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사랑했던 그녀가 떠안아야 했던
너무 고달팠던 현실
가수 이은하는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팝 음악을 선보이며 ‘디스코의 여왕’이라고도 불렸던 80년대 최고의 디바다.
그녀는 유명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과 가까운 삶을 살았고, 일찍부터 무대에 오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수의 길을 걷고 있었다.
원래는 트로트를 하려고 했으나 변성기로 목소리가 허스키해져 지금의 팝 장르에 도전하게 되었으며, 무려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에 ‘님마중’이라는 노래로 데뷔하였다.
하지만 당시 방송국의 심한 규제 때문에 미성년자였던 이은하는 텔레비전에 나올 수 없었고, 이에 그녀는 밤무대를 전전하다 나이를 속여 겨우 공중파에 데뷔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최진사댁 셋째딸’, ‘밤차’, ‘겨울장미’ 등이 모두 히트를 치며 그야말로 따라올 자가 없는 톱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성공과 동시에 위기가 찾아왔는데, 그녀가 주로 활동했던 TBC가 통합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TBC의 마지막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던 도중 우느라 무대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고, 이에 3개월 동안 방송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텔레비전에 출연할 수 있게 되자 ‘네가 좋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왜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일어나나
안타깝게도 이은하에게 행복과 불행은 하나의 묶음이었는지,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그녀의 명의로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20억 원 남짓의 빚더미에 올랐다.
이에 그녀는 8억 원 정도의 시세를 자랑했던 집까지 넘기고 밤무대를 뛰어야 했다. 그러던 도중 음반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며 10억의 빚을 지며 파산하였고, 결국 이 역시도 그녀의 몫으로 돌아왔다.
무대에서 다쳐도 쉴 수 없어 치료 대신 스테로이드를 맞고 일을 하다 보니 부작용으로 쿠싱 증후군이 생겼다. 이는 스테로이드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생기는 질병으로, 대표적으로 살이 배와 얼굴 위주로 빠르고 과도하게 찌는 증상이 나타난다.
당시 그녀는 “3개월 만에 살이 15kg 정도 쪘다. 진통제를 안 먹으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다. 그런데 진통제에도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어 그걸 먹으니 쿠싱 증후군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생겼다. 그런데 생활고 때문에 일을 쉴 수도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던 도중 전혀 친분이 없는 후배 가수 마야에게 만나자며 연락이 왔고, 이은하를 만난 마야는 어렸을 때부터 열렬한 팬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신나게 이야기하던 마야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당황한 이은하가 이유를 묻자 봉투를 내밀며 “요새 상황이 어려우시다고 들었는데 그냥 제 마음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던 이은하는 “봉투 안에 2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나 같으면 아무리 걱정이 돼도 그렇게 못할 것 같다. 너무 감동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걸 받으니까 정말 고마웠고 그래도 내가 나쁘게 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주변에서 응원을 많이 해 줘서 버텼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까지 노래하다 떠나고 싶다는 이은하는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상태가 많이 회복되어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는 게 힘든데 마야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은하 씨 무대에 서는 모습 보고 싶어요”, “마야 마음이 너무 예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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