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신이 밝힌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법
김창옥 강사는 원래 성악을 전공했고 이를 살려 발성을 가르치고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은 목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을 깨닫고 소통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달리 본인은 소통이 되지 않았던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실제 대화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가깝지 못했다고.
김창옥의 어머니는 남편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혼식 날에야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글을 쓸 줄 몰랐고 이에 부부는 전혀 소통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었던 아버지는 며칠 동안 집을 비우곤 했는데, 돌아오는 날이면 꼭 어머니를 때렸으며 이에 김창옥을 비롯한 다른 형제들도 벌벌 떨었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일을 하긴 했으나 돈이 생기면 전부 화투판에 갖다 바쳤고, 어머니는 혼자서 아이 여섯을 키워야 했다. 제주도에서 자랐던 김창옥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지원하며 도망치듯 집을 떠났지만, 그가 없는 집에서도 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누나들은 계속 엄마가 맞았다고 전화를 걸어왔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어머니까지 책임질 능력이 없었고,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상처를 대면하기
김창옥은 결혼 이후 아이를 낳아 키우며 아버지와 마주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의 가정도 꾸려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의사에게서 수술하면 청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에 아버지는 기뻐했지만 어머니는 “들리면 얼마나 더 괴롭힐지 무섭다”라며 반대했고, 이에 아버지가 “당신 목소리를 듣고 싶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욕으로 응수했다.
결국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는데, 어머니가 글을 몰라 다른 사람이 아버지에게 말을 가르쳐 줘야 했는데 이를 전부 거절한 것.
언어 재활 센터에 버스를 타고 가는 건 다리가 아프고, 택시를 타는 건 돈이 아깝고,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 건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아버지는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하지 못하고 2년 후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김창옥은 영원히 알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몇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아버지의 유일한 선물이었던 싸구려 돌침대에 종일 누워 있었다고. 심지어 3년이 지난 아직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눈물을 흘리는데 그게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끝나지 않은 숙제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온 가족이 시달렸는데, 그가 사라진 이후에도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가 스트레스로 귀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창옥은 뭐가 문제인지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이제야 여유가 생겨 무엇이 문제였는지 찾다 보니 오히려 그 과정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른다. 이제는 바쁘게 할 일도 없어서 원하는 걸 해도 되는데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를 혹은 나를 원망하게 되는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정말로 미워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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