포츠〉는 패션과 스포츠의 긴밀한 관계, 파리의 소소한 동네 스포츠 문화부터 파리 출신 선수들의 이야기까지 심도 깊게 구성했다. 이처럼 스타디움 안팎으로 도시 전체를 도화지 삼아 열린 올림픽이라는 축제는 ‘스포츠’라는 키워드로 만났지만 다양한 분야의 장인 정신과 노하우,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음 올림픽 개최지인 LA는 또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킬까? 폐막식에 영화처럼 등장한 톰 크루즈, 오륜기로 표현한 ‘HOLLYWOOOOOD’ 팻말, 빌리 아일리시와 스눕 독의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감을 모으게 만들어 책장 한쪽에 꽂힌 LA 〈시티 북〉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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