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차승원이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으로 글로벌 시청자 앞에 섰다. 무자비한 청소부 임상으로 분해 독보적인 개성으로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빚어낸 그는 “내게서 새로운 얼굴을 발견해 줬을 때 짜릿함을 느낀다”며 열정을 드러냈다.
지난 14일 공개된 ‘폭군’은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 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신세계’ ‘마녀’ ‘낙원의 밤’ 등의 박훈정 감독의 첫 번째 시리즈 연출작이다.
영화 ‘낙원의 밤’에 이어 박훈정 감독과 다시 의기투합한 차승원은 극 중 은퇴한 전직 요원이자 ‘폭군 프로그램’에 관련된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청소부 임상을 연기했다. 임상은 평소에는 공손한 말투와 깔끔한 헤어스타일, 영락없는 평범한 공무원처럼 보이지만 업무를 수행할 때는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조리 쓸어버리는 무자비한 해결사로 돌변하는 인물이다.
차승원은 독특한 개성의 외적 변신부터 서늘함과 엉뚱함을 오가는 면모, 인물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물론, 총기 액션 등 화려한 액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소화하며 존재감을 입증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박훈정 감독과의 재회 소감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과 액션 비하인드 등 ‘폭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공개 소감은.
“영화를 개봉하는 부담보다는 훨씬 덜한 것 같다. 영화는 개봉하기 전에 이미 판가름이 확 나잖나. 어느 정도 예상 수치가 나오는데 그것에 대한 압박이 되게 심하다. OTT 공개도 어떤 식으로든 평가가 나오겠지만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에 대한 압박보다는 수위가 덜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박훈정 감독과 ‘낙원의 밤’에 이어 다시 만났다. 어땠나.
“‘낙원의 밤’ 제안받았을 때 ‘왜 나한테 이 역할을 주냐’고 했다. 박훈정 감독이 ‘그냥 잘할 것 같아서’라고 하더라. 노희경 작가에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왜 이걸 나한테 주느냐고. 내게 그런 얼굴이 있다고 하더라. 그럴 때 희열을 느낀다. 나한테 또 그런 얼굴을 찾아주는구나. 그런 지점들이 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현장에서 뭔가를 할 때 더 신경 쓰고 깊숙이 들어가는 동기부여가 된다. 이 사람이 나를 이 정도까지 생각하고 믿어주는데 나도 그것에 준하는 어떤 걸 해야 하지 않을까 늘 생각한다. 기분 좋은 긴장이 된다. 고마운 감독이다.”
-고문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존댓말을 쓴다든가 ‘선 캡’을 착용하는 등 독특한 캐릭터였다. 디테일한 설정들은 어떻게 만들어 나갔나.
“우선 ‘선 캡’은 시나리오에 있었다. 처음에 보고선 웃었다. 햇빛 가리개야 뭐야.(웃음) 임상이 기본적으로 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 같더라. 공무원처럼 수행할 뿐이지, 즐겨한다거나 그런 사람 같지 않았다. 이해도 되고 괜찮았던 것 같다. 재미를 주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 잡담이 모이고 모여서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시나리오가 있지만 (시나리오에 담기지 않은) 이 사람의 전사라든가 다른 인물이 나올 때 이 사람은 뭘 하고 있을지 등을 유추해 보는 재미가 있고 그것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표현하는 데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온 점과 중점을 둔 부분은.
“기차라는 공간이 임상의 메타포라고 생각한다. 막 달려가는 기차였다가 어디 한 군데 정착하고 안주하고 싶은 어떤 남자. 덩그러니 들판 같은 곳에 딱 떨어져 있는 남자. 그 공간 안에서 임상이 하는 것들은 되게 기괴하잖나. 그런 대비점이 좋았다. 그런 설정들이 없었다면 평이한 인물로 비쳤을 것 같다. 캐릭터를 빌드업하고 표현하는 데 좋은 지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점을 둔 부분은) 일이 아닌 상황에서는 어리숙하고 구겨져 있고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총을 쏠 때나 액션을 할 때 대비되면 캐릭터가 입체화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극명하게 대비되는 신들이 중간중간 배치돼 있었다. 애드리브도 많았다. 다른 인물들은 심각하잖나. 그 사이에서 (임상은)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 그런 대비되는 지점이 좋았다.”
-애드리브나 그런 감은 어떻게 얻는 편인가.
“감은 현장에서 오는 거다. 처음 등장할 때 기자 흉내를 내는데 머리를 정리하면서 ‘너무 많이 발랐나?’라든가 일을 다 치르고 나서 손을 씻는 것, ‘아, 미남이시네’ 이런 것들도 다 애드리브고 현장에서 만들어진 거다. 일단 해본다. 아니면 안 쓰면 되는 거고. 박훈정 감독이 그런 지점에 있어서 나한테만큼은 많이 열어준다. ‘낙원의 밤’을 할 때도 많이 열어줬다. 아니면 말고 그런 거다. 신을 거듭할수록 캐릭터가 촘촘해지고 몸에 익어서 시나리오에 없는 어떤 다른 행동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런 것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배우가 이 이상 하는 것은 인물의 기본적인 결과 맞지 않다는 생각을 미리 해버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임상의 외적인 모습도 독특했다. 구축 과정은.
“이대팔 가르마는 시나리오에 있었고 수염은 자르고 싶었는데 감독이 임상과 자경의 모습에서 약간의 나이 차이가 더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수염도 그대로 했다. 큼지막한 코트 같은 것도 감독이 원해서 미리 설정을 해놨었다. 시나리오에 있던 부분이라 그것에 맞춰서 했다. 임상이라는 사람이 조금 달랐던 것은 총이다. 그 총이 곧 임상이거든. 생긴 것도 그렇고 어디선가 팔지 않는 듯한, 오래되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화력은 굉장히 세 보이고. 무기와 액션이 캐릭터에 변별력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경(조윤수 분)과의 대결 신도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준비했고 촬영은 어땠나.
“그것만 연습을 2주 정도 했다. 조윤수와 키 차이가 워낙 많이 나고 총을 드는 것도 바로 앞에서 하는 거니까 부상의 위험도 있었다. 윤수가 물론 연습을 많이 했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거라 많이 다치기도 했다. 윤수도 욕심이 있으니까 굉장히 열심히 했다. 또 힘의 균형이 비등해야 하잖나. 어떻게 보면 자경이 임상보다 조금은 더 잘하게 보여야 하는 것도 있었다. 윤수가 많이 힘들었을 거다.”
-공개를 앞둔 작품, 촬영하고 있는 작품, 예능프로그램까지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더 도전하고 싶은 분야나 배우로서 지향하는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요새 바쁘다. 끝나면 찍는 게 또 있고 진짜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밥을 못먹거나 그렇진 않다. 나름 또 시간적 여유가 있다. 특별히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까 지금 루틴이 괜찮은 것 같다. 그동안 함께하지 않았던 감독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분들의 선택을 받는 게 되게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끊임없이 접점이 전혀 없는 감독에게 제안이 들어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어떻게든 작품으로 승부하고 싶거든. 다른 감독들과 해서 나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 주고 찾아낼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이 배우가 어떨까’ 했는데 ‘이 배우와 하길 잘했어’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흘러서 ‘이 배우에게 또 주면 좋겠는데’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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