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무시무시한 사고 겪었지만
주변의 도움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국민 가수
아버지와 매우 각별했던 트로트 가수 하춘화는 38살에 공부를 시작해 50살에 박사 학위를 얻기도 했으며, 또한 결혼 역시 아버지가 원하셔서 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자신에게는 남편보다 아버지가 더 큰 존재라고.
나이가 많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연명 치료를 거부했고 이에 상태가 빠르게 나빠졌으며, 결국 101세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 장례식 당시 동생 역시 뇌수막종 수술을 받고 의식이 없던 상태여서 하춘화는 그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편히 떠나시고 동생 좀 돌아오게 해 주세요”였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집안 곳곳에 아버지의 사진을 붙여 놓고 “아버지, 저 나가요” 등 그를 향한 혼잣말을 늘어놓는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춘화는 여전히 아버지를 잊고 싶지 않다고 하며, 동료 가수 인순이의 권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아버지를 보내 보려고 하기도 했으나 하늘을 보는 순간 젊은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그녀는 과거 53명이 사망했던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에서 아버지 덕분에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밝히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또 다른 그리운 인연들
하춘화는 아버지 이외에도 그리운 사람을 떠올렸는데, 바로 과거 어마어마한 피해를 가져왔던 이리역 폭발 사고에서 자신을 구해 준 故 이주일이었다.
그녀는 이리역 앞의 극장에서 공연 중이었으며 당시 무명이었던 이주일은 보조 MC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공연 15분 만에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극장 지붕이 무너지며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였다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비명과 신음을 내지르자 하춘화는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겁에 질렸고, 이주일은 그녀를 업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탈출하면서 이주일이 자신의 머리를 내 주어 그의 머리를 밟고 담을 넘었는데, 알고 보니 당시 그는 벽돌에 맞아 머리뼈가 함몰된 상태였는데도 그녀를 위해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엄청난 일을 했음에도 이주일은 으스대는 대신 “그때 하춘화 씨에게 머리를 밟혀 머리카락이 안 나는 거다. 하춘화 씨 살리려고 업고 나온 게 아니라 밥줄 끊길까 봐 도와준 거다”라고 가볍게 넘겨 더욱 고마웠다고.
그녀는 이주일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이 사고로 인해 지하나 막힌 공간은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한 하춘화는 故 현철의 마지막 무대에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당시 그는 MC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등 녹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한 “여기가 어디냐. 지금 뭐 하는 거냐”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이크를 잡아 드리며 방송을 마쳤다. 그런데 장례식에 가서 들어보니 그때부터 몸이 안 좋으셨다고 했다”라고 말하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이주일 정말 대단했네”,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시든 슬픈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는 게 힘든 것 같아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