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건축가 김정인은 이 질문을 시작으로 1년 1개월 동안 수유동의 작은 쌍둥이 주택 ‘무너미 스튜디오’를 지었다. 무너미 스튜디오는 45년 지기 친구 부부와 김정인이 살고 있는 건물로, 골짜기에 ‘물이 넘친다’는 수유동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각 동은 4개 층으로 이뤄진 수직 생활공간으로 2개의 방과 욕실을 갖췄다.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북한산과 도봉산을 병풍 삼아 우뚝 솟은 두 건물은 뾰족한 박공지붕과 콘크리트 벽 앞으로 튀어나온 나무 큐브, 앞뒤 대칭을 이루는 건물 형태가 이 지역의 다른 주택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지속 가능한 집을 짓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순환할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 하죠. 근대화 이후 한국의 대다수 건설 산업은 콘크리트 집으로 대체됐어요.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죠. 이 대안이 되는 주거 형태를 실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김정인은 기존 아파트 건설 방식과 도시주택 구성을 탈피해 새로운 주거 형태를 도입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프로토타입으로 삼았다. 외관에서 보듯 건축물의 재료는 콘크리트와 목재, 두 가지. 두 재료의 만남이 낯설지만 그 속에는 흥미로운 설계 방식이 숨어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 2개의 목재 큐브를 끼워 넣었어요. 즉 콘크리트는 목재 큐브가 지탱할 수 있는 건물의 뼈대, 목재 큐브는 방 역할을 하죠. 높이는 건물 5층 정도 됩니다. 목조건축으로 고층 건물을 완성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콘크리트 플랫폼을 사용했어요.”
3D 프린트로 만든 모형을 보며 김정인 건축가가 설명했다. “콘크리트는 일교차가 크고 연교차가 적은 지중해에서 사용되는 재료예요.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와 맞지 않아요. 우리 선조들은 흙과 나무로 지은 집에 살았어요. 콘크리트에 비해 목재는 단열 효과가 높고, 적정 습도를 유지할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죠. 유구한 지혜가 담긴 전통 건축자재인 목재와 현대 재료인 콘크리트를 통합해 미래의 건축자재 측면에서 기후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건물을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지중해식 근대주의 건축 사고만 좇지 않고, 각 국가와 지역이 지나온 건축 역사를 재발견하는 지혜와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정인은 이 집을 통해 한국의 고층 주거에 대한 도전과 동시에 같은 형태로 적층되는 아파트와는 다른 수직 구성을 선보인다. 보통의 집짓기 방식과 다른 방법론을 따르니 지금과 같은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완성됐다고 한다. 박공지붕 형태의 두 목재 큐브가 구조물에 끼워지며 부딪치는 접점은 사람이 오가는 길로 만들었다. 그 결과 각 층을 잇는 계단과 다리가 서로 교차해 시각적 리듬감이 느껴지는 구조가 됐다. 2층 거실에서 4층 천장까지 올려다보면 압도적인 공간감이 느껴진다. 마치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집의 외관은 땅의 모양과 일조, 채광 등 도시환경을 고려하는 사선 제한에 따라 이뤄진 디자인. 건축 법규를 재해석해 나름의 디자인 요소로 바꾼 것이다. 김정인은 주변 환경과 조건을 수용하며 현장에서 수시로 도안을 수정해 무너미 스튜디오를 완성했다.
“매일 방문을 열면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인수봉의 풍경을 기대해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얻은 새로운 즐거움입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지은 집은 삶의 배경이 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됩니다. 그것으로 족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건축가 김정인은 다음 세대의 주거 권리를 위해 회복력 있는 건축 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의 수많은 아파트 재개발에 사용되는 무분별한 콘크리트 대신 목재와 콘크리트가 조화롭게 사용되는 건축자재의 혼합, 사고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설계 모델, 주변 환경에 순응하고 재해석한 자연스러운 디자인, 이것이 건축가 김정인이 상상하는 미래다. 여전히 주택시장의 주류인 아파트 숲속에 싹튼 무너미 스튜디오는 그가 생각하는 미래에 닿게 해줄 첫 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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