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 분)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메가폰은 1,23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한 추창민 감독이 잡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역사에서 사라진 15일간의 숨겨진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던 추창민 감독은 이번 ‘행복의 나라’에서도 1979년 벌어진 10‧26 대통령 암살 사건과 12‧12 사태, 그사이 존재했던 재판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특히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모티프로 박태주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켜 묵직한 울림을 안기고, 당시의 재판 기록들과 재판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변호사 정인후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창작해 극적 재미를 완성한다. 여기에 거대 권력의 중심인 합수부장 전상두를 통해 시대의 야만성과 비극을 보여준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추창민 감독은 영화의 출발부터 캐스팅 비하인드, 촬영 과정 등 ‘행복의 나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추창민 감독은 세상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 뒤 우리가 몰랐던 숨겨진 이야기와 인물에 집중한 것에 대해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개봉 소감은.
“그동안 몇 편의 영화를 찍고 개봉해 봤는데 항상 똑같다. 여전히 떨리고 무섭다. 영화를 만들 때는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개봉 때가 되면 ‘망하지 않아야 할 텐데’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 아주 잘 된 영화도 있었고 망한 영화도 있었는데 영화가 잘 안되면 나 혼자 힘들어지는 게 아니고 노력을 기울인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힘들어지는 거라 더 힘들더라. 감독 입장에서는 최소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제일 크다.”
-같은 시대를 다룬 ‘서울의 봄’보다 촬영은 먼저 끝났지만 공개는 늦었다. ‘서울의 봄’의 흥행을 지켜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나.
“‘서울의 봄’이 규모도 크고 화려한 영화라서 우리 영화가 먼저 개봉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준비도 했었고. 그러다 안타깝게 이선균 일로 모든 것이 ‘스톱’됐다. 그 사이 ‘서울의 봄’이 개봉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은 없다. 그저 같은 소재기 때문에 잘 만들면 관객이 호응한다는 신호가 반가웠다. 김성수 감독과 친한 편이다. 시나리오도 공유했고. 처음에는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게 괜찮나 고민했다. 그런데 나는 내 색깔, 너는 네 색깔 그것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냈다. 나도 ‘서울의 봄’을 보면서 ‘김성수 감독답다’고 느꼈고 내 영화는 또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과 12‧12 사태를 이야기하는 시나리오는 많잖나. 주요 사건을 다루면 그 사건이 중심이 되지만 이 영화는 숨겨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 시대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고민했고 전두환으로 치환될 수 있는 전상두, 야만의 시대, 자기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세상을 집어삼킨 그 인물을 하나의 권력 욕망으로 선택했다. 정인후는 당시 인권변호사 집단을 대면하고 그들이 고민하는 시민정신을 치환해 탄생한 인물이고 박태주는 시대의 희생양을 상징했다. 그 사람들, 그 사건이 그 시대로 치환할 수 있었다.”
-박태주의 모티프가 된 실존 인물의 사연을 많이 축소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이 영화는 박태주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인물을 미화시켜서도 안 되고. 갖고는 왔지만 희생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사람의 서사를 정서적으로 가져오는 순간 개인의 이야기가 돼버리기 때문에 맥락이 조금 틀어진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서사를 가져왔지만 객관화했고 정서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기에 극적 재미를 위해 고민도 했을 것 같은데.
“욕심은 있었다. ‘서울의 봄’ 황정민이 보여준 전두광은 같이 분노하고 패고 싶은 그런 게 있었는데 만약 그렇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서울의 봄’을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행복의 나라’는 그게 아니고 조금 더 메타포가 담긴 작품이다. 그래서 제일 큰 차이점이 전두광과 전상두라는 인물 같다. 한 사람은 강력하고 카리스마를 품기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망을 드러내지만 전상두는 되게 점잖은 척한다. 하지만 뒤로는 모든 사건을 쥐고 흔든다. 혼자 있을 때만 욕망을 드러낸다. 어딘가 숨어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권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이가 극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단 골프장에서 전상두와 정인후가 마주하는 장면은 너무 영화적이라는 반응도 있다.
“그 장면은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영화적 판타지. 나는 그 장면이 되게 좋았다. 세상을 향해 영화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유재명, 조정석도 좋아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설득할 방법을 찾자고 했다. 영화의 결에 대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시원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게 말이 되느냐고 할 수 있지만 내겐 판타지였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누군가는 권력을 향해 부당하다고 소리치지 않았을까. 그걸 영화에서 조정석이 해주길 바랐다.”
