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아내를 깨우러 들어간 침실에서 강무(황정민)의 눈에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아내의 지갑이 들어온다. 아내가 깰까 봐 숨죽인 채 지갑을 손에 든 강무는 조심스럽게 만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꺼내 조용히 방을 나서지만, 하필 그때 눈을 뜬 아내 미선(염정아)에게 현장을 들키고 만다.
“돈을 모아서 같이 여행을 가려고 그랬다”는 강무의 항변에 미선은 일갈한다. “우리가 그동안 가본 여행이라곤 ‘출발 비디오 여행’ 뿐이다!”
강무의 미선 부부의 ‘티키타카’로 시작하는 영화 ‘크로스'(감독 이명훈·제작 사나이픽쳐스)의 출발은 꽤 유쾌하다. 황정민과 염정아의 부부 호흡이 무언가 ‘일’을 낼 것만 같은 기대감도 상승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하고 뻔한 설정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헐거운 이야기 속에서 기라성 같은 명배우들 마저도 힘을 잃는다.
강무는 미선의 출근길을 도우면서 정갈한 아침 밥상을 차리고, 강력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아내가 다칠세라 손목 보호대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섬세한 남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전직 국군정보사령부 특수요원으로 활약하던 그는 6년 전 부하들을 잃은 작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지금은 과거를 숨긴 채 미선과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미선은 남편의 과거를 알 리 없다.
미선과 그의 경찰 동료들에게 강무는 외조에 진심인 남편. 미선뿐 아니라 강력범죄수사대 동료 형사인 상웅(정만식), 헌기(차래형), 동수(이호철)의 밑반찬까지 정성껏 챙기는 강무를 미선의 후배들은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 기시감 돌파하려는 자구책 있지만…
‘크로스’는 익숙하지만 그만큼 친근한 설정으로 출발하는 영화다.
정체를 숨긴 배우자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설정의 이야기는 이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년), 설경구·문소리 주연의 ‘스파이'(2013년) 등을 통해 관객에 익숙하다. 이들 두 영화는 개봉 당시 296만명, 343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한 침대에서 자고 깨는 부부 사이에 거대한 비밀이 쌓이고, 이들의 이중생활이 만드는 오해가 또 다른 오해로 이어지는 ‘크로스’의 설정 역시 이미 앞선 영화들이 거친 과정이다.
기시감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크로스’는 무언가 색다른 ‘한방’이 필요했지만, 관객의 만족도를 충족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아기자기한 설정으로 웃음을 터트리게 하지만, 그때뿐이다.
물론 기시감을 돌파하려는 자구책은 있다.
아내인 미선을 강력반 에이스 형사로 설정하면서 사건의 주도권을 갖게 한 부분에서 영화는 익숙함을 상쇄한다. 덕분에 ‘크로스’에서는 황정민보다 염정아가 더 돋보인다. 범죄 현장에서 미선은 두려움을 모르는 듯 질주하는 모습. 다만 강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캐릭터의 매력이 점차 사라지더니, 남편의 비밀을 알고 함께 범죄 조직에 맞서는 과정 자체가 헐겁게 다뤄지는 탓에 캐릭터의 힘도 더 확장되지 않는다.
영화는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사건의 진행 과정이 촘촘하지 않아 뜻밖의 의구심을 키우기도 한다.
강무를 찾아와 실종된 남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과거의 동료 희주(전혜진), 과거 강무와 그의 동료들을 위기에 빠트린 의문의 인물 박장군의 존재, 강무와 미선을 위협하는 조직의 실체가 군데군데 빈 틈을 드러내면서 밋밋하게 그려진다. 오락 액션을 추구하지만,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결정적인 장치로 희주와 박장군 등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역부족이다.
또한 박장군이 주도하는 범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설명조차 없는 탓에 이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강무와 미선의 합동 작전 역시 평범하게 머문다. 다짜고짜 총부터 쏘는 모습에선 통쾌함보다는 일단 액션부터 보여주겠다는 성급함이 먼저 느껴진다.
● 든든한 배우들 출연에도 아쉬움
‘크로스’는 당초 지난 2월 개봉을 준비하다가 계획을 수정해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극장 개봉이 아닌 OTT 플랫폼 공개를 택하면서 관객에게 좀 더 부담없이 다가가고 있지만, 공개 직후 평가는 아쉽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일명 ‘넷플릭스 속도’에 맞춰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하지만, 그 속도가 놓친 디테일의 부족함이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황정민과 염정아라는, 존재감은 물론 그 이름만으로도 관객에게 든든한 믿음을 주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도 엉성한 만듦새로 작품을 완성한 부분은 오래두고 남을 아쉬움이다.
다만 남편에게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몸을 내던져 악당을 잡는 열혈 형사로 활약한 염정아의 액션 도전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란 사실에서 무척 반갑다. ‘크로스’를 넘어 또 다른 작품에서 염정아의 정통 액션을 기대하게 만든다.
감독 : 이명훈 / 출연: 황정민, 염정아, 전혜진 외 / 장르: 액션, 코미디 / 공개일: 8월9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0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
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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