-조정석은 어떤 배우였나.
“조정석은 스포츠카 같은 배우다. 스포츠카는 속도를 올리는 게 다른 차에 비해 빠르잖나. 다른 차들은 예열해서 올리는데 조정석은 2초, 3초 만에 올려버린다. 어떤 감정을 이야기하면 순식간에 눈물을 흘린다. 저럴 수 있나. 되게 놀랐다.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상두를 그려낸 방식도 기존 작품과 다른 느낌이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전상두를 모티프가 된 인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시대의 야만성으로 본다면 훨씬 더 포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잖나. 무식하고 돌직구에 폭력적이고. 그런데 외형적으로 드러난 것만 알고 있지 내면은 전혀 다를 수도 있거든. 성향이 그럴 뿐이다. 또 하나의 성향만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야만성은 폭력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 뒤에 훨씬 더 야비하고 치밀한 게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상두가 정인후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세게 때렸으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겠다는 생각은 했다. 감정은 끌어낼 수 있지만 저게 맞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한 악이 악마처럼 보이진 않잖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도 있잖나. ‘악의 평범성’이라는 책을 영화를 준비하면서 다시 보기도 했다. 나도 악을 이렇게 구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상두 역에 유재명이어야 했던 이유는.
“하려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이 역할을 누가 해줄까 했을 때 나이도 있어야 하고 유명세도 있어야 하고 그러면 몇 명이 남지 않는다. 유재명도 시나리오가 갔을 때 거절했다. 그럼 누구한테 제안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회사를 통해 (유재명이) 관심은 있어 한다는 말을 들었고 매달렸다. 조정석도 설득하고 해서 (유재명이) 하겠다고 했다.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법정신도 중요했다. 연출적으로 중점을 둔 부분은.
“법정이 많이 나와서 법정 드라마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법정 장면들이 정말 중요했다. 그런데 보통 법정 드라마라고 한다면 선악 구분이 명확하고 무죄를 주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한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게 쉽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진실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쪽에 있는 검사, 그리고 재판장들을 감정적으로 훼손하지 않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자료를 보면 훨씬 더 한 것들이 많이 나온다. 욕하고 헐뜯고. 그렇지만 그것을 영화를 통해 본다면 매도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왜 저렇게 나쁘게 표현하지 하는. 그런 것들을 걷어내고 동등한 싸움으로 담고 싶었다. 논리를 갖고 치고받고 싸워야 그 재판이 훨씬 더 진실성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제목에 담긴 의미는.
“초반 시나리오 쓴 분들의 의견이 중요했고 존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제목이 영화와 맞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의미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의 나라’ 타이틀을 보면 글씨가 반대로 돼 있는 것도 있고 깨진 부분도 있는데 행복이라는 게 깨져 있고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 음악을 시나리오부터 차용한 걸로 알고 있고 그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곡이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영화에 쓰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선택했다.”
-감독은 그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1985학번이다. 저항이 가장 셌던 시대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대구에 살았는데 그때 친척이 광주 사태가 났다고 하면서 이렇게 됐고 저렇게 됐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 아버지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세상에 그런 일이 어떻게 있냐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게 사실이고 저런 시대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는 그 시대를 다 겪었잖나. 그게 허용되고 용납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탄압당하고.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한 발짝 걸어왔고. 그런데 그게 그 시대라고만 규정하고 싶진 않다. 어떤 세상이든 어떤 국가든 누군가는 권력을 갖고 활용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저항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가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좋았던 것이고 우리가 그 시대를 몸으로 겪은 세대니까 표현하고 싶은 거다.”
-이선균의 유작이기도 하다.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
“편집이 완성되고 개봉을 고민할 시점에 이선균 사건이 터졌다. 그래서 모든 게 멈췄다. 내부적으로는 3~4년 내에는 개봉이 불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안타깝게 선균 씨가 세상을 떠났다. 다시 후반작업을 하게 됐는데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대사 몇 개와 어떤 상황들이 너무 와닿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도 했는데 그냥 손대지 말고 그대로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선균이 이번 영화에서 해낸 역할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선균이 이 작품을 한 이유가 조정석 때문이라고 했다. 배우고 싶다고. 톱스타인데 아직도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고 호기심이 있구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를 통해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런 건 없다. 내가 바라는 대로 볼 수도 없고 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한 번쯤은 ‘이런 시대가 있었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 정도만 봐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